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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 도심 은행서 총성 3발…은행원 숨지고 3억 털렸다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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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내셔널팀장의 픽: 20년째 수사중인 '대전 권총강도' 

지난 17일 오후 1시56분쯤 전남 함평나비휴게소. 마스크를 쓴 한 남성이 주차된 흰색 화물차로 빠르게 다가갑니다. 이후 남성은 화물차 밑으로 사라지더니 5초 후 차량 뒤편으로 황급히 달아났습니다. 남성이 간 뒤 화물차 연료공급선은 날카로운 도구로 잘린 상태였답니다.

피해를 본 차량은 최근 파리바게뜨 배송 기사들의 파업으로 회사 측이 대체 투입한 화물차였습니다. 경찰은 피해 화물차를 따라 휴게소로 들어온 승용차 2대에 주목했습니다. 당시 승용차에 탔던 남성이 화물차 밑으로 들어가는 게 찍힌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확보한 겁니다.

경찰은 이 남성 등 3명을 특수재물손괴와 업무방해 혐의로 조사 중입니다. 3명이 화물차를 망가뜨림으로써 배송 업무에 차질을 빚게 했다고 본 겁니다.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휴게소 내 사건이 CCTV 덕분에 손쉽게 해결된 순간입니다.

이 사건처럼 “CCTV가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식만 들으면 착찹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20년 전 발생한 '대전 국민은행 권총강도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들입니다. 당시는 방범용 CCTV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데다 사건이 난 은행 지하주차장에는 CCTV가 아예 없었다고 합니다.

지난 17일 전남 함평군 엄다면 무안광주고속도로 함평나비휴게소에서 파리바게뜨 배송 대체 기사가 탄 화물차 연료 공급선이 잘려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CCTV 영상 등을 토대로 화물연대 파업 관련 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전남 함평군 엄다면 무안광주고속도로 함평나비휴게소에서 파리바게뜨 배송 대체 기사가 탄 화물차 연료 공급선이 잘려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CCTV 영상 등을 토대로 화물연대 파업 관련 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년 전 담당 형사 “CCTV만 있었더라면…”

당시 사건을 담당한 한 형사는 “그때 폐쇄회로TV(CCTV)만 있었으면 곧바로 잡았을 텐데”라며 아직도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대낮에 도심 한복판에서 권총강도 사건이 났는데도 용의자조차 특정하지 못해서입니다. 당시 난 총성과 함께 은행 직원 한 명이 목숨을 잃고 3억원의 현금이 털렸습니다.

사건은 크리스마스를 나흘 앞둔 2001년 12월 21일 오전 10시쯤 발생했습니다. 대전 국민은행 둔산지점 지하주차장으로 현금 6억 원을 실은 이스타나 승합차가 들어선 겁니다. 1만 원권 3만장(3억 원)이 담긴 가방 2개를 실은 차에는 국민은행 용전지점 김모 과장(당시 45세)과 청원경찰, 운전기사 등 3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김 과장 일행이 승합차에서 내려 현금가방을 손수레에 올리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검정색 그랜저XG 차량이 승합차의 뒤쪽을 가로막더니 복면을 쓴 남성이 내려 권총을 발사한 겁니다. 당시 남성이 쏜 총알 두 발을 맞고 쓰러진 김 과장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김 과장이 쓰러진 사이 남성은 수레 위에 놓여 있던 가방 두 개 중 한 개를 그랜저 차량에 싣고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갔습니다. 모든 게 불과 4~5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답니다.

대전 국민은행 권총강도 사건. 2001년 및 2021년 9월 현재 모습. [중앙포토]

대전 국민은행 권총강도 사건. 2001년 및 2021년 9월 현재 모습. [중앙포토]

130m 떨어진 건물서 차 갈아타고 도주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범인들은 이미 달아난 뒤였습니다. 범행에 이용된 그랜저 차량만 사건 9시간 만인 오후 7시10분쯤 발견됐을 뿐입니다. 범행 현장에서 130m쯤 떨어진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발견된 그랜저는 같은 달 1일 경기도 수원에서 도난당한 차량이었답니다.

경찰은 범인들이 현금수송 차량의 이동경로 등을 정확하게 알고 있던 점으로 미뤄 은행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범행으로 추정했습니다. 범행 수법이 대담한 데다 권총까지 사용한 범죄여서 동종 전과자도 용의 선상에 올리게 됩니다.

수사 끝에 경찰은 범인을 3명으로 추정했습니다. 지하주차장에서 현금을 강탈한 2명과 또 다른 1명이 함께 움직인 것으로 판단한 겁니다. 범행에 이용된 3.8구경 권총은 두 달 전 대전에서 순찰 중 피습을 당한 경찰관이 분실한 것이라는 것도 파악이 됐습니다.

2001년 12월 21일 대전시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현금수송차 권총강도 사건' 당시 경찰이 현장 사진을 찍고 있다. [중앙포토]

2001년 12월 21일 대전시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현금수송차 권총강도 사건' 당시 경찰이 현장 사진을 찍고 있다. [중앙포토]

은행 직원, 전과자까지 5000명 용의 선상 

이후 경찰은 은행 직원과 경비업체 관계자, 유사 범행 전과자 등을 모조리 수사합니다. 권총을 정확하게 쏜 점을 근거로 퇴직한 군인이나 경찰까지 줄줄이 불려 나왔습니다. 경찰관 피습 장면이 담긴 비디오를 빌린 사람까지 조사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당시 경찰의 용의 선상에 오른 사람은 5000명에 달했습니다.

제자리를 맴돌던 수사는 술자리에서 자신이 범인의 지인이라고 떠든 20대 남성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면서 탄력이 붙는 듯합니다. 이 첩보를 근거로 사건 발생 8개월 만인 2002년 8월 송모(당시 21세)씨 등 3명을 검거한 겁니다.

2001년 12월 21일 대전시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현금수송차 권총강도 사건' 옹의자 인상창의. [중앙포토]

2001년 12월 21일 대전시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현금수송차 권총강도 사건' 옹의자 인상창의. [중앙포토]

2015년 공소시효 폐지…미제팀서 계속 수사 

하지만 3명 모두 범행을 부인한 데다 범행 증거를 찾지 못해 결국 이들을 풀어주게 됩니다. 당초 이들이 훔쳤다는 현금이나 범행에 이용한 권총의 소재도 확인되지 않자 수사는 다시 미궁에 빠졌습니다.

애초 이 사건은 2016년 12월 공소시효가 만료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5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대전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에서 현재도 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갖고 있는 이 사건 관련 자료는 1t 트럭 한 대 분량에 달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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