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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글 써주고 고료 떼인 작가들…망가진 글쟁이 생태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04) 

1993년 어느 겨울 저녁, 종로2가 YMCA 뒤편의 허름한 건물에 찾아갔다. 첫 직장이던 대기업 홍보실에서 사보를 만들고 있었는데, 박재삼 시인을 만나 원고료를 드리려고 간 것이다. 문인들의 사랑방답게 좁은 사무실에는 책이며 원고 뭉치며 재떨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난로 위 주전자에선 물이 끓고 있었다.

당대 최고 시인께서는 춥지 않냐며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준비한 원고료를 드리고 일어섰다. 원고료는 회사 명성에 걸맞지 않게 옹색했다. 봉투를 내밀며 “선생님, 너무 적어 죄송합니다. 10만 원입니다” 했더니, “10만 원이면 많지요”하고 환하게 웃어주셨다. 선생님의 목소리와 웃음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시인이 되려면 세상을 따뜻하게 보라”는 그분 말씀은 지금까지 내 마음 한구석에 잘 담겨 있다. 하여튼 그날 저녁 이후 한동안 부자 회사의 인색함에 무척 속상했다.

“시인이 되려면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보라”던 박재삼 시인, 드릴 원고료가 적어 민망하던 내게 따뜻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는 문인들에게 합당한 글 값을 지불하고 있는지 생각해 봤다. [사진 박재삼문학관 홈페이지]

“시인이 되려면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보라”던 박재삼 시인, 드릴 원고료가 적어 민망하던 내게 따뜻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는 문인들에게 합당한 글 값을 지불하고 있는지 생각해 봤다. [사진 박재삼문학관 홈페이지]

며칠 전에 다시 원고료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있었다. 대중문화평론가인 내 친구 정덕현이 SNS에 글을 썼다. 그는 평소 SNS에 글을 거의 안 올리는데, 어깨가 아프기 때문이라고 한다. 늘 컴퓨터에 붙어 앉아 글 쓰는 게 일이다 보니 직업병이 생겨,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글 쓸 엄두를 못 낸단다.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인이니 원고 청탁도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사보나 잡지를 만들어주는 국내 최대 편집대행사가 부도나 자기와 같은 작가와 사진작가들이 받아야 할 돈 6억5000만원이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 그 소식은 얼마 전에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인 선배에게서도 들었다. 회장으로서 원고료 못 받은 협회 소속 작가들 걱정을 한 것인데, 나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 파산이 한두 건인가. 나와 관련 없는 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 친구 어깨가 빠지도록 쓴 글인데 돈을 안 주다니, 그것은 결코 다른 세상의 일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원고료를 제때 주지 않고 “기다려라, 다음에 한꺼번에 준다”며 미루는 것은 그쪽 세계의 고질적인 관행이다. 내 친구도 그 회사에 글 써주고 못 받은 돈이 꽤 되지만, 부도 소식을 듣고서야 그동안의 입금 여부를 확인해봤다는 걸 보면 경제적으로 급한 형편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글에서는 후배나 동료들을 위한 안타까움, 글쟁이의 글 값을 떼어먹는 사회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읽혔다. 내 주변 작가들은 대부분 모질게 따질 줄도 모르고, 변호사 찾아다니며 물고 늘어질 여력도 없이, 선한 마음으로 글만 쓰는 프리랜서다.

다시 사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시간이 흘러 새 회사에서 홍보팀장을 맡으며 사보 발행도 책임지게 되었다. 첫 사회생활의 인연도 있고 그쪽 형편도 잘 아니, 될 수 있는 대로 원고료를 후하게 주려고 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20년 넘도록 세상의 원고료 수준은 거의 비슷했고, 사보 제작 대행업체가 요구하는 제작비 수준도 그대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많은 회사가 제작을 중단하거나 온라인 웹진 형태로 전환했다. 그러니 업계는 더 치열하게 출혈경쟁하고, 그렇게 스스로 목을 옥죄어가며 점점 경영위기에 내몰렸다. 그 과정에서 글의 조달방식도 달라져, 유명 문인보다는 점점 프리랜서를 활용해 원고 비용을 최소화했다. 물론 무명이어도 감각과 역량이 뛰어난 작가는 많다. 문제는 사보와 잡지가 사라지면서 그쪽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져 소설가, 시인, 프리랜서 할 것 없이 일감이 계속 줄어들었고, 급기야는 청탁받은 글을 정성껏 써주고도 돈을 떼먹히는 상황까지 왔다.

글도 노력과 품을 들여 만들어내는 엄연한 상품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고질적인 원고료 체불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 많은 작가가 힘들어한다. [사진 Pixabay]

글도 노력과 품을 들여 만들어내는 엄연한 상품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고질적인 원고료 체불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 많은 작가가 힘들어한다. [사진 Pixabay]

친구는 자기 같은 프리랜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아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노무사의 말에 심적으로 힘들어했다. 먹고살 만큼 자리 잡은 글쟁이도 이 정도의 상실감을 느끼는데, 공들여 쓴 글을 팔아 어렵게 먹고사는 글쟁이는 어떨까.

물론 그 업계가 힘든 건 사실이고, 부도 책임자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세상에서 더는 사주지 않는데 돈이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농사꾼은 씨앗부터 구해야 하고, 대장장이는 쇠부터 사야 하는 게 이치인데, 책 만드는 자가 글 값은 외상으로 미루고 자기 몫부터 먼저 찾아 먹는 게 말이 되는가. 그건 자기 이해관계 사슬 중에 가장 약한 곳을 찾아내 쏟아붓는 전형적인 갑질이다.

‘오징어게임’을 보며 가진 여러 불편한 느낌 가운데, 특히 낯선 땅에서 배신과 속임수로 생을 마감하는 이주 노동자 알리가 기억에 남는다. 그의 불행은 공장에서 몸을 상하고도 악덕 기업주로부터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남의 돈을 썼으면 갚아야 하고, 남에게 해를 끼쳤으면 물어내야 하고, 남의 품을 썼으면 삯을 주어야 한다. “나도 죽을 형편이라 그렇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 상대도 죽는다. 결국 둘 중에 최소한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게 웬 현실 속의 ‘오징어 게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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