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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올브라이트 평양 갔지만, 다음 정부로 안 이어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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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호 10면

[SPECIAL REPORT]
문재인 정부 임기 말 남북 정상회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 2일 평양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 2일 평양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에서 남북관계는 대통령 고유의 통치 영역이다. 북한 문제 이외의 다른 분야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한반도 문제가 안고 있는 태생적인 성격이 국가 존립과 안보 차원의 과제인 만큼 최고 지도자의 무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의미다. 이런 배경에서 5년 단임제 정부의 대통령이 고유한 통치 영역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임기 종료 순간까지 의지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의 정확한 워딩은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료됐음을 선언하길 제안한다”였다. 종전선언은 멀게는 1954년 제네바 평화회담부터 가까이는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도 이미 언급됐다. 더욱이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의지의 문제일 수 있다. 북한 비핵화처럼 북·미 상호 행동의 우선순위나 검증이란 난제도 없는 단지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종전선언이 1948년 ‘두 개의 한국’이 등장한 이후 일관되게 지속된 ‘한반도 평화 정착이란 과제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것이냐’는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 사안 중 하나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객관적인 논의를 위해 세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정말 정치적 의지만 필요한지, 다가오는 대선과의 연관성은 어떠한지, 그리고 미국으로 대표되는 국제적 변수는 무엇인지 등이다.

외교안보 현안, 대선에 큰 영향 안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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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00년 10월 23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열린 만찬에서 김 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이들 방북은 노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임기 말에 이뤄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AP=연합뉴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00년 10월 23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열린 만찬에서 김 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이들 방북은 노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임기 말에 이뤄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AP=연합뉴스]

첫째, 종전선언은 관련국들의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실현 가능할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종전선언은 한반도 분단 구조 및 평화 정착 과정과 무관한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고, 비핵화 과정 등으로 구성된 복잡한 평화 체제 문제와 동떨어진 채 횡으로 절단해 접근하긴 어려운 사안이다. 예를 들어 남북한이 수천 년의 역사 동안 하나의 정치 공동체를 이뤄 살아온 동일 민족이 아니라면, 혹은 동일 민족이라 하더라도 포스트모던한 국제정치 시대를 맞아 남북이 각자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 ‘1민족 2국가’ 시스템의 길을 가기로 합의한 것이 아니라면 종전선언이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과 분리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핵무기는 포기할 수 없다”는 북한의 입장이 한 치도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종전’이 이슈화될 경우 주한미군의 역할, 남북 및 북·미 군축회담, 동북아 다자 안보, 미·중 갈등의 한반도 투영 등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이슈들이 봇물 터지듯 밀어닥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전쟁 상태를 종식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북한은 30여 년 전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가 체제를 전환하고 개방할 때도,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 중 최초로 탈퇴를 선언하고 핵실험을 감행할 때도,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1000억원을 들여 만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할 때도 일관되게 내세운 논리는 ‘불공정한 체제 위협’이었다. 이런 전례에 비춰볼 때 북한이 한국과 관련국의 정치적 의지가 담긴 종전선언을 진심으로 반기고, 향후 평화 구축 과정에서 한국의 선의에 호응하며, 비핵화를 포함해 스스로 져야 할 국제적 의무를 기꺼이 감당할 거라고 기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둘째, 종전선언이 세간의 분석처럼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고려한 고도의 정치적 게임이냐의 문제다. 즉 외교안보 사안이 국내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주느냐의 문제다. 한국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에는 ‘3대4대3’의 원칙이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진보 성향 유권자가  30%, 보수 성향 유권자가 30%, 그리고 중도 성향이면서 무당파인 유권자가 넓게 보면 40%에 이른다는 논리다.

이에 따르면 2007년 대선 때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에게 표를 던진 26%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게 투표한 3%, 그리고 2007년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와 유승민 후보가 함께 얻은 30%는 웬만해선 지지 성향을 바꾸지 않는 진보와 보수 세력 30%를 각각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사표를 각오하는 투표층인 셈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런 구조 속에서 유엔이란 무대를 통해 문 대통령이 깃발을 내건 종전선언은 다가오는 대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그다지 큰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총선은 주로 경제 성과를 평가하는 ‘회고적 투표’ 성격인 데 비해 대선은 외교를 포함해 국가 비전을 놓고 선택하는 ‘전망적 투표’ 성향이 강하다.

그런 만큼 유권자들이 종전선언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하려면 그 내용에 구체적 전망이 담겨 있어야 한다. 대선후보들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한·미 및 한·중 관계와 관련해 저마다의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상황에서 종전선언처럼 규정하기도 쉽지 않은 막연한 이슈로는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기 힘들다. 더욱이 지금은 코로나 이후 세상, 부동산, 복지 정책, MZ세대의 희망과 절망 등이 선거 쟁점으로 이미 안착했고 시대 변화에 따라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도 주요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과거 사례도 마찬가지다. 북방정책이 잇따라 성과를 거뒀던 1992년 대선에서도, 월드컵 함성 한가운데서 연평해전이 발생했던 2002년 대선에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28살 약관의 지도자가 북한에 등장한 2012년 대선에서도 보수·진보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만큼 북한 이슈가 대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긴 쉽지 않게 됐다는 뜻이다.

‘평화 모멘텀’이 선거 전후 어떻게 이어지느냐의 문제는 미국의 사례에서도 발견된다. 조지타운대 교수 출신으로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평양을 찾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예방한 건 2000년 미국 대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평소 브로치를 통해 ‘패션 외교’를 즐기던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김 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커다란 금색 성조기 무늬의 브로치를 달았다. 평양 거리에 펄럭이는 성조기를 보고 싶다는 외교관의 희망이 담겼을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의지는 남달랐다. 이런 배경하에 성사된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방북은 열흘 전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의 방미에 화답하는 형식을 갖췄다. 원래는 북한 국가 의전 서열 1위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방미가 추진됐는데, 독일 공항에서 김 위원장이 미국 항공기 직원의 과도한 몸수색을 뿌리치고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클린턴 전 대통령은 한 달 뒤 백악관에서 김 위원장 대신 군 서열 2인자인 조 부위원장과 회동하며 평화 모멘텀을 이어가려 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고위급 인사 상호 방문 외에도 ‘페리 프로세스’로 알려진 한·미 공동 작업을 통해 평화 정착 해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등장한 이후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대북 정책 기조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미국 대통령이 임기 말 추진한 북한 이슈가 다음 정부에서 어떤 변수와 맞닥뜨리게 됐는지는 종전선언을 평화 모멘텀으로 삼으려는 문재인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럴 때일수록 현실 냉정히 바라볼 필요

셋째, 종전선언 논쟁의 또 다른 중심인 미국의 입장이 어느 정도 변수가 될 것인가의 문제다. 트럼프 정부의 중국 압박 기조는 바이든 정부 출범 후 한층 더 강화돼 오커스(AUKUS)·쿼드(Quad)와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등 뜻을 충분히 인지하기도 힘든 명칭의 국제 협조 체제가 속속 출현하고 있다. 1945년 이후 ‘전후 질서’에서 전대미문의 최강국 지위를 확보했던 미국이 옛 소련과는 문명적 배경부터 전혀 다른 중국이란 경쟁국을 상대로 매우 복잡한 국제안보 게임을 다각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순간이다.

국내 정치 차원의 자원을 외교에 동원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는 미국 입장에서 아시아 지역의 동맹 파트너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외교 자원이다. 특히 한반도는 중국이 부상하면 할수록 전략적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곳이다. 현재 미국은 한반도 안보가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되다가 베트남 사례처럼 값비싼 대가 없이, 독일 통일 사례처럼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아 평화롭게 해결되길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관점에서도 한반도 게임과 미·중 게임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작동해야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섞여 버리면 한반도 평화 체제는 오히려 더 요원해질 수 있다.

지금 문 대통령의 마음속엔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4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의미 있는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화의 결실로 이어지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이 남아 있을 것이다. 2017년 한반도 전쟁 위기를 뒤로하고 평창 동계 올림픽을 통해 한반도에 외교의 시간을 되찾아온 반전의 자신감도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현재 국내외의 산적한 위기를 일거에 역전시킬 수 있는, 집권의 순간부터 일관되게 어젠다 세팅했던 종전선언에 대한 애착도 그 무엇보다 클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대통령의 열린 귀와 열린 마음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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