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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면 치명적인 지주막하출혈 의심해봐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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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다양한 뇌출혈 맞춤 대처법

"편마비 오면 뇌내출혈 가능성
외상으로 발생 경막 안팎 출혈은
1주일 뒤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뇌출혈도 다 같은 뇌출혈이 아니다?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은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질환이다. 신경이 망가지고 뇌가 붓기 전 치료해야 전신마비·사망과 같은 치명적인 후유증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뇌출혈도 발병 위치에 따라 원인과 증상에 차이가 있다. 모든 뇌출혈에서 즉각적인 수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강동성심병원 신경외과 이종영 교수는 “주요 증상과 기저질환, 외상 유무 등 원인을 미리 체크해 의료진에게 알리는 것이 뇌출혈의 맞춤 치료에 도움된다”고 말했다.

고혈압 환자 뇌내출혈 위험 최대 13배
뇌출혈은 두개골과 뇌 사이 3개의 막(연막·지주막·경막)을 기준으로 분류한다. 가장 발병률이 높은 건 연막으로 쌓인 뇌실질 내에 발생하는 뇌내출혈(출혈성 뇌졸중)이다. 매년 인구 10만 명당 12~15명에서 발생하고 중장년층(45~75세)이 전체 환자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뇌내출혈은 40대 미만은 혈관 기형, 70대 이상은 아밀로이드 뇌혈관병증(뇌혈관에 단백질이 쌓이는 병) 등 연령별로 주요 원인이 다르다. 중장년층의 뇌출혈 발생률이 압도적인 것은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 때문이다. 이 교수는 “고혈압으로 인해 뇌혈관이 전체적으로 변성되는데, 특히 미세혈관에서 출혈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며 “고혈압 환자는 정상 혈압을 가진 사람보다 뇌출혈 발병 위험이 최소 4배에서 최대 13배나 높다”고 경고했다.

뇌내출혈이 발생하면 그 즉시 해당 부위의 뇌 조직이 손상돼 기능을 잃는다. 한쪽 팔다리가 마비되거나 언어·시야 장애, 두통·구토·경련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제때 지혈하지 못하면 갈수록 출혈량이 늘면서 신경학적 증상이 악화하는 특징이 있다. 조기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이 교수는 “뇌에 혈종(핏덩어리)이 생성되면서 염증 물질이 분비돼 뇌가 붓고 이로 인해 뇌가 밀리거나 다른 혈관을 압박하는 2차 뇌경색으로 인해 치명적인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며 “내원 당시 출혈량이 많을수록 뇌부종·뇌탈출 위험이 큰 만큼 편마비나 언어·의식 장애 등이 나타나면 최대한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뇌내출혈은 초기에 출혈 위험을 낮추는 혈압강하제·지혈제를 쓰고 필요하면 뇌압을 떨어뜨리는 뇌압 강하제를 추가 투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약물이 듣지 않거나 뇌부종이 매우 심할 땐 전신마취 후 두개골을 여는 개두술, 작은 구멍을 뚫은 뒤 혈종을 뽑아내는 정위적 흡인술을 적용할 수 있다. 고려대구로병원 신경과 김치경 교수는 “최근에는 신진대사를 억제해 뇌부종을 억제하는 저체온 치료로 수술 전후 뇌 압력을 낮추기도 한다”고 전했다.

연막과 지주막 사이의 지주막하 공간은 뇌혈관과 뇌척수액이 지나는 통로다. 혈관 조영술로 보는 혈관은 사실 뇌 속 혈관이 아닌 지주막하 혈관으로, 크기가 커 한 번 터지면 출혈량이 많아 뇌내출혈보다도 치명적이다. 실제로 지주막하 출혈 환자 가운데 정상으로 회복하는 비율은 30%에 불과하다. 이 교수는 “뇌내출혈이 국지전이라면 지주막하 출혈은 뇌 전체로 출혈이 번지는 전면전에 비유된다”라며 “증상도 국소적인 마비·장애 수준이 아닌 머리가 터질 듯한 두통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주막하 출혈은 주로 뇌동맥류로 인해 발병한다. 뇌동맥류는 지주막 아래의 큰 혈관인 뇌동맥이 부풀어 오르는 질환으로 인구 200~300명당 1명이 가지고 있을 만큼 꽤 흔한 병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이 병을 앓아 두 차례 수술을 받기도 했다. 터지기 전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어 건강검진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이 교수는 “뇌동맥류는 두개골을 연 뒤 미세 현미경으로 보며 클립으로 부분 혈관을 묶는 수술(클립 결찰술)이나 절개 없이 허벅지 혈관으로 코일을 집어넣어 막는 시술(코일 색전술)로 치료한다”며 “단, 이런 치료가 불가피하게 뇌 손상을 유발할 수도 있어 뇌동맥류의 크기, 파열 위험에 따라 즉시 치료할지 혹은 추적 관찰하며 상태를 지켜볼지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뇌동맥류, 크기·위치 따라 치료법 결정
반면에 일단 지주막하출혈이 발생하면 환자의 의식이 명료하고 신경학적 이상 증상이 없더라도 무조건 치료하는 것이 정석이다. 파열된 뇌동맥류는 24시간 이내 재파열할 확률이 매우 높고, 이 경우 사망률도 50~70%에 달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시술·수술을 한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하이브리드 수술실’이 도입돼 지주막하출혈 환자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데 활용되고 있다.

두개골과 가장 가까운 경막 안팎의 출혈은 대부분 사고·낙상 같은 외상으로 인해 발생한다. 두개골과 경막 사이 출혈은 경막외출혈, 경막과 지주막 사이 출혈은 경막하출혈이다. 전자는 경막의 동맥이, 후자는 경막과 뇌 중간의 정맥이 파열되는 경우가 흔하다. 경막 안팎의 출혈은 다른 뇌출혈과 달리 증상이 곧장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의식 청명기’라고 하는데, 일시적인 뇌진탕으로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멀쩡해지고 이후 출혈로 인해 뇌압이 상승하며 다시 의식을 잃는 것을 말한다. 외상을 입고 짧게는 12~24시간에서 길게는 일주일이 지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해 조기 대처를 어렵게 한다. 김 교수는 “동맥은 정맥보다 혈압이 높아 출혈 속도가 빠른데, 이런 이유로 경막외출혈이 경막하출혈보다는 의식 청명기가 짧은 편”이라며 “특히 노화로 뇌가 위축된 고령층은 경막과 뇌 사이의 공간이 넓어 경막하출혈이 발생해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머리에 충격을 받았다면 의식 상태와 경련, 위약감(힘 빠짐) 유무를 장기간 관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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