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승부를 가른 한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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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 . 최철한 9단 ● . 구리 9단

천하대세를 논하다 어느 시점에 가서는 한두 집의 잔돈푼에 목을 매야 한다. 바둑의 슬픔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같은 아이러니야말로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임을 보여주는 가장 절실한 대목이기도 하다.

장면1(220~224)=혈전이 끝난 바둑판 위에 시체들이 즐비하다. 거둬들인 땅과 전사자들을 헤아리며 최철한 9단은 열심히 주판알을 튕긴다. 그러나 딱 반집이 부족하다. 초읽기 탓에 흐릿한 가운데 감각적으로 반집 부족을 느낀다.

여기서 최철한은 224로 뒀다. 흑이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한 집이 달라지고 그 한 집은 곧 승패를 가르는 장면이다.

장면2(225~231)=구리(古力) 9단은 225로 이어 쉽게 받았는데 이 수가 패착이 되고 말았다. 228 다음 230을 선수당하면서 한 집이 선수로 날아갔고 승부가 이 순간 뒤집힌 것이다. 중국 최강을 자랑하는 구리는 까마득히 몰랐을 것이다. 온종일 지략을 짜내고 무수히 백병전을 치르며 확보한 승리가 이 한 집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이 판은 252 수에서 끝나 계가하니 과연 백의 반집승이었다.

참고도=흑이 반집승을 거두는 수순이다. 1로 먼저 찔러 백의 자충을 유도한 다음 5로 두는 수. 실전과 다른 부분은 다 똑같은데 A의 한 집만 다르다. 최철한은 실로 아슬아슬하게 8강 진출에 성공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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