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라!논술테마] 자존심과 실리 … 북·미의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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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자국이 공격받으면 핵으로 자동 반격하는 '최후의 날'이란 기계를 개발한다. 한번 작동되면 아무도 멈출 수 없다는 점에서 이 기계는 치명적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미국은 '설마 소련이 인류를 멸망시킬 리 있겠어?'하는 생각을 가지고 러시아를 공격한다.

이런 상황은 겁쟁이를 가리기 위해 차를 몰고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겁쟁이 게임(Chicken Game)'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겁쟁이 게임은 두 경기자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합리적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경기자는 막판까지 버티거나 피하거나 둘 중 한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끝까지 돌진하면 모두 죽는다. 그럼에도 승자는 명성을 얻고 패자는 놀림감이 되므로 서로 버티기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게임 이론에서는 한 쪽이 중간에 핸들을 꺾어 위험을 피하는 것을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이라고 한다. 여기서 '균형'이란 상대의 행동에 대한 최선의 대응을 일컫는 말이다. 어느 한 쪽이 끝까지 돌진할 때 반대 쪽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책은 핸들을 꺾어 피하는 것이고, 어느 한 쪽이 핸들을 꺾으면 다른 한 쪽은 끝까지 돌진해 승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균형이 존재하고 그 사실을 알더라도, 어느 쪽이 끝까지 버티거나 중간에 핸들을 꺾을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게임 이론가들은 '신뢰할 수 있는 위협'이란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와 달리 '최후의 날'이란 기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미국에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한 쪽은 끝까지 돌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이 사실을 아는 상대는 피하게 된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우리는 브레이크를 고장냈다"고 선언한 셈이다. 그런데도 '설마' 하고 계속 무시할 경우 비극적인 결말을 부를 수도 있다. 자신의 용맹을 증명하기 위해 더 끔찍한 신호를 보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정규 경북대 교수.경제통상학부



☞생각 플러스: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6자회담 참가국들이 얻은 이익과 손해를 정치.경제.외교적 측면에서 표로 정리해 따져보고,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했을 경우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도 추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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