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김형석 교수처럼…대학원 첫 학기 맞은 만학도의 포부

중앙일보

입력 2021.09.26 11:00

업데이트 2021.09.27 08:23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02)

50대 중반의 나이에 대학원에 입학했다. 소식을 접한 지인들은 응원해주면서도 많이 신기해하고 궁금해했다. 재미있게 놀며 지내지 인제 와서 웬 공부냐, 왜 고생길로 들어가냐, 심지어 그렇게 심심하냐고도 묻는다(하긴, 공부도 ‘원초적 놀기’의 중요한 일부다). 하여튼 다들 자기 삶의 성격대로 나를 해석한다. 묻기만 하고 들을 의향도 없는 그들에게 일일이 속내를 밝힐 겨를도 없다.

내가 다니는 곳은 전북대 사학과 대학원이다. 우연히도 돌아가신 아버님이 60여 년 전에 이곳 사학과를 졸업하셨다(부자간에 이어지는 끈이 생겨 기분 좋다). 아직 비대면 수업이라 캠퍼스 생활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50대 중반에 시작한 공부는 일단 재미있다. 목표가 생기니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채 책에 빠져들 수 있어 좋다.

아직 비대면 수업이라 캠퍼스 생활을 실감하지는 못하지만, 은퇴 후에 다시 시작한 공부는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다. 학습환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 당황스럽기도 하다. [사진 pixabay]

아직 비대면 수업이라 캠퍼스 생활을 실감하지는 못하지만, 은퇴 후에 다시 시작한 공부는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다. 학습환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 당황스럽기도 하다. [사진 pixabay]

신입생답게 학교 자랑도 하게 된다. 국립대라 등록금이 저렴하고, 학교에 주차도 할 수 있고(한 달에 6000원), 맛있는 학생식당을 이용할 수 있고, 도서관에 둥지 틀 수도 있다. 그런 것이 상징하는 것은 ‘소속감’이다. 퇴직 후 무소속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은 강력한 무형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전주로 이주한 지 3년 만에 뭔가 뿌리내리는 기분이 든다.

여기까지만 생각해보면 학생 신분으로 복귀한 게 얼마나 즐거운가. 그런데 문제는 공부다. ‘눈도 침침한 내가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하며 개강 전부터 많이 긴장했고 세계사 교재를 반복적으로 읽었는데, 아무래도 대학원 과정에서 이런 것을 공부할 것 같진 않았다. 그러다가 첫 수업을 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 역사 지식을 기초로 해 근본적인 것을 생각해 보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게 대학원 과정 같았다.

600쪽짜리 책을 다음 시간까지 읽고 이야기하자는 교수님의 말씀에 군기가 바짝 들어 평소 같으면 열흘은 잡고 있었을 책을 나흘 만에 독파했더니 무척 피곤하면서도 정신적인 쾌감이랄까, 예전에 공부하던 때의 기분이 되살아났다. 이 느낌, 약간 낯설고 겁나면서도 익숙하고 반가웠다. 갑자기 모드가 전환되었는지, 다른 일을 할 때도 몸이 잽싸진 것 같다.

학부 때 전공(국문학)과 다른 과정이라 ‘고대 오리엔트 세계’라는 사학과 1학년생들 과목을 추가로 수강하고 있다. 10월부터 대면 수업을 하면 우리 아이들보다 한참 어린 학생들과 강의실에서 만난다. 약간 어색해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대학 문에 들어서면서 나이 개념은 다 잊기로 했지만, 해맑게 앞에 나서거나 들이댔다가는 꼰대성을 노출할까 봐 되도록 조용히 지내려고 한다.

오래 전부터 해오던 서양 근현대 소설 읽기와 은퇴 후 실행 중인 ‘해외 한 달 살기’와 연계하기 위해 대학원에서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이 사진은 2018년에 방문한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의 라틴다리다. 1차 대전의 도화선이 된 오스트리아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사건이 있었던 장소다.

오래 전부터 해오던 서양 근현대 소설 읽기와 은퇴 후 실행 중인 ‘해외 한 달 살기’와 연계하기 위해 대학원에서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이 사진은 2018년에 방문한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의 라틴다리다. 1차 대전의 도화선이 된 오스트리아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사건이 있었던 장소다.

30대 후반 시절, 교사로의 전직을 꿈꾸며 야간대학원에서 국어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때는 중·고등 교육과정이 이전과 완전히 바뀌어 교과목을 이해하는데 애먹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공을 바꾼 부담도 있고, 교육환경 자체가 아예 바뀌어 많은 부분이 온라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도서관에서 책을 한 보따리씩 빌려 나오던 시절과 달리 스마트폰 앱이 출입증이자 학생증이고, 자료는 데이터베이스화해 집에서 간단히 내려받을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수업도 줌이나 구글미트로 한다. 곧 익숙해지겠지만 당장은 답답하고 부담스럽다.

이제 앞에서 말한 ‘왜 다시 공부를 시작하냐?’는 질문에 답할 차례다. 나는 은퇴 후에 고맙게도 ‘작가’라는 직함을 얻었지만 스스로는 매우 조심스럽다. 역량 있는 전업 작가처럼 젊은 날부터 자신을 글 속에 녹여가며 얻어낸 무게감도 없고, 글 쓰면서 생계를 고민하거나 인생을 바친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그들과 급이 다른 ‘초짜’다. 직장 다니며 틈틈이 썼고 퇴직 후에도 글을 계속 이어가지만,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일상의 자잘한 소재를 찾아내 쫑알대는 잔챙이 작가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전에 모 일간지에 간단히 인터뷰할 때 “은퇴 후의 취미는 깊이와 지속성이 있어야 하고, 취미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게 좋다”고 말한 적 있다. 글쓰기를 취미 이상으로 만들어놓긴 했지만, 여기서 더 치고 나가고 싶은데 추진 연료가 부족해 보여 더 채워 넣고 싶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자격지심도 약간 있다. 일상의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풀다가 가끔 지적 영역에 한발 들여 조금이라도 내 견해를 펼치자면 “당신이 뭘 안다고?” 하는 반발이 있지 않을까 움츠러들 때가 있다. 나도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견해를 밝힐 수 있는 전문 분야를 갖고 싶었다. 그동안 관심 두고 지속해온 ‘서양 근현대문학 읽기’와 ‘해외 한 달 살기’에 역사적 배경이 더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 사학과 공부를 선택한 것이다. 멀고 힘든 여정이 될 것 같다.

그동안 무욕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욕심이 참 많은 사람 같다. 사람들은 은퇴 후부터 노후까지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활동이 아닌 ‘활약’을 하고 싶다. 전성기가 아닌, 전 생애에 걸친 활약을 보여주는 분이 많다. 101세의 김형석 교수도 그렇고, ‘아름다운인생학교’를 운영 중인 [더,오래] 필진 백만기 선생님도 그렇다. 그들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이제 내게 남은 기회는 많아 봐야 한두 번, 그러니 의욕만 앞서 새벽반 학원을 등록했을 때처럼 게으름에 젖어 나약하게 물러설 수는 없다. 다시 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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