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영끌'에 퇴직연금 증발…중도인출 급증, 붕뜬 노후

중앙일보

입력 2021.08.21 14:00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89)

중도인출은 퇴직적립금을 키울 기회를 상실하는 결과를 낳는다. 적립금 운용 기회를 날리는 중도인출을 그냥 두는 것은 퇴직연금제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길어지는 노후를 암담하게 할 뿐이다. [사진 pxhere]

중도인출은 퇴직적립금을 키울 기회를 상실하는 결과를 낳는다. 적립금 운용 기회를 날리는 중도인출을 그냥 두는 것은 퇴직연금제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길어지는 노후를 암담하게 할 뿐이다. [사진 pxhere]

퇴직연금제가 국민들의 노후준비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돼 왔다. 그러나 이말은 퇴직적립금이 충분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그리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그 이유를 보험개발원의 ‘2020 KIDI 은퇴시장 리포트’에서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리포트는 2014년부터 격년 주기로 발간돼 오고 있는데, 2019년 수도권 및 광역시 거주 30~50대 비은퇴자를 대상으로 했다. 아래 [그림1]에서 보면 은퇴 시 조사대상자들의 예상 퇴직급여액 평균은 약 9466만원이었다. 그런데 1억원 이하라고 예상한 응답자의 비율이 77.4%였고, 2억원 초과라고 예상한 응답자는 불과 7.5%였다.

[그림2]에서 은퇴 시 퇴직급여 예상 사용처 응답 결과를 보면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이 노후생활비로 67.1%였고, 그 다음은 가족부양비 19.8%였다. 가족부양비도 사실상 노후생활비로 볼 수 있어 86.9%가 생활비 성격으로 소진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만약 예상 평균 퇴직급여 약 9466만원을 55세 은퇴 이후 2055년 30년 동안 쓴다고 가정하면 월 26만 3000원을 노후생활비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림1]에서 응답자의 40.1%인 예상 퇴직급여액이 5000만원 이하의 사람은 월 생활비가 13만 9000원에 못 미친다. 이들한테는 퇴직연금이 노후생활비 재원 역할을 못 한다는 이야기다. 30년 기간 동안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그 가치는 더 미미하다.

55세 이전 퇴직연금 가입자는 퇴직금의 개인형퇴직연금제(IRP) 이전이 의무화돼 있다. 2019년의 경우 IRP이전 인원은 84만4000명, 이전 금액은 13조 9000억 원이었다. 그러나 IRP해지 인원은 86만5000명, 해지 금액은 11조 2000억 원이었다. 이전인원보다 해지 인원이 많은 이유는 2019년 이전 이전자의 해지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1인당 이전 금액은 1600만 원, 1인당 해지 금액은 1300만 원이라는 통계치다. 해지자의 적립금이 크지 않아 연금 지속성의 의미가 크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퇴직적립금이 노후소득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퇴직연금 가입기간 동안 저조한 수익률로 적립금을 키우지 못한다는 것이 우선적인 이유가 된다. 아래의 [그림3]에서 보면 2018~2020년 3년간 평균 수익률은 1.95%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수익률로는 적립금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퇴직연금제 DC(확정기여형)과 IRP의 중도인출이 늘어나고 있어 적립금 운용 재원이 고갈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 중도인출은 특별한 경우, 즉 위급한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표1]에서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주택 구입과 관련한 중도인출이 많다. [그림4]에서 보면 중도인출 사유가 40대 이전에는 주로 주택구입과 주거임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주택가격의 급격한 상승에 따라 퇴직연금 중도인출이 구입 자금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영끌’이라는 용어가 이제 평범하게 들리니 중도인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중도인출을 제한하는 것은 내 퇴직급여를 활용하겠다는데 웬 간섭이냐는 반발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돈에도 용처가 있는 것이다. 어떤 재원은 가계 필수 생활비로, 어떤 재원은 자산을 늘리는 재테크용으로, 또 어떤 재원은 노후준비용으로 명확히 구분해 두는 것이 나름 합리적인 자산 관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노후자금인 퇴직적립금을 주택구입자금으로 써버릴 경우 노후생활의 안정이 물건너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도인출은 퇴직적립금을 키울 기회를 상실하는 결과를 낳는다. 중도인출로 적립금이 줄어 연금화해봤자 용돈수준에 불과할 것이라고 대부분의 가입자가 생각할 수 있다. 문제해결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규제로만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이 적립금 운용 기회를 날리는 중도인출을 그냥 둔다는 것은 퇴직연금제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길어지는 노후를 암담하게 할 뿐이다.

퇴직연금제는 매우 복잡한 운영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복잡한 제도를 운영하는 관계 당국의 끊임없는 연구와 제도개선, 대국민 설득만이 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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