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판문점 지름길로 오가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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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ㆍ일 교차수교 후 자주통일 노력 더 절실
마침내 한소 수교가 이루어졌다. 역사적이랄 수도 있고 감격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당장의 감상일 수는 있어도 본질적 평가일 수는 없다. 그 평가는 앞으로 이를 어떻게 민족사 전개에 활용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북방외교를 시작하며 설정했던 주변 4대국에 의해 남북한 교차승인의 구도는 시간과 과정만 남았을 뿐 현실화 단계에 들어섰다. 한반도 고착상황 타파의 실마리를 주변정세의 변화 속에서 찾으려 한 북방외교의 목표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북방외교의 궁극적 목표인 남북 평화공존을 통한 통일로 가는 먼 여정에 비추어 이는 시작일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소 수교와 북한­일본의 수교협상 등 구체화된 북방외교의 과실을 보며 기쁨과 안도 못지 않게 새로운 도전을 맞는다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다.
역사적으로 보아 우리 민족의 비극은 미ㆍ일ㆍ중ㆍ소가 한반도에서 이익다툼을 시작한 구한말에 시작된 것이었다. 비록 상황과 여건은 다르지만 역학구조는 당시와 비슷하게 형성되어 가고 있다.
오히려 남북한이 대립돼 있는 상황은 그때보다 더욱 복잡한 변수를 하나 더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미ㆍ일ㆍ중ㆍ소 4개국이 앞으로 남북한 카드를 이용하여 게임을 벌일 가능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한반도문제는 또다시 외부적 여건에 좌우될 가능성이 많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진다. 남북한이 협력하여 한반도의 내부적 결속을 자주적으로 강화해나가는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적어도 세 갈래의 중요한 과제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첫째는 남북한 대화와 교류를 촉진시켜 민족적 화합의 길로 들어섬으로써 외부세력이 남북한을 카드로 활용할 소지를 극소화하도록 해야 한다.
종전과 마찬가지로 상호불신의 벽속에 대립과 당파적 체제온존에 급급하다 보면 통일문제의 외부화를 초래할 위험은 계속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두번째는 남북한이 벌이고 있는 미ㆍ일ㆍ중ㆍ소를 상대로 한 외교가 대내 개혁을 우회하는 방편으로 이용돼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체제의 온존만을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내부 개혁으로 민족적 힘을 결집해야 된다.
남북은 더욱 민주화작업을 촉진하고 북한도 체제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내부적 개혁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번째는 남북한의 대외 자세에서 모두 자주성과 실용주의를 기본지침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북방외교 추진과정에서 능력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예를 들면 대소수교협상에서도 너무 많은 경제협력을 약속했다는 우려 등이다. 우리가 소련과 수교하며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냉정히 계산하고 국익에 맞는 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북한도 일본과의 접촉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경제적인 면에서 특히 신중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자본과 기술의 속성을 파악해 서둘러 경제협력을 구할 것이 아니라 그 지배구조 속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결국 남북한이 스스로 협력하여 새로운 도전을 극복하는 길밖에 없다. 미ㆍ일ㆍ중ㆍ소의 우회로 보다는 판문점의 지름길을 통한 다각적인 교류를 넓혀 민족의 자주성과 통일의 힘을 배양하는 것이 지금부터 남북한 모두의 앞에 놓인 대명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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