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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우긴 '통신비 2만원', 10년만의 최고물가로 돌아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0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 상승했다. 2012년 1월(3.3%) 이후 9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정부는 지난달 물가 상승 폭이 커진 주요 원인으로 ‘통신비 2만원’ 지원 효과를 꼽았다. 1년 전 서민 부담을 덜겠다고 급하게 내놓았던 정책이 결국 1년 뒤 물가지표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는 의미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물가 상승을 주도한 품목은 전년 동월보다 4.3% 가격이 오른 공업제품이다. 공업제품 가격은 석유류 가격이 오르면 함께 오른다. 지난달 석유류 가격은 27.3% 상승했다. 2008년 8월(27.8%)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석유류 가격의 추가 상승은 예견된 일이다. 최근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면서 국내 석유류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통신비 기저효과 빼면 상승폭 둔화"

품목별 물가 기여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품목별 물가 기여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서비스 가격 중에선 공공서비스 가격이 5.4% 오르며 2001년 10월(5.4%)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특히 휴대전화료가 25.5% 급등했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만 16~34세와 65세 이상에게 통신비를 2만원씩 지원했던 효과가 올해 10월엔 사라지면서 '기저효과'가 발생했다.

휴대전화료 상승은 전체 물가상승률 3.2% 가운데 0.67%포인트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는 게 정부의 추산이다. 지난해 통신비 지원만 없었다면 10월 물가상승률은 약 2.5% 수준에 그쳤을 수 있다는 의미다. 2.5%면 전달인 9월 물가상승률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날 개최한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통신비 지원에 따른 기저효과가 제외하면 물가는 전월 대비 0.1% 상승하며 8·9월보다 상승폭이 크게 둔화됐다”고 말했다.

1년 전 정부·여당이 급하게 내놓은 ‘통신비 2만원’ 정책이 결국 근 10년 만에 3%대 물가상승률을 불러온 셈이다. 지난해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과정에서 여당은 느닷없이 전 국민에 통신비 2만원을 지원하겠다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정부·여당은 관련 예산으로 9300억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약 5200억원을 삭감했고, 청년층과 고령층에 선별 지원했다. 그러나 서민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보다는 ‘통신사 배만 불려줬다’는 비판이 많았다.

'위드 코로나' 에 물가 더 오르나…'소비 진작책'도 딜레마

지난달 31일 서울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서울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 연합뉴스

문제는 올해 남은 기간에도 물가를 끌어올릴 뇌관이 많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우선 정부는 이번 달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에 맞춰 각종 내수 진작책을 가동한다. 그동안 중단했던 소비쿠폰 사업을 재개해 민간 수요 증가를 유도할 계획이다. 국내 최대 쇼핑 할인 행사인 코리아세일페스타(코세페)도 벌이고 있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소비심리가 회복하는 점은 개인서비스 가격에, 국제유가 상승은 공업제품 가격에 상방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지난달 2.7% 오른 개인서비스가 오름폭을 더 키울 가능성이 있다. 개인서비스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지난해 11월 상승률이 1.3%에 그쳐 기저효과도 예상된다. 이억원 차관은 "국제유가 오름세, 농축수산물·개인서비스 기저효과 등 상방 요인이 상존해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에너지 가격 상승, 공급 차질 등이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뒤늦게 유류세를 20% 인하하기로 했지만, 각종 소비 진작책을 동시에 펼치고 있기 때문에 물가 안정 효과가 상쇄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당초 하반기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은 게 패착을 불렀다고 지적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세계적으로 공급망이 교란 상태에 빠져 있어 원자재 확보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는데도 정부가 예전에 계속 사용했던 물가 안정책을 뒤늦게 꺼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유류세 인하처럼 직접 가격을 낮추는 대책을 넘어 원자재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전 부처의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루 0.2%p ↑, 불붙은 금리

물가와 함께 금리도 뛰면서 서민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이달 1일 기준 A은행의 신용대출 금리(1등급ㆍ1년)는 3.68∼4.68% 수준이다. 지난달 31일 금리(3.47∼4.47%)와 비교해 불과 하루 사이 상단과 하단이 모두 0.21%포인트 올랐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최고 수준은 이미 5%대 중반에 이르렀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달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에 은행채 등 시장금리가 뛰고 있는 영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상대로 이달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또 올라 그 영향까지 시장금리에 반영되면, 대출 금리 상단은 연말께 6%에 이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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