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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아시아드 16일 결산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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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북 「한핏줄」확인… 교류 넓힐 전기”/이병문씨 동생과 통화는 “장외의 금메달”/농구등 저조ㆍ축구패전 “남탓”엔 입맛 씁쓸/달러 자랑하며 무분별 쇼핑하다 우습게된 한국관광객들 자성하고 있는지…
­북경아시아드가 열전 16일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취재일선에서 겪고 느낀 점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도록 하지요.
­사실 말이 좋아서 북경출장이지 실제로는 기자촌 메인프레스센터,그리고 경기장만 왔다갔다해 해외출장온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뛰어다니다 추석을 맞았을땐 정말 처량하더군요.
­그날 북한에서 개점한 유경식당을 가보니 북한 기자와 선수단도 객지에서 명절을 보내게 돼 쓸쓸한 표정이 역력하더군요. 함께 술과 송편을 나누며 이런 저런 말을 나누다보니 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동질성은 변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번 대회기간중 중앙일보가 거둔 최대의 성과는 뭐니뭐니해도 북한 체조심판 이병문씨의 한국내 가족과의 전화상봉입니다.
○경기만 취재하라
­40년만에 한을 푼 이씨의 사연은 국내신문과 방송은 물론 북한과 조선족 신문에서도 중앙일보 보도를 받아 상세히 취급해 국제적인 특종이 됐지요.
­신문에 소개된다고 해서 가족과 연결이 되겠느냐고 반신반의하던 이씨는 막상 가족과 통화가 이뤄지자 남한 매스컴의 위력에 놀라는 표정을 짓더군요.
­이씨는 혹시나 가족들이 북경으로 오게되지나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를 걸었는데 이 부분은 우리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습니다.
­북한기자를 포함한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한국에서 수천명의 관광객이 마음대로 들어오고 있는데 왜 이씨의 동생들은 북경에 오지 못했느냐』고 물어왔을때 할말을 못찾겠더군요.
­이씨는 평양으로 떠나기전 가족들에게 전달해 달라면서 평양산 술과 담배ㆍ은단을 남기고 갔는데 서울의 가족들에게는 뜻깊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대부분 처음 겪는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해 봅시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자유분방했습니다. 개방의 영향탓인지 거리와 상점의 모습도 서울처럼 활기가 있어 보였지요.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낮았지만 자기들 나름대로의 세계속에서 긍지를 갖고 살고 있더군요.
­『13억인구를 골고루 입히고 먹이고 재울 수 있는 체제는 사회주의 밖에 없다』『사회주의를 포기하면 전인구의 3분의 2가 깡통을 차게 될 것』이라는 말로 그들의 체제를 합리화시키고 있더군요.
­이번 대회의 준비상황은 86아시안게임,88올림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집니다.
­주경기장을 둘러본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장백발 대회조직위원장에게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서는 새로운 주경기장이 필요하다. 이 경기장은 보조경기장에 불과하다』고 말했답니다.
­현재의 시설로 올림픽을 치르려했던 중국관계자들이 머쓱했겠네요.
­한국 관계자들도 현재의 시설은 올림픽에 필요한 시설의 50% 수준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으더군요.
­하지만 중국으로서는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서울에서 86,88을 지켜봤던 일본 기자들은 개ㆍ폐회식이 모든 면에서 서울대회와 흡사,마치 모방대회같다고 지적하더군요.
­대회 조직위원회측에서도 그점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개ㆍ폐회식이나 컴퓨터 활용방법ㆍ안전ㆍ자원봉사요원 운영 등 모든 노하우를 한국으로부터 전수받았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중국 당국의 결의는 대단했습니다. 또 하루 20원씩의 점심값만을 받는데도 자원봉사자가 되기 위해 대학생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회기간중에는 경기취재만 하라」는 중국측의 협조요청은 결국 취재진의 발을 꽁꽁 묶어 놓고 말았습니다.
천안문사태 이후 현실에 불만을 느낀 지식인과의 접촉이나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파헤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일부 지식계층이나 학생 등 반정부소요가 예상되는 세력이 북경시 밖으로 격리됐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지요.
­아직은 전면적으로 공개할만큼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얘기겠지요.
­당국의 계몽이나 행정력이 크게 작용했었겠지만 거리에 담배꽁초하나 떨어져 있지 않을 정도로 공중도덕 수준은 높았습니다.
­담배꽁초와 휴지를 버리고 침을 뱉는 것은 모두 외국인들 뿐이었습니다.
길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기자들이 대부분 당일로 되찾은 것도 되새겨볼만한 체험입니다.
­기차촌숙소 룸서비스를 하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밤을 꼬박 새우면서도 전혀 짜증은 커녕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대했습니다.
­남북한 공동응원은 어떠했습니까.
­처음에는 억지춘향식의 어색한 분위기가 될까 걱정했는데 지나고 보니 모두 기우였지요.
­양쪽 응원단은 서로에 대해 전혀 거부감을 갖지 않고 하나의 민족,하나의 핏줄로서의 일체감을 확인하고 스스로 감격해 하는 모습이었어요.
○북 심판 후한 점수
­단일기와 태극기,인공기가 한데 어울리고 상대선수들이 선전할때 열렬히 환호하는 장면은 분명히 남북관계에 전환점을 이루는 역사적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정부나 고위당국자간의 관계야 어떻든 민간차원에서는 어떤 교류도 자연스럽게 성립될 수 있다는 뚜렷한 근거가 마련된 셈이죠.
­합동응원을 끈질기게 주도하며 연일 강행군한 뽀빠이 이상룡씨와 젊은 대학생들의 열의를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남북간의 우호적인 분위기는 응원외의 부분에서도 두드러졌어요.
­우리 체조선수단 임원들은 북한 국제심판이 우리 선수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다며 눈물겹도록 고마워 하더군요.
­북한 기자들이 우리측 기자실을 수시로 찾아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 것도 새로운 변화였습니다.
­북한기자 1백10명 가운데 상당수는 체육분야에는 어두운 반면 남북한 관계나 한국정당 정치문제엔 정통하더군요.
­북한 신문에는 우리처럼 체육부가 없고 체육분야 담당자 1명만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문외한이었던 것 같습니다.
­축구 남북교류전은 말도 많았지요.
­우리측에서 먼저 보도되자 북한측은 합의자체를 부인하며 우리쪽에 책임을 추궁해 입장을 난처하게 해놓고 실무회담에서는 주도권을 잡는 전략을 썼지요.
­그렇죠. 이 문제에 관한 양측협의는 철저하게 북한이 우위에 서는 일방적인 게임이었죠.
­문제는 북한이 창구를 일원화한데 비해 우리측은 문제의 한탕주의 때문에 체육부ㆍKOCㆍ선수단이 제각각 덤벙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중요한 남북문제가 몇몇 사람의 공명심때문에 졸속과 혼선을 빚은 셈입니다.
­중앙일보는 대회기간 각계로부터 「가장 훌륭한 신문」이라는 평가를 받았지요.
각종 큰 행사에는 국내 언론사중 거의 유일하게 참석,타사의 부러움과 시샘(?)을 받아야 했습니다.
○북­중 우호 실감
­그것은 이병문씨 전화상봉이라는 국제적 특종으로부터 비롯됐지요.
­대회기간중 동포인 조선족들이 다수 통역으로 동원된 것은 큰 힘이었습니다.
­언어는 물론 감정과 정서가 통하는 조선족들은 한국선수단과 기자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성심껏 도움을 주었습니다.
­말도 많았던 관광단의 무분별한 쇼핑은 수치스런 일입니다.
­유명연예인 가운데는 중국돈으로 3천여원(7백달러)짜리 산삼을 산뒤 즉석에서 일행들과 나누어 먹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그들은 1만여원짜리 산삼과 1만5천여원짜리 비취를 주저없이 사들이는가 하면 고액권 달러뭉치를 내보이며 자랑하는 한심한 작태를 보였습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중국을 다소나마 알게된 만큼 차이나신드롬의 환상으로부터 벗어나야겠습니다.
­중국은 우리가 많은 돈을 쓰고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음에도 이렇다할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을 「조선」,우리를 「남조선」이라고 끝까지 호칭하는데서 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특별한 혈맹이자 「형제나라」인 북한과의 굳건한 관계가 가까운 시일안에는 조금도 변할 것 같지 않습니다.
­한국 선수단은 당초 목표인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금메달 숫자는 당초 목표보다 10여개가 적었습니다.
­일본을 재차 눌렀다는 데 뜻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황색(중국) 열풍에 얼마나 버텨나가느냐 하는 심각한 과제를 확인하게 됐습니다.
­서울 올림픽 당시 우리가 12개의 금메달을 땄을 때 불과 5개에 그쳤던 중국의 급성장은 놀라운 것입니다.
­중국의 선전에는 금메달 한개에 6천원의 상금이 걸려 있었던 것도 한몫 한 것 같더군요.
­내심 30개 정도의 금메달을 목표로 맹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은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입니다.
­평양원정 경기를 앞두고 북경에서의 남북한 결승 한판이 기대됐던 축구가 준결승에서 이란에 패한 것은 우리측의 큰 쇼크였습니다.
­패전의 책임을 선수들의 부상에 돌리는 박종환 감독의 태도에 대해 일각에서는 『책임질줄 모르는 인물』이라고 혹평하고 있더군요.
­남자농구와 함께 테니스의 지도자들도 두드러진 비판대상이 됐습니다.
○관중들 매너 깨끗
­테니스는 노장들에게 너무 기대한 것이 실책이었습니다.
­김성집 선수촌장은 『해외경기를 너무 많이 하고 기본체력 훈련을 안한 것이 잘못』이라고 꼬집더군요.
­주최측의 텃세나 심판판정의 문제는 없었습니까.
­한국이 중국과 경합하는 종목에는 흔히 한국에 비우호적인 심판이 기용됐습니다. 단적인 예로 남자농구 대 일본전에 기용된 소련의 미하일 심판은 지난 7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회 남자 한일전에서도 편파적인 판정으로 말썽을 빚었던 장본인이지요.
­관중들의 매너는 대체로 깨끗한 편이었습니다.
­대부분 직장ㆍ학교단위로 동원된 관중이 많아서인지 질서정연했고 국기와 응원도구 등의 준비도 철저했습니다.
­그동안 물설고 낯선 곳에서 밤낮없이 취재하느라고 모두들 수고 많았습니다.
□<본사 특별취재단>
▲단장=이창성 편집부국장
▲체육부=이민우 부장대우ㆍ전종구ㆍ방원석ㆍ유상철기자
▲정치부=박병석 차장
▲경제부=이춘성기자
▲사회부=이하경기자
▲사진부=김주만 차장ㆍ신동연ㆍ조용철기자
▲중앙경제=홍세웅 차장ㆍ김윤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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