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한핏줄」확인… 교류 넓힐 전기”/이병문씨 동생과 통화는 “장외의 금메달”/농구등 저조ㆍ축구패전 “남탓”엔 입맛 씁쓸/달러 자랑하며 무분별 쇼핑하다 우습게된 한국관광객들 자성하고 있는지…
북경아시아드가 열전 16일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취재일선에서 겪고 느낀 점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도록 하지요.
사실 말이 좋아서 북경출장이지 실제로는 기자촌 메인프레스센터,그리고 경기장만 왔다갔다해 해외출장온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뛰어다니다 추석을 맞았을땐 정말 처량하더군요.
그날 북한에서 개점한 유경식당을 가보니 북한 기자와 선수단도 객지에서 명절을 보내게 돼 쓸쓸한 표정이 역력하더군요. 함께 술과 송편을 나누며 이런 저런 말을 나누다보니 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동질성은 변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번 대회기간중 중앙일보가 거둔 최대의 성과는 뭐니뭐니해도 북한 체조심판 이병문씨의 한국내 가족과의 전화상봉입니다.
○경기만 취재하라
40년만에 한을 푼 이씨의 사연은 국내신문과 방송은 물론 북한과 조선족 신문에서도 중앙일보 보도를 받아 상세히 취급해 국제적인 특종이 됐지요.
신문에 소개된다고 해서 가족과 연결이 되겠느냐고 반신반의하던 이씨는 막상 가족과 통화가 이뤄지자 남한 매스컴의 위력에 놀라는 표정을 짓더군요.
이씨는 혹시나 가족들이 북경으로 오게되지나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를 걸었는데 이 부분은 우리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습니다.
북한기자를 포함한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한국에서 수천명의 관광객이 마음대로 들어오고 있는데 왜 이씨의 동생들은 북경에 오지 못했느냐』고 물어왔을때 할말을 못찾겠더군요.
이씨는 평양으로 떠나기전 가족들에게 전달해 달라면서 평양산 술과 담배ㆍ은단을 남기고 갔는데 서울의 가족들에게는 뜻깊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대부분 처음 겪는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해 봅시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자유분방했습니다. 개방의 영향탓인지 거리와 상점의 모습도 서울처럼 활기가 있어 보였지요.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낮았지만 자기들 나름대로의 세계속에서 긍지를 갖고 살고 있더군요.
『13억인구를 골고루 입히고 먹이고 재울 수 있는 체제는 사회주의 밖에 없다』『사회주의를 포기하면 전인구의 3분의 2가 깡통을 차게 될 것』이라는 말로 그들의 체제를 합리화시키고 있더군요.
이번 대회의 준비상황은 86아시안게임,88올림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집니다.
주경기장을 둘러본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장백발 대회조직위원장에게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서는 새로운 주경기장이 필요하다. 이 경기장은 보조경기장에 불과하다』고 말했답니다.
현재의 시설로 올림픽을 치르려했던 중국관계자들이 머쓱했겠네요.
한국 관계자들도 현재의 시설은 올림픽에 필요한 시설의 50% 수준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으더군요.
하지만 중국으로서는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서울에서 86,88을 지켜봤던 일본 기자들은 개ㆍ폐회식이 모든 면에서 서울대회와 흡사,마치 모방대회같다고 지적하더군요.
대회 조직위원회측에서도 그점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개ㆍ폐회식이나 컴퓨터 활용방법ㆍ안전ㆍ자원봉사요원 운영 등 모든 노하우를 한국으로부터 전수받았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중국 당국의 결의는 대단했습니다. 또 하루 20원씩의 점심값만을 받는데도 자원봉사자가 되기 위해 대학생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회기간중에는 경기취재만 하라」는 중국측의 협조요청은 결국 취재진의 발을 꽁꽁 묶어 놓고 말았습니다.
천안문사태 이후 현실에 불만을 느낀 지식인과의 접촉이나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파헤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일부 지식계층이나 학생 등 반정부소요가 예상되는 세력이 북경시 밖으로 격리됐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지요.
아직은 전면적으로 공개할만큼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얘기겠지요.
당국의 계몽이나 행정력이 크게 작용했었겠지만 거리에 담배꽁초하나 떨어져 있지 않을 정도로 공중도덕 수준은 높았습니다.
담배꽁초와 휴지를 버리고 침을 뱉는 것은 모두 외국인들 뿐이었습니다.
길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기자들이 대부분 당일로 되찾은 것도 되새겨볼만한 체험입니다.
기차촌숙소 룸서비스를 하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밤을 꼬박 새우면서도 전혀 짜증은 커녕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대했습니다.
남북한 공동응원은 어떠했습니까.
처음에는 억지춘향식의 어색한 분위기가 될까 걱정했는데 지나고 보니 모두 기우였지요.
양쪽 응원단은 서로에 대해 전혀 거부감을 갖지 않고 하나의 민족,하나의 핏줄로서의 일체감을 확인하고 스스로 감격해 하는 모습이었어요.
○북 심판 후한 점수
단일기와 태극기,인공기가 한데 어울리고 상대선수들이 선전할때 열렬히 환호하는 장면은 분명히 남북관계에 전환점을 이루는 역사적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정부나 고위당국자간의 관계야 어떻든 민간차원에서는 어떤 교류도 자연스럽게 성립될 수 있다는 뚜렷한 근거가 마련된 셈이죠.
합동응원을 끈질기게 주도하며 연일 강행군한 뽀빠이 이상룡씨와 젊은 대학생들의 열의를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남북간의 우호적인 분위기는 응원외의 부분에서도 두드러졌어요.
우리 체조선수단 임원들은 북한 국제심판이 우리 선수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다며 눈물겹도록 고마워 하더군요.
북한 기자들이 우리측 기자실을 수시로 찾아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 것도 새로운 변화였습니다.
북한기자 1백10명 가운데 상당수는 체육분야에는 어두운 반면 남북한 관계나 한국정당 정치문제엔 정통하더군요.
북한 신문에는 우리처럼 체육부가 없고 체육분야 담당자 1명만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문외한이었던 것 같습니다.
축구 남북교류전은 말도 많았지요.
우리측에서 먼저 보도되자 북한측은 합의자체를 부인하며 우리쪽에 책임을 추궁해 입장을 난처하게 해놓고 실무회담에서는 주도권을 잡는 전략을 썼지요.
그렇죠. 이 문제에 관한 양측협의는 철저하게 북한이 우위에 서는 일방적인 게임이었죠.
문제는 북한이 창구를 일원화한데 비해 우리측은 문제의 한탕주의 때문에 체육부ㆍKOCㆍ선수단이 제각각 덤벙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중요한 남북문제가 몇몇 사람의 공명심때문에 졸속과 혼선을 빚은 셈입니다.
중앙일보는 대회기간 각계로부터 「가장 훌륭한 신문」이라는 평가를 받았지요.
각종 큰 행사에는 국내 언론사중 거의 유일하게 참석,타사의 부러움과 시샘(?)을 받아야 했습니다.
○북중 우호 실감
그것은 이병문씨 전화상봉이라는 국제적 특종으로부터 비롯됐지요.
대회기간중 동포인 조선족들이 다수 통역으로 동원된 것은 큰 힘이었습니다.
언어는 물론 감정과 정서가 통하는 조선족들은 한국선수단과 기자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성심껏 도움을 주었습니다.
말도 많았던 관광단의 무분별한 쇼핑은 수치스런 일입니다.
유명연예인 가운데는 중국돈으로 3천여원(7백달러)짜리 산삼을 산뒤 즉석에서 일행들과 나누어 먹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그들은 1만여원짜리 산삼과 1만5천여원짜리 비취를 주저없이 사들이는가 하면 고액권 달러뭉치를 내보이며 자랑하는 한심한 작태를 보였습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중국을 다소나마 알게된 만큼 차이나신드롬의 환상으로부터 벗어나야겠습니다.
중국은 우리가 많은 돈을 쓰고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음에도 이렇다할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을 「조선」,우리를 「남조선」이라고 끝까지 호칭하는데서 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특별한 혈맹이자 「형제나라」인 북한과의 굳건한 관계가 가까운 시일안에는 조금도 변할 것 같지 않습니다.
한국 선수단은 당초 목표인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금메달 숫자는 당초 목표보다 10여개가 적었습니다.
일본을 재차 눌렀다는 데 뜻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황색(중국) 열풍에 얼마나 버텨나가느냐 하는 심각한 과제를 확인하게 됐습니다.
서울 올림픽 당시 우리가 12개의 금메달을 땄을 때 불과 5개에 그쳤던 중국의 급성장은 놀라운 것입니다.
중국의 선전에는 금메달 한개에 6천원의 상금이 걸려 있었던 것도 한몫 한 것 같더군요.
내심 30개 정도의 금메달을 목표로 맹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은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입니다.
평양원정 경기를 앞두고 북경에서의 남북한 결승 한판이 기대됐던 축구가 준결승에서 이란에 패한 것은 우리측의 큰 쇼크였습니다.
패전의 책임을 선수들의 부상에 돌리는 박종환 감독의 태도에 대해 일각에서는 『책임질줄 모르는 인물』이라고 혹평하고 있더군요.
남자농구와 함께 테니스의 지도자들도 두드러진 비판대상이 됐습니다.
○관중들 매너 깨끗
테니스는 노장들에게 너무 기대한 것이 실책이었습니다.
김성집 선수촌장은 『해외경기를 너무 많이 하고 기본체력 훈련을 안한 것이 잘못』이라고 꼬집더군요.
주최측의 텃세나 심판판정의 문제는 없었습니까.
한국이 중국과 경합하는 종목에는 흔히 한국에 비우호적인 심판이 기용됐습니다. 단적인 예로 남자농구 대 일본전에 기용된 소련의 미하일 심판은 지난 7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회 남자 한일전에서도 편파적인 판정으로 말썽을 빚었던 장본인이지요.
관중들의 매너는 대체로 깨끗한 편이었습니다.
대부분 직장ㆍ학교단위로 동원된 관중이 많아서인지 질서정연했고 국기와 응원도구 등의 준비도 철저했습니다.
그동안 물설고 낯선 곳에서 밤낮없이 취재하느라고 모두들 수고 많았습니다.
□<본사 특별취재단>
▲단장=이창성 편집부국장
▲체육부=이민우 부장대우ㆍ전종구ㆍ방원석ㆍ유상철기자
▲정치부=박병석 차장
▲경제부=이춘성기자
▲사회부=이하경기자
▲사진부=김주만 차장ㆍ신동연ㆍ조용철기자
▲중앙경제=홍세웅 차장ㆍ김윤철기자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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