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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배명복칼럼

남한은 '미련한 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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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 달 전 실시된 북한 핵실험의 여파는 이곳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북한과 무역업을 하는 K씨는 "은행을 통해 송금과 추심을 못하는 것을 빼고는 모든 것이 핵실험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북.중 간 무역거래의 80%가 단둥을 통해 이뤄지지만 원래부터 대부분 현찰거래였기 때문에 중국의 송금 제한 조치가 거래에 별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쪽에 침구류를 수출하는 L씨는 "핵실험 직후 잠시 주문이 주는 듯했지만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한 뒤로는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조중우의교를 오가는 화물차량 통행량은 하루 평균 200여 대로 핵실험 전과 차이가 없고, 수출입 화물의 검사와 통관이 이뤄지는 단둥교통물류센터는 북한 번호판을 단 트레일러들로 북적이고 있다.

개발 열기가 한창인 단둥은 지금 도시 전체가 공사판이다. 부동산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3년 전 평당 5000위안(약 65만원)이었던 신축 아파트 시세가 지금은 9600위안(약 125만원)으로 올랐는데도 짓기가 무섭게 분양되고 있다. 중국 내 다른 개발구와 달리 단둥에는 변변한 산업기반이 없다. 수산물 가공업 정도가 고작이다. 그런데도 부동산 붐이 불고 있는 것은 신의주 경제특구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고 한다.

단둥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중국인 J씨는 "신의주와 단둥을 자유무역지대로 연결하는 계획은 이미 서 있고 북한 쪽의 시기 선택만 남았다"면서 "그렇게 되면 단둥 시내 아파트값은 평당 3만 위안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의주가 열리면 북한 내 돈과 사람이 신의주로 몰릴 테지만 신의주에는 숙박.음식.쇼핑.위락시설 등 인프라가 전혀 안 돼 있기 때문에 단둥이 특수를 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 핵 위기는 아랑곳하지 않는 투였다. 핵 문제가 잘 풀리면 자유무역지대가 하루빨리 실현돼 좋고, 최악의 경우 북한에 급변사태가 생겨 난민이 쏟아져 들어오더라도 사람이 몰리면 부동산값은 오르게 돼 있으니 나쁠 게 없다는 식이다. 북한 난민의 대량 유입 가능성을 경계한다는 중국 정부의 시각과 사업을 하는 중국인들의 시각은 사뭇 다른 듯했다.

조선족 사업가 K씨는 "북한과 사업하는 중국 사람들 치고 돈 못 번 사람이 없다"면서 "그 돈이 다 어디서 온 줄 아느냐"고 물었다. 남한 사람들 호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북.중 교역에서 중국은 일방적으로 흑자를 누리고 있고, 북한은 갖가지 방법으로 남쪽에서 뜯어낸 돈으로 적자를 메우고 있으니 결국 남한 사람들 돈이 북한을 거쳐 중국 사람들 손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단둥의 부동산 열기와 흥청거리는 경기가 다 눈 먼 남한 돈 때문이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옛말이 하나 틀린 게 없다"고 혀를 찼다.

북한이 핵무기를 중국에 쏠 수는 없을 것이고, 미국이란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할 리 없기 때문에 북한의 핵 보유가 중국으로서는 생각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김정일 정권이 흔들려 혼란이 조성돼 경제적 피해를 보는 것보다는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심각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속으로는 느긋한 입장일지도 알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도 각종 중국산 물자가 단둥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고, 물건값은 꼬박꼬박 현찰로 중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북한 핵의 최대 피해자이면서도 금강산과 개성공단을 부여잡고 북한에 대한 '현금지급기' 노릇을 계속하고 있는 한국을 중국이 '미련한 곰'으로 여긴다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단둥에서>

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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