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로봇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P팀장

김현예 P팀장

“형, 들어봐. 작품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거든!” 방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3살 아래 동생, 카렐 차페크였다. 그림을 그리고 있던 형 요세프 차페크가 웅얼거렸다. “뭔데?” 입에 붓을 물고 한창 작품 구상에 빠져있던 형에게 동생은 속사포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형이 던진 말은 “그럼 써!” 속으로 다시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겠거니 했을 형에게 동생은 또 다른 말을 던진다. “그런데 말야, 그 인조인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 레이버리(labouri·라틴어로 노동을 뜻하는 말에서 기원)라고 할까 했는데 좀 마음에 안들거든.” “그럼, 로봇(robots)이라고 해.”

카렐 차페크는 그 길로 심혈을 기울여 쓴 희곡 『로줌 유니버설 로봇』을 1920년에 내놓는다. 로봇이란 말은 로보타(robota)란 체코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된 노동을 뜻한다. ‘프라하의 로봇’이란 뉴스레터(2017년 8월)에 실린 이야기로, 우리가 아는 ‘로봇’이란 말은 이렇게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지난달 말 로봇 박람회에서 벌어진 일이 화제가 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네 발로 걷는 로봇을 뒤집으면서다. 영상이 퍼지면서 ‘로봇 학대’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자 이 후보 측은 발끈했다. “로봇 테스트를 학대라고 썼다”며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협의 하에 뒤집어도 정자세로 돌아오는지 테스트를 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분분한 ‘로봇 학대’ 이야기에 읽어본 원작 이야기를 전해본다. 카렐의 로봇 이야기는 ‘머리카락만큼의 오차도 없는 인간’을 만들고 싶어한 괴짜 과학자가 인조인간을 만들지만 단 3일을 살고 죽자, 조카가 뒤이어 ‘노동하는 기계’를 만들었다는 데서 출발한다. “누군가 당신을 학대했나요? 당신이 나를 이해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데요.” 로봇 공장을 찾아간 인간은 로봇을 만나 이렇게 말한다. 로봇에게 영혼을 주길 바랐던 인간과 로봇. 영혼을 얻은 로봇은 인간 지배에 나서고, 결국 단 한명을 남기고 모든 인간을 학살한다.

번역자 유선비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평이다. “로봇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작품이다.” 로봇 학대는 모르겠지만, 인간인 우리가 앞으로 로봇과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는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