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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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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에게도 전공이 있다. 수사·공안·기획·형사 등이 그것이다. 검사의 전공을 규정하는 핵심 기준 중 하나는 부장검사 보직이다. 출신 지역을 따질 때 출생지뿐 아니라 출신 고교를 함께 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특히 엘리트 검사들에게는 대검·법무부·서울중앙지검 부장을 역임했는지, 어느 부서를 책임졌는지가 오랫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대장동 개발 의혹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현 중앙지검장에게 인지 수사의 핵심 보직인 중앙지검 특수부장(현 반부패부장)이나 금융조세조사부장, 대검 중수과장(부장검사급) 등의 경력은 없다. 그가 거쳐 간 첨단범죄수사부장 자리는 사이버범죄와 기술유출 등 첨단범죄를 수사하던 곳이다. 당대의 공안검사였던 황교안 전 총리가 초대 부장이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수사뿐 아니라 공안의 성격까지 함께 가진 복합적 부서다.

보좌진 중에서도 수사 전문가는 찾기 어렵다. 대장동 사건 전담수사팀장은 중앙지검 부장 시절 형사부를 맡았던 인물이다. 수사팀원들 중에도 특수통으로 잔뼈가 굵은 이는 뜬금없는 겸직 발령으로 수사 배제 의혹을 불러일으킨 부부장 검사 한 명 정도다.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한술 더 뜬다. 공수처장이 수사의 맛을 봤던 시간은 19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특별검사팀 수사관 시절의 몇 개월이 전부다. 초대 공수처장 후보 중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사 검사들이 즐비했지만, 대통령은 현 처장을 낙점했다. 설상가상으로 공수처 차장 역시 수사 경력이 전무한 판사 출신이다. 공수처도 민망했던지 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경험을 내세웠지만, 숙제를 잘하는 것과 숙제 검사를 잘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수사를 잘하는 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냐만, 왕후장상으로 길러진 씨는 분명 존재한다. 국내 대표 수사기관들에 그런 씨나 거기서 발아한 재목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과 작금의 어이없는 수사 행보 간 연관 관계에 대한 의심이 비합리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긴 직전 법무장관 시절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대검 중수과장이나 중앙지검 특수부장 한 번 안 해본 대검 반부패부장, 법무부 과장 이력도 없는 법무부 검찰국장을 탄생시켰을 때부터 충분히 예견됐던 사태다. ‘개혁’을 개혁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