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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공정위는 경영컨설팅 회사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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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러나 운전 중 좌석벨트를 매도록 의무화한 규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좌석벨트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피해자는 오직 본인뿐이다. 다른 사람은 피해를 보지 않는다. 그런데 왜 국가가 이를 강요하고 위반하면 벌금까지 부과할까? 오토바이 헬멧을 반드시 착용하도록 하는 규제도 마찬가지다.

이런 규제들은 국민은 자신들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서 국민을 계도하고 보호해 줘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간섭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당한 규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이 규제를 따르는 데 드는 노력과 준수 비용은 매우 작지만 혜택은 크기 때문이다.

지금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들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규제를 폐지하는 대안으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소액의 자본금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여러 회사를 소유하는 자본금 뻥튀기 행위는 바람직한 경영행태는 아니다. 경영학에서 순환출자를 바람직하지 않은 경영행태로 보는 이유는 그렇게 엮인 기업들의 재무구조는 취약해지지만 기업 소유주는 적은 자본금으로 여러 회사의 경영권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환출자의 혜택과 부담은 모두 자본금 뻥튀기를 한 기업의 소유주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순환출자의 내용이 공개돼 있는 한 선의의 피해자는 생길 수 없다. 취약한 재무구조와 비정상적인 지배구조를 알면서 그 기업에 투자한 소액투자자들을 정부가 보호해 줘야 할 이유는 없다. 이런 점에서 순환출자 규제는 좌석벨트 착용 의무화와 같이 피해자가 불분명한 행위에 대해 이렇게 하는 것이 네게 좋은 것이니 그렇게 하라는 식의 권위주의적 간섭이다.

그러나 좌석벨트 규제와 달리 순환출자 규제는 준수 비용은 막대하지만 기대효과는 의문시되기 때문에 정당화되기 어렵다. 순환출자 금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효과는 소유주의 경영권 남용과 뒷돈 빼돌리기 가능성을 억제한다는 간접적이고 도덕적인 것이지만 부작용은 일자리와 소득 창출 기회의 상실이라는, 보다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순환출자를 하느냐 마느냐의 결정은 기업이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경영전략 차원에서 결정할 사안이지, 정부가 법으로 강제하고 처벌할 사안이 아니다. 적은 주식 보유 지분으로 대규모의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경우 소유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와 기업의 이익이 희생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중소기업에서도 발생하고, 독립 기업에서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문제는 순환출자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아니고 순환출자를 금지한다고 해서 없어질 문제도 아니다. 횡령.배임.부당 내부거래와 같은 행위는 이미 현행법에 불법 행위로 금지돼 있고, 있는 법을 제대로 집행만 하면 된다.

혹시 순환출자로 엮인 기업집단이 동반 부실화되면 국민경제에 혼란과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미리 막기 위해 미리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금융시장의 감시 기능과 기업 퇴출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접근해야지, 기업의 투자 활동을 제약하는 것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출자총액제한 규제와 마찬가지로 순환출자 금지 규제도 모든 기업 투자를 지배력 확장과 뒷돈 빼돌리기를 위한 잠재적 탈법 행위로 전제하고 만든 불공정한 사전 규제다. 출자총액 규제가 불필요하다면 같은 논리로 순환출자 금지 규제도 철회돼야 한다.

순환출자를 하라 말라 하는 것은 경영컨설팅 회사가 할 일이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