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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퇴직연금이 공적 연금이 될 수 없는 이유 몇가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92)

얼마 전 국회 퇴직연금 개혁토론회에서는 현재 퇴직연금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퇴직연금의 ‘준공적’ 연금화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다. 퇴직연금 의무가입 및 사각지대 해소를 통해서다. 퇴직연금 도입 16년이 지난 현재, 경제활동인구 대비 국민연금 가입률은 약 80%지만 퇴직연금 가입률은 약 27%에 그치고 있다.

퇴직연금 가입자를 인구통계적으로, 적립금 규모별로, 노후대비수준 정도로, 자산운용 능력 등으로 세분화해 접근하는 유연제도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진 pxhere]

퇴직연금 가입자를 인구통계적으로, 적립금 규모별로, 노후대비수준 정도로, 자산운용 능력 등으로 세분화해 접근하는 유연제도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진 pxhere]

가입 의무화를 통해 퇴직연금의 사각지대를 없애 모든 상용직 근로자가 퇴직금이 아닌 퇴직연금을 받게 하는 퇴직연금의 ‘연금화’는 국민연금의 낮은 급여를 보완한다는 취지다. 이런 주장은 아래 〈표1〉과 같이 연금수령 비율이 3.3%에 불과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접근이다.

〈표1〉 퇴직연금 일시금 및 연금 수급현황. [자료 고용노동부]

〈표1〉 퇴직연금 일시금 및 연금 수급현황. [자료 고용노동부]

퇴직연금의 준공적 연금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으로 중간층 이상 근로자의 노후소득 보장성이 크게 개선되고, 퇴직연금이 영세 사업장까지 확대되면 저소득 노인의 소득원으로도 기여하게 되면서 일반 재정의 기초소득보장 비용 절감에 도움을 준다는 점이 꼽혔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과 비교해 볼 때 두 가지 단점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1.76%,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2.81%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 첫째고, 둘째는 퇴직연금의 수수료(총비용부담률)가 높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퇴직연금제도를 ‘의무화’ 혹은 ‘강제화’ 하자는 주장이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퇴직급여는 법적으로 강제적이고, 그 안에 퇴직금제와 퇴직연금제가 있으므로 정확하게 말하면 향후 퇴직연금제로 ‘단일화’한다는 용어가 더 적절해 보인다. 그렇게 되면 어느 시점에서는 퇴직급여제도의 존재 의미를 찾기 힘들어 퇴직금제는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고, 퇴직연금제만 법정제도로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당연히 퇴직연금 사각지대는 없어지게 된다.

퇴직급여를 일시금이 아닌 연금형태로 강제화하자는 것은 좋은 취지지만 퇴직급여 적립금이 너무 적어 연금화의 의미가 없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2020년 기준 연금수령 계좌의 적립금은 1억 9000만원으로 가입자 평균 적립액 4000만원보다 월등히 많고, 일시금 수령 계좌의 평균 잔고가 1600만원인 것을 보면 연금수령은 적립금 규모가 커야 한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따라서 연금화를 강제한다는 것은 적립금이 적은 가입자 입장에서 보면 크게 효용이 있다고 보기 힘들 것이다.

준공적 연금화가 이루어진다고 퇴직연금 수익률이 높아진다는 보장이 없을 뿐 아니라 자칫 가입자의 의사결정권을 저해해 퇴직연금의 사적 책임 원리에 합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는 사전지정 운용제도(디폴트 옵션)의 도입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퇴직연금제도 수수료율이 높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시장의 가격 결정구조를 정부가 감독으로 개입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가치공식, 즉 ‘가치=혜택-비용’에서 혜택을 높이는 쪽으로 유도해 나가야 한다. 혜택은 당연히 가입자에게 양질의 교육, 자산운용 자문서비스 경쟁, 성과기반 수수료책정 등이 해당할 것이다.

준공적 연금화의 핵심이 퇴직연금제도의 의무화와 연금화라고 하면 의무화는 퇴직연금 단일화로 해결할 수 있고, 연금화는 적립금 규모를 키우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보다 정교한 퇴직연금 설계 개혁이 필요하다. 가입자라고 모두 같은 가입자가 아니다. 가입자를 적립금 규모, 노후대비 수준, 자산운용 능력 등으로 세분화해 접근할 수 있는 유연제도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적립금 규모가 작고 곧 퇴직할 가입자에게는 일시금을 허용하고, 직장생활 초기 근로자에게는 TDF와 IRP 활용을 권장하는 식이다. 적립금이 많고 투자 지식이 높으면 투자 한도 제한을 완화하는 등 융·복합적 제도설계를 가능하게 하면 한층 더 나은 퇴직연금제로 발전할 것이다. 물론 말처럼 제도 유연화가 쉽지는 않겠지만 너무 거시적인 제도개혁보다 가입자의 욕구에 맞는 제도설계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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