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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채로 관속에 들어가 봤나…“날마다 죽어야 날마다 부활” [백성호의 한줄명상]

중앙일보

입력

“작은 죽음 뒤에는 작은 부활이 있다.”

관(棺) 속에 들어가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사람이 죽어야 관에 들어가지,
산 사람이 어떻게 관 속에 들어가느냐.’
이렇게 생각하지 싶습니다.

우연히 저는 관 속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주관한 ‘죽음 체험 하루 피정’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주검을 어머니 마리아가 안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주검을 어머니 마리아가 안고 있다.

서울 명동의 가톨릭 회관이었습니다.
강당에 들어서자 제대(祭臺) 앞에 기다란 관이 놓여 있었습니다.
관 위에는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흰 천이 덮여 있었습니다.

150명가량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똑! 똑!’  관 뚜껑을 두드리자
관 속에 누워 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의 눈시울은
붉게 젖어 있었습니다.

다음 사람이 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위로 가톨릭 성가가 흘렀습니다.

‘인생은 나뭇잎/바람이 부는 대로 가네/
잔잔한 바람아 살며시 불어다오/언젠가 떠나리라.’

정말 장례미사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5분 정도 흘렀습니다.
관에서 나온 여성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서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예루살렘 성묘교회에 있는 돌판에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주검을 올렸다고 한다. 순례객들은 여기서도 죽음에 대한 명상을 한다.

예루살렘 성묘교회에 있는 돌판에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주검을 올렸다고 한다. 순례객들은 여기서도 죽음에 대한 명상을 한다.

“지난해 3월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고통 속의 엄마’가 지금껏 내게는 큰 짐이었다.
그런데 막상 관 속에 들어가니 참 고요하더라.
내가 생각했던 죽음과 많이 다르더라.
동시에 엄마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바뀌었다.
고마운 체험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궁금해지더군요.
과연 어떤 느낌일까.
관 속의 어둠은 어떤 어둠일까.

저도 줄을 섰습니다.
직접 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뚜껑을 열고 두 다리를 넣고, 길게 누웠습니다.

‘스르르’ 관 뚜껑이 닫혔습니다.
관 뚜껑 사이에 가느다란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 위에 천을 덮자 순식간에 캄캄해졌습니다.
완전한 어둠이었습니다.

‘아, 이것이구나. 이게 바로 무덤 속이구나.’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세워진 십자가상이다.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세워진 십자가상이다.

그와 함께 즉자적으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관 밖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구나.
  사람도, 물건도, 그 어떤 것도 이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구나.
  관 속에 있는 건 오직 하나뿐이구나.
  바로 ‘나의 마음’이구나.
  그 마음만 이 안에 담기는 거구나.
  그래서 잘 살아야 하는 거구나.
  제대로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한 거구나.’

죽음 피정에 참가한 사람 중에는
가톨릭이 아닌 이웃종교 신자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다들 비슷했습니다.
‘죽음’이란 관 속에 들어가는 순간,
삶이 더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무엇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지
아주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예루살렘 올리브 동산에 있는 조각상. 예수는 땀을 피처럼 흘리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예루살렘 올리브 동산에 있는 조각상. 예수는 땀을 피처럼 흘리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죽음 피정을 지도하던 김보록 신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작은 죽음’을 체험할 때마다
‘작은 부활’을 보답으로 받게 된다.”

사도 바오로(바울)는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나는 날마다 부활한다”와 맥이 통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서 ‘작은 죽음’을
하나둘 체험하는 일은 얼마나 값진 일일까요.
작은 후회와 작은 반성, 작은 회개와 작은 실천들.

그 모두가 작은 죽음과 작은 부활의
연장선이니까요.

마지막으로 김 신부는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내 안의 죄스러움이 죽은 자리로 하느님의 사랑이 들어온다.
 우리는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된다.
 그게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백성호의 한줄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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