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談-윤웅걸] 검사의 탄생…王의 대관 vs국민의 대관

중앙일보

입력 2021.10.18 05:00

업데이트 2021.10.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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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웅걸 전 대검 기조부장이 중앙일보 디지털 로담(Law談)에서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을 소개하고 이해를 돕는 '윤웅걸의 검사이야기'를 새로 연재한다. 중앙포토

윤웅걸 전 대검 기조부장이 중앙일보 디지털 로담(Law談)에서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을 소개하고 이해를 돕는 '윤웅걸의 검사이야기'를 새로 연재한다. 중앙포토

검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물리력 또는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러 국가제도 중 검사는 다른 제도에 비하여 비교적 탄생의 배경이 뚜렷한 편이다. 한마디로 검사는 프랑스 혁명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전 프랑스 구체제에서 왕의 사적 이익을 보호하고, 왕이 개인 자격으로 소송에 참가할 때 왕을 대리하는 ‘王의 代官(procureur du Roi)’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통상적으로 이를 검사의 기원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왕의 대관’은 검사의 형식적인 기원이 될 수는 있겠으나, 오늘날 세계 각국의 검사가 국왕이나 대통령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상 검사의 실질적인 기원은 프랑스 혁명 후에 나타난 ‘공화국의 대관(procureur de la Republique)’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프랑스 혁명은 왕이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화국을 지향하였다는 점에서, 검사는 혁명으로 왕을 대신하여 권력의 주인이 된 국민의 대관, 즉 ‘공화국의 대관’이 된 것이다. 이에 검사는 사회를 대표하고 사회의 이름으로 법원이 공공질서에 관련된 법을 선언하는지 여부를 감시하는 역할과 함께 범죄를 수사·소추(기소)하고 사법경찰을 지휘·감독하는 역할도 맡게 되었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시작된 검사제도는 나라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비교적 유사한 형태로 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위와 같은 정신을 이어받아 법률을 통하여 검사에게 수사와 소추를 맡기고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이자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규정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도 검사는 대통령이나 권력의 대관이 아닌 ‘국민의 대관’인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한편 검사는 프랑스 혁명에 즈음하여 형사소송 구조가 규문주의(糾問主義·법원이 형사소추와 재판을 모두 맡는 제도)에서 탄핵주의(소추기관과 재판기관을 분리한 제도)로 바뀌면서 필수불가결하게 생겨나게 됐다. 3권분립 이전의 전근대 국가들은 대부분 절대권자인 왕에 의해 임명된 행정관료가 재판관을 겸임하는 등 행정권과 사법권이 분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범죄자를 수사·소추하는 기능과 심리·심판하는 재판기능도 분리되지 않은 규문주의 절차를 취하였다. 소추의 주체와 심판 주체가 동일한 규문주의하에서 독단·독선적 판단 및 고문을 인정하는 조사방법 등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자 소추기관과 재판기관을 분리하는 탄핵주의가 등장하게 되었고, 재판기능에서 분리된 수사 및 소추의 권한은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에게 부여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언제부터 검사가 있었을까? 많은 이들이 한국의 검사제도는 일제 강점기에 도입됐고 현재의 검사제도는 일제의 잔재라고 알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이는 마치 일제가 증기기관차를 수탈의 도구로 사용했다고 하여 서양에서 만들어진 증기기관차를 일제의 잔재라고 보는 것과 같다. 오늘날과 유사한 서구식 검사제도, 즉 검사에게 수사권, 수사지휘권, 기소권 등을 부여한 검사제도는 갑오개혁 당시 이미 도입되어 있었다. 즉 1895년 제정된 ‘재판소구성법’, ‘검사직제’ 등 입법을 통하여 각급 재판소에 검사를 두도록 규정함으로써 한국에 최초로 ‘검사’라는 관직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한국도 조선 말기에 당시 유럽의 제도를 본받아 재판을 전담하는 판사와 범죄수사 및 기소를 담당하는 검사를 구별하는 근대적 검사제도를 보유하게 되었다.

검찰, 검사 제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연합뉴스

검찰, 검사 제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연합뉴스

다만 도입 당시 왕조시대와 직후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검사제도는 형식적인 탄핵주의를 유지하였을 뿐 ‘왕의 대관’은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1948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한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사는 명실상부 ‘국민의 대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나, 현실에 있어서는 이에 대한 많은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계몽주의 정신을 계승한 검사제도가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검사들의 과도한 권한 행사와 정치권력의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제도 자체가 많이 훼손되게 되었고, 공익과 인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부여받으면서 탄생한 검사제도가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검사제도가 표류하고 있는 작금에 한국의 검사는 과연 ‘왕의 대관’에서 벗어나 ‘국민의 대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제도만 탄핵주의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프랑스 혁명 이전 규문주의 아래 독선과 독단 속에 우리 검사들이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위와 같은 검사의 탄생을 되돌아보면서 물어야 할 때이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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