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앙심에 시신 빼돌리다…질소탱크 속 '냉동인간' 날벼락

중앙일보

입력 2021.09.16 05:00

“시신이 사라졌다”
지난 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냉동 저장 창고에 도난 경보음이 울렸다. 경찰이 곧바로 출동했고, 몇 시간 만에 고속도로에서 대형 화물 트럭 2대가 붙잡혔다. 그런데 도난 물건이 범상치 않았다. 크레인으로 옮길 만한 거대한 크기의 냉동 탱크였다. 그 안에 담긴 건 사후 특수 처리된 시신, 이른바 ‘냉동 인간’이었다.

사후 처리된 시신이 저장된 액체 질소 냉동 탱크를 실어 나르는 모습. [유튜브 캡처]

사후 처리된 시신이 저장된 액체 질소 냉동 탱크를 실어 나르는 모습. [유튜브 캡처]

러시아 냉동인간 기업 ‘크리오러스’가 때아닌 절도사건에 휘말렸다. 현지매체 루스베이스 등 외신은 이 회사 대표 다닐라 메드베데프(41)와 그의 전 부인 발레리아 우달로바(59)의 갈등이 불러온 ‘냉동 인간’ 절도 사건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이번 사건을 공론화한 건 메드베데프 대표다. 그는 절도 사건 발생 직후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연구소 내 액화 질소 냉동 탱크에 저장돼 있던 시신과 장비를 도난당할 뻔했다”면서 전 부인 우달로바를 이번 사건 배후로 지목했다.

그는 우달로바의 사주를 받은 직원들이 전날부터 탱크에서 액화 질소를 조금씩 빼냈고, 사건 당일 우달로바가 직접 현장에서 지휘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우달로바가 별도로 저장돼있던 뇌도 훔쳐 달아났다며 그를 절도 및 사유지 침입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도로에서 냉동탱크 절도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트럭. [루이스베이스 캡처]

지난 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도로에서 냉동탱크 절도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트럭. [루이스베이스 캡처]

우달로바는 메드베데프의 주장에 즉각 반격하고 나섰다. 그는 크리오러스 공식 유튜브에 15분짜리 영상을 올리고는 “우리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메드베데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우달로바의 논리는 이랬다. 냉동 탱크 소유권과 탱크 저장 창고 임대 계약이 자신 명의로 되어있기 때문에 ‘시신 소유권’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시신을 다른 장소로 옮기려 했을 뿐이라며 지난 3개월간의 준비 작업과 15시간에 걸친 냉동 탱크 분리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차례 “시신은 원래 내 것이었다. 훔친 게 아니다”라고 반복했다.

크리오러스 공동설립자이자 부부였던 메드베데프와 우달로바는 2009년 각각 부회장과 회장직에 취임해 공동 경영해 왔다. 그러나 2017년 이혼과 함께 관계가 틀어졌다. 특히 극저온 장치 운용 방식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부딪쳤다. 가뜩이나 독불장군식 경영으로 이사회의 반발을 불렀던 우달로바는 결국 2019년 해임 통보를 받았다. 우달로바는 같은 해 11월 크라이 오닉스라는 또 다른 냉동인간 기업을 설립했다.

러시아 냉동인간기업 크리오러스 공동 창업자인 우달로바가 유튜브를 통해 "시신을 훔친 게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러시아 냉동인간기업 크리오러스 공동 창업자인 우달로바가 유튜브를 통해 "시신을 훔친 게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우달로바가 외도를 저질러 이혼 당한 데다 회사에서도 해임되자 앙심을 품고 이번 사건을 벌였다는 게 메드베데프의 입장이다. 이에 우달로바는 메드베데프가 냉동인간 사업의 막대한 수익에 눈이 멀어 자신을 버렸다고 맞서고 있다.

문제는 이 부부의 경영권 다툼 속에 애꿎은 냉동인간만 피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냉동인간은 영하 196도 초저온 냉동탱크에서 보관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날 탱크 이동 중에 액화 질소가 상당수 쏟아지면서 시신이 훼손됐을 가능성이 커졌다.

크리오러스 소속 연구원 알렉시 포타포브는 “습격 당시 탱크 안에 있던 액체질소 대부분이 땅에 쏟아졌다”면서 시신이 훼손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메드베데프도 냉동 탱크를 수평으로 눕혀서는 안 됐다면서 우달로바의 과실을 지적했다.

냉동인간은 현재 불치병을 앓는 사람이 치료법이 나오는 미래에 되살아나게 한다는 바람의 산물이다. 잠시 죽어서 신체의 생체 시간을 멈추고 세포가 노화되지 않은 채로 보존시키킨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사망 직후 온몸에서 혈액을 빼낸 후 동결보존액을 채워 넣어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는 기술을 적용한다.

1976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냉동보존연구소가 설립된 이후 전 세계 약 600명의 시신이 부활을 꿈꾸며 냉동 보관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두 명의 고인이 냉동인간으로 보존되고 있다. 크리오러스는 외국인 25명 등 모두 82명의 시신을 보관하고 있다. 개 10마리와 고양이 17마리, 새 4마리의 유해도 냉동보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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