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주부들' 여배우도 징역…美금수저 입시비리에 쓴 돈

중앙일보

입력 2021.09.23 05:00

사모펀드 컨설턴트인 존 윌슨과 그의 부인이 자녀의 대학 입시 비리 혐의로 법정에 출두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모펀드 컨설턴트인 존 윌슨과 그의 부인이 자녀의 대학 입시 비리 혐의로 법정에 출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의 호텔 및 카지노 업계 거물인 가말 압델라지즈와 사모펀트 컨설턴트이자 맥킨지의 고문인 존 윌슨은 각각 부인과 함께 법정에 섰다. 이들의 죄목은 ‘권력형 입시 비리’. 2019년 3월 할리우드 배우, 월스트리트·실리콘밸리 중역 수십명이 연루돼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바시티 블루스 대입 비리 사건’의 첫 형사재판이 이날 시작됐다.

금수저 자녀, 거액 내고 명문대 프리패스

‘바시티 블루스’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당시 초대형 입시비리 사건 수사에 사용했던 실제 작전명이다. 바시티(Varsity)는 ‘대학 스포츠팀’을 지칭하는 용어다. 작전명대로, 권력과 재력을 가진 부모가 금수저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대학 스포츠팀을 이용했다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 줄기다.

주모자는 대학입시 컨설팅업체 대표 윌리엄 릭 싱어다. 싱어는 자칭 ‘사이드 도어(Side Door·옆문)’로, 유력 인사에게 접근해 그들의 자녀를 스포츠 선수로 신분을 위조하고 체육 특기생으로 합격시킨 뒤 거액을 받아냈다. 싱어가 말한 옆문이란 각종 편법과 불법으로 하는 입학을 말한다. 반면 앞문은 학생 본인 성적으로 정정당당하게 들어가는 것, 뒷문은 기여입학제도를 활용해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입시 가산점(통상 SAT 점수의 10% 가점)을 받아 입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날 법정에 선 존 윌슨은 아들을 수구선수로 위장해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 입학시킨 대가로 싱어에게 22만 달러(약 2억5000만원)를 지불했고, 쌍둥이 딸을 각각 하버드와 스탠퍼드 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해 150만 달러(약 17억6000만원)를 추가로 지불하기로 약속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압델라지즈는 딸을 서던캘리포니아대학 농구선수로 입학시키는 데 30만 달러(약 3억5000만원)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들의 자녀들은 수구나 농구에는 관심조차 없다. 이번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이 둘을 포함해 학부모만 33명, 뇌물을 받은 명문대 스포츠팀 코치과 입학사정관 등을 합하면 총 57명이다.

유력인사에게 접근해 그들의 금수저 자녀들의 스펙을 허위로 조작해주고 명문대에 합격시킨 뒤 거액을 받아 챙긴 윌리엄 릭 싱어. 연합뉴스

유력인사에게 접근해 그들의 금수저 자녀들의 스펙을 허위로 조작해주고 명문대에 합격시킨 뒤 거액을 받아 챙긴 윌리엄 릭 싱어. 연합뉴스

릭 싱어의 ‘옆문’ 애용한 권력·재력가 부모

릭 싱어는 미국 대학의 여러 입학 형태 가운데 비인기 종목 체육 특기생 입학의 경우 입학사정관이나 코치에게 일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제도의 허점을 노렸다. 권력과 재력을 가진 학부모 입장에선 대학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도 입학을 보장받지 못하는 데, 싱어가 뚫어놓은 옆문을 활용하면 합격을 ‘소액’으로 살 수 있으니 최고의 거래였던 셈이다. 실제로 하버드에 ‘뒷문’ 입학하려면 4500만 달러(약 520억원)를 기부해야 하는데, 싱어의 옆문은 ‘고작’ 120만~150만 달러(약 14억~17억6000만원)면 활짝 열렸다.

뉴욕타임스(NYT)는 “주범인 릭 싱어는 이미 공갈 및 기타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인정하고 정부에 협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윌슨과 압델라지즈의 유죄를 입증하려면 이들이 지불한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게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법정에서 윌슨과 압델라지즈의 변호인단은 “(학부모들이) 싱어에게 속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싱어는 달변가였고, 학부모는 순진하게도 그에게 설득당해 완전히 믿었던 것”이라며 “싱어에게 지불한 돈은 대학 입학 시스템에서 승인한 합법적인 기부인 줄로 알았다”고 강조했다.

호텔·카지노 업계의 거물 가말 압델라지즈 부부. 이들은 자신의 자녀를 유명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해 릭 싱어에게 거액을 지불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연합뉴스

호텔·카지노 업계의 거물 가말 압델라지즈 부부. 이들은 자신의 자녀를 유명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해 릭 싱어에게 거액을 지불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연합뉴스

유죄 입증되도 징역 2주…전문가 “대입 신뢰 잃어” 

변호인단의 주장이 기각되고 윌슨과 압델라지즈의 유죄가 입증되면 어떻게 될까. NYT는 이들이 중형을 선고받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함께 기소된 33명의 학부모 가운데 이미 상당수가 대학입시 비리 관련 유죄를 인정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위기의 주부들’에 출연한 여배우 펠리시티 허프만은 딸의 SAT 점수를 부정하게 부풀리기 위해 릭 싱어와 공모한 혐의를 인정한 뒤 14일의 징역형을 받았다. 중견 배우 로리 러프린은 두 딸을 서던캘리포니아대에 체육특기생으로 입학시키기 위해 싱어에게 50만 달러(약 5억8000만원)를 건넨 혐의를 인정했지만 징역 2개월에 그쳤다. 이번 사건으로 기소된 학부모에게 내려진 가장 중한 처벌은 9개월 징역이었다.

일부 명문 대학의 비인기종목 체육특기생은 입사관과 코치 재량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적 허점을 노린 릭 싱어의 조직적 입시 비리를 다큐 형태로 제작·방영한 넷플릭스의 '바시티 블루스' 이미지. AP

일부 명문 대학의 비인기종목 체육특기생은 입사관과 코치 재량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적 허점을 노린 릭 싱어의 조직적 입시 비리를 다큐 형태로 제작·방영한 넷플릭스의 '바시티 블루스' 이미지. AP

이에 대해 마이클 바스테도 미시간대학 교육학과 교수는 “2019년 밝혀진 이 사건은 많은 대학이 운동선수 모집에 대한 관행을 점검하고 체육특기자 선발 과정을 체계화하는 계기가 됐다”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여러 대학들은 기부자와 동문의 자녀를 입학을 선호하는 등 부유한 학생이 누리는 이점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바스테도 교수는 “많은 학생과 학부모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학 입학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게 됐고, 아직까지 이 시스템이 개선됐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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