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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리포트] 파업 損賠訴 제도 바꿔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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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하투(夏鬪) 이후 잠잠해지나 했던 노사 문제가 다시 심각해지고 있다.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견디지 못한 근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노동계가 노동3권에 대한 손해배상이나 가압류 소송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고, 정부도 손배소나 가압류 소송이 남용되지 않도록 제도를 바꿀 의향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해 영국의 경험이 참고가 될 것 같다.

지금의 영국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 노사관계가 조용하고 쟁의로 인한 손실이 적은 나라다.

이런 성숙된 노사문화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도, 노사가 자율적으로 선택한 것도 아니다. 장기간에 걸친 제도 개혁에 이끌려 정착된 것이다.

7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영국은 '영국병(British Disease)'이라고 부를 정도로 선진국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노사갈등을 겪었다. 인플레와 저성장 하에서도 총파업이 다반사고 가장 경직된 노동시장을 가졌던 나라였다.

그 '파업 천국'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79년이었다. '영국병'치유의 기치 아래 대처의 보수당이 집권한 것이다. '노조의 민주화'를 내세워 노동조합의회(TUC)뿐 아니라 산별노조 등 전국노조의 약화에 발벗고 나섰다.

그러나 노동쟁의를 순화시키는 데는 노조의 민주화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때 대처 정권이 눈에 들어온 것이 쟁의의 면제조항(immunity clause), 즉 정당한 파업을 하면 사용자 측이 함부로 손배소 제기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이었다.

집권 12년 동안 대처 정권은 이 조항을 철저하게 제한하거나 폐지시키는데에 주력해 "대처 정권 하의 영국에서는 파업을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동조파업 이나 정치적 파업, 그리고 노조를 인정받기 위한 파업 등을 극도로 어렵게 제도를 뜯어고쳤다. 쟁의의 비용을 피하기 위해 노조 스스로 과격하거나 장기적인 파업을 자제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 영국의 성숙한 노사문화다.

지금 벌이고 있는 손배소 논란은 '쟁의를 주도한 근로자의 생계를 어디까지 보호하느냐'또는 '최소한의 대항권으로서의 손배소를 사용자 측에게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냐'의 논쟁이 아니다.

이 논란의 핵심은 '어떤 쟁의를 정당한 것으로 볼 것이냐'다.

그리고 그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합법적 쟁의에 관한 선택을 넘어 우리사회가 쟁의의 과격성과 그에 따른 손실을 어디까지 감내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자, 우리의 선택은?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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