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원금손실 문제 이렇게 풀어라

중앙일보

입력 2021.09.04 14:00

업데이트 2021.09.06 14:29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90)

퇴직연금제 도입 초기에는 사업자들의 과당경쟁으로 수익률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경쟁은 그대로인데 원리금 보장상품 금리가 현실적 수준으로 수렴하면서 퇴직연금 수익률은 곤두박질쳤다. 이의 처방 중 의미 있었다고 할 것은 과도한 투자 한도 제한(확정기여형 기준으로 초기 위험상품 40% 이하. 현재 70% 이하) 완화 밖에는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실적배당형 비중을 의미 있게 높인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가입자의 제도와 자산운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는 데 있었다. 올해 들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일부 개정으로 확정급여(DB)형의 투자원칙보고서를 의무화하고, 그동안 퇴직연금 사업자에게만 위탁하던 가입자교육을 가입자교육 전문기관에도 허용한 정도다.

퇴직 연금 제도를 설계할 때 기능이나 이해관계 중심이 아닌, 가입자의 어려운 점을 먼저 해결하겠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pixabay]

퇴직 연금 제도를 설계할 때 기능이나 이해관계 중심이 아닌, 가입자의 어려운 점을 먼저 해결하겠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pixabay]

대부분의 시장참여자들은 퇴직연금의 수익률 부진 이유가 원리금 보장상품 비율이 과도하고 가입자 교육이 부진한 때문으로 보고 있다. 가입자교육 전문기관이 퇴직연금 사업자와 컨소시엄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왜냐하면 퇴직연금제도의 실질적 수혜자인 퇴직연금 사업자가 가입자 교육을 적극적으로 담당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가입자와 보다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하면 긍정적 시너지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의 부진한 수익률을 개선할 방법 중 중요한 것이 사전지정 운용제도, 이른바 ‘디폴트 옵션’이다. 이 제도 내용의 핵심은 현재처럼 가입자가 운용지시를 하지 않으면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적립금이 편입돼 저조한 수익률로 귀결되는 것을 가입자 동의 절차를 거쳐 사전에 지정된 투자상품으로 운용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으로 개선하자는 것이다.

디폴트옵션제도는 대부분의 연금 선진국이 도입해 퇴직연금의 운용 성과를 높이고 퇴직연금 사업자와 자산운용사의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는 바람직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 등은 80% 이상의 가입자들이 디폴트 옵션을 선택하고 있고 어떤 국가는 90%가 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는데 지지부진한 이유는 원리금 보장상품의 포함 여부, 손실 발생 시 책임 문제, 가입자자 교육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해서다. 여기서 원리금보장상품 포함 여부가 가장 큰 쟁점이다. 원금보장을 퇴직연금 자산운용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가입자는 수익률을 올리려는 사업자와 대립적인 입장이다. 결국 가입자의 원금보전요구와 수익률 개선의 모순적 대립 구도를 어떻게 풀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이 문제는 원리금 보장상품을 원하는 가입자도 아우르도록 선택의 스펙트럼을 넓히면 된다. 지금처럼 원리금 보장상품을 포함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디폴트 옵션제도를 도입할 때 분명 손해를 볼 수 있는 가입자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디폴트 옵션제도는 일정 시간 동안 적립금 운용을 하지 않으면 통보절차를 거쳐 경과 시간(대략 2주 정도)이 지나면 디폴트 상품으로 편입시킨다는 내용이다. 만약 근로자의 짧은 근속 기간으로 인해 디폴트 옵션의 장기투자 효과를 누리기 힘든 경우 실적배당형 상품 위주로 가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 아래의 [그림1]과 같이 가입 기간이 3년 이하 가입자 비중이 38.2%나 되기 때문에 디폴트 제도가 가지는 장기투자 효과를 누리기 힘들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원리금 보장 위주의 투자 방법이 제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직 또는 이직 시 퇴직금을 개인형 퇴직연금제도(IRP)로 강제 이전하게 돼 있는데, 〈표1〉과 같이 해지율이 매우 높다. 혹시 실적배당형 상품 위주로 운용해오다  해지하면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제도 설계에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표1〉에서와 같이 적립금 규모도 중요한 해지 이유가 될 수 있다. 즉, 적립금 규모가 적다면 연금화한들 실질적인 도움을 가입자가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근속연수가 짧고 적립금 규모가 작고 그에 따라 해지할 가능성이 높은 가입자의 디폴트옵션으로 인한 원금손실 위험을 줄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수익률을 높일 수 있게 [그림2]와 같은 디폴트 옵션으로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근속연수가 짧고 적립금 규모가 작아 IRP 해지 가능성이 큰 가입자에게는 원리금보장 중심 디폴트 옵션을 제공하고, 근속연수가 길고 적립금 규모가 커서 IRP해지 가능성이 낮은 가입자에게는 원금 손실의 위험은 있지만 수익률이 높은 디폴트 옵션을 제공하도록 유도하면 좋을 것이다.

현재 논의 되고 있는 디폴트 옵션제도 도입의 핵심은 원리금 보장상품 포함 여부가 아니라 가입자 보호 여부로 모여야 한다. 가입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려고 접근해야 한다. 위의 [그림2]와 같이 접근한다면 굳이 디폴트 적용제외(opt-out)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릇 제도를 설계할 때 기능이나 이해관계 중심이 아니라 가입자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원칙이다. 가입자는 원금손실은 없으면서 수익률이 높은 것을 원한다. 물론 모순이다. 그러나 제도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퇴직연금 사업자가 이익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교육기관을 설립해 가입자 교육에 나선다면 디폴트옵션제도 정착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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