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7년 싸늘한 송장처럼 지내다 6주 반짝 살다 간 사나이

중앙일보

입력 2021.10.16 12:00

[더오래] 오민수의 딴생각(12)

“호흡을 하는 순간 반드시 삶과 죽음이 동시에 진행된다.”

간혹 인간의 생체 시계가 멈추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것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죽은 것이 아니고, 산 것처럼 보이지만 산 것도 아니다. 미국의 저명한 뇌신경학자이자 수필가인 올리버 색스는 우연히 엉클 토비를 만나면서 그런 삶을 목격하게 된다. 때론 죽음을 바라보는 게 삶을 더 명확하게 해준다. 지금부터는 생체 시계가 잠시 멈췄던 한 남자의 에피소드다.

아주 오래전 1957년, 엉클 토비는 마치 붙박이장처럼 집 한구석에 놓여 있던 사람이었다. 사람을 ‘놓여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색하지만 실제로 그는 가구와 비슷한 것처럼 보였다. 행동은 굼뜨고 움직임도 거의 없더니 어느 날은 완전히 멈춰 섰다. 가족들은 범상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아파 보이진 않았다. 단지 멈췄을 뿐이니까.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엉클 토비를 위해 가족들은 날마다 먹을 것을 주었고, 몸을 돌려주기도 하고 용변도 보게 해줬다. 그 외에 그가 귀찮게 하는 일은 없었다. 정말로 가구의 일부 같았다. 다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가족들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엉클 토비가 큰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는 이미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신경과 전문의인 올리버 색스는 그의 맥박을 짚어봤다. 손목을 만지자 송장처럼 싸늘한 느낌에 흠칫 놀랐지만 희미하고 느린 맥박이 감지됐다. 통상적인 체온계로는 체온을 측정할 수 없어, 저체온증 체온기로 측정한 결과, 정상치보다 무려 16.5도나 낮은 20도가 나왔다.

원인은 금세 발견되었다. 갑상샘 저하증. 즉 몸을 덥히는 난로가 고장 난 것이었다. 난로가 고장 났으니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서서히 얼어붙은 상태로 전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의학적으로 해야 할 일은 너무나 자명했다. 냉동 인간 같은 그에게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것.

호르몬 투여로 그의 몸을 덥히자 마치 배터리가 완충된 것처럼 번쩍 깨어났다. 문제는 그 후였다. 엉클 토비는 지난 7년간을 기억하지 못했다. 언제부터 의식을 잃었냐고 물어보자, 그는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난 것 같다고 대답했다. 엉클 토비는 처음 의식을 잃었던 7년 전, 그러니까 1950년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나이에 비해 무척 어려 보인다는 문제점도 있었지만.

바둑판은 질문을 받지 않는다. 어떤 수를 둘 것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뿐이다. 삶도 마찬가지,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는 것이다. [사진 pixabay]

바둑판은 질문을 받지 않는다. 어떤 수를 둘 것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뿐이다. 삶도 마찬가지,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는 것이다. [사진 pixabay]

갑자기 깨어난 엉클 토비는 활력이 넘쳤다. 무엇이든 말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굴었다. 직업과 직장생활에 대해 수많은 얘기를 하고 연애와 사랑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정치적 견해를 주장하기도 했고 사회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엄청난 양의 신문과 정기간행물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을까 봐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에게 7년 전의 신문과 정기간행물을 공급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그렇게 6주가 지난 후, 그는 완전히 회복했다. 매우 건강했으며 신체도 튼튼했다. 더불어 아주 젊어 보였다. 다만 7년이라는 기억만 없을 뿐. 그런데 결정적인 아이러니가 찾아왔다. 엉클 토비는 갑자기 기침을 하며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인체의 신비였다. 7년 만에 깨어난 것은 의식뿐만 아니라 급성 암세포도 깨어나게 했다. 결국 엉클 토비는 6주 동안의 삶을 마감하고 죽게 되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수필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Everything in its place)』에 이렇게 기록했다.

“그의 가족은 그를 차갑게 방치함으로써 생명을 살렸고, 우리는 그에게 온기를 불어넣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죽음으로 몰고 갔다.”

올리버 색스의 수필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Everything in its place)』. [사진 오민수]

올리버 색스의 수필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Everything in its place)』. [사진 오민수]

나는 이 에세이의 마지막 문장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무엇이 죽음이고 무엇이 삶일까? 의식을 잃은 체 살아왔던 7년이 진짜 삶일까? 아니면 의식과 함께 돌아온 죽음이 진짜 죽음일까? 엉클 토비를 대했던 올리버 색스의 의학적 판단이 자명했듯, 삶과 죽음에 대한 나의 판단도 자명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렇게 묻는 포괄적인 삶의 의미는 중단해야 한다. 삶이란 각자의 질문이다. 삶에 대해 포괄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바둑 챔피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절묘한 수는 무엇입니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게임의 판세와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절묘한 수란 있을 수 없다.

바둑판은 질문을 받지 않는다. 어떤 수를 둘 것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뿐이다. 삶도 마찬가지,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는 것이다. 왜 죽어야 하냐고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라 다가오는 죽음으로부터 내가 살아야 되는 이유를 질문받는 것이다.

의식이 돌아온 엉클 토비는 6주 동안 활력이 넘치게 살았다. 그도 살아야 되는 이유가 있었다. 직업과 직장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며, 연애와 사랑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정치적 견해를 주장하기도 했고 사회 제도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엄청난 양의 신문과 정기간행물을 탐독하기도 했다.

만약 우리가 60년을 산다고 해도 엉클 토비의 6주와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살면서 직업과 직장생활에 대해 수많은 얘기를 나눌 것이며 연애와 사랑에 대해서도 수없이 많은 얘기를 할 것이다. 정치적 견해와 사회 제도의 문제점은 얼마나 많이 비판하게 될까? 또한 얼마나 많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와 블로그를 탐독하며 살게 될까? 엉클 토비와 우리는 무슨 차이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은 다가온다. 6주가 될지, 60년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숨 쉬는 행위가 삶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착각이다. 숨 쉬는 순간, 산소가 몸속에 들어와 물로 변하지만 일부는 전자와 결합하여 활성산소로 변한다. 활성산소는 우리 몸을 죽게 한다. 이 또한 아이러니다. 호흡을 하는 순간 반드시 삶과 죽음이 동시에 진행된다.

삶이란, 호흡의 차이가 아니라 질문의 차이일 것이다. 만약, 삶이 당신에게 더 오래 살아 보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엉클 토비와 다르게 무엇을 하며 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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