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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 구하기/한소 모두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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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측은 북한 규모,소선 미ㆍ일 수준의 건물 희망/한 떠난 동독대사관 빌딩인수를 추진/소 「대국」 걸맞게 광화문에 주선 기대
9월30일자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한소 양국은 초대대사엔 공노명 주소 현영사처장과 키레예프 외무부 아시아사회주의국장으로 쉽게 내정했으나 대사관을 구하는 문제가 피차 어려워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대사관 건물은 그 나라의 외교위상과 직결되어 있어 우리는 최소한 모스크바의 북한 대사관 정도는 되어야겠다는 생각이고 소련은 서울의 미국 일본대사관 규모를 찾고 있다.
○…모스크바를 북방외교의 메카로 만들려는 정부는 장기적으로 우리의 주일(공관원 60여명)ㆍ주미(50여명)대사관과 맞먹는 규모의 주소대사관을 구상하고 있다. 북한이 모스크바대학 근처 노른자위에 5층짜리 대사관을 갖고 있어 정부는 더욱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다.
소련은 모든 건물이 국가소유여서 복덕방을 통한 매입이 불가능한데다 새로 지은 건물이 별로 없어 사무실공급 자체가 태부족이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소정부의 주선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처지.
정부는 이미 지난 8월 독일통일로 쓸모가 없게될 5층짜리 동독대사관을 구입하려고 서독정부측에 타진해 봤으나 외교대국을 노리는 서독이 『공관부속건물로 사용할 예정』이라는 회답을 보내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소련측에 어떻게 좀 다리를 놓아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건물은 구하기도 힘들지만 값도 터무니없이 비싸다. 영사처개설시 소 정부는 공처장의 관저로 30평짜리 아파트를 소개해 주었는데 장차 대사관저로 쓰기엔 너무 초라해 아예 입주하지 않고 현재 참사관이 대신 쓰고 있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쓸만한 건물이 나타나도 연간 임대료가 1백50만달러나 된다』며 혀를 찼다.
정부는 일단 독일ㆍ북한 대사관등이 모여 있는 모스크바의 「강남」격인 모스크바대 근처를 희망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으면 아무 곳이라도 좋다는 입장이다. 다만 소련이 그들도 서울에서 좋은 곳을 고르려면 우리에게 배려하지 않겠느냐는 배짱이다.
어쨌든 대사관ㆍ대사관저 구입에 최소한 2∼3개월은 걸릴 것으로 보고 정부는 우선 현재 공처장등 공관원 5명이 영사처 사무실 숙소로 쓰고 있는 스프러스 호텔의 사무실을 추가 임대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다.
○…소련은 서울에서 「대국」에 걸맞는 대사관을 마련해야 할 입장.
소련 역시 영사처개설 때부터 수교에 대비한 장기적인 고려로 미국ㆍ일본 대사관 등이 모여 있는 세종로 부근에 터를 잡기 위해 구 국제극장부지에 신축중인 빌딩의 사무실을 흥정해 보는등 여러모로 신경을 써왔다.
예레멘코 영사처장은 나름대로 시내중심가의 빌딩을 물색해 보면서 은근히 우리정부가 주선해주기를 기대하는 눈치. 경제적 사정이 쉽지 않은 소련은 양국이 서로 부지나 건물을 마련해주는 「현물교환」식을 원하고 있으나 우리정부는 마땅한 정부소유 부동산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소련 영사처가 입주해 있는 서울 삼성동 공항터미널 건물 6층의 1백여평도 소련 상공회의소와 대한무역진흥공사가 서로 물물교환식으로 마련해준 공간의 일부다.
사회주의국가들은 특히 대사관ㆍ관저ㆍ직원숙소를 한곳에 묶는 「복합식주거」를 선호하고 있어 시내에 이를 수용할만한 빈땅이나 건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 옆에 8천여평의 외교단지가 있긴 하지만 소측이 덩그러니 홀로 이곳에 떨어져 있기는 모양상 좋지 않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소련의 대사관 물색과정에서 민감한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이 정동의 구러시아공관 부지.
이땅은 구한말 고종이 하사한 일부 노른자위땅에다 러시아측이 추가로 땅을 사들여 6천여평까지 불어났다가 1904년 조로 통산조약의 폐기와 함께 러시아가 철수하면서 남겨 놓은 것이다.
그후 공관건물은 없어지고 땅도 도로편입 등으로 4천여평으로 줄어들었지만 시내 중심가라 시가로 치면 수백억원에 달한다.
소련측은 이땅에 은근히 관심을 표하고 있지만 정부는 ▲국제법상 소련이 러시아제국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했다고 볼 수 없으며 ▲국내법상으로도 소유권 소멸시효인 20년이 훨씬 지났다는 이유로 소유권을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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