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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레드, 기후재난의 적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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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천인성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24부디렉터(EYE)
천인성 EYE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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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는 ‘코드 레드(code red)’ 상황이다. 전 세계가 위험에 처했다.”

지난 7일 뉴욕 퀸스의 수해 복구 현장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병원에서 화재 등 긴급 위기상황을 경고할 때 쓰는 코드 레드 용어를 들며 지구온난화와 기후재난 위험성을 강조했다. 사실 지난달 말 허리케인 아이다가 남부 루이지애나에 도착했을 때 여느 허리케인처럼 본토 상륙 뒤 금세 세력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북상하면서 더 많은 비구름을 얻어 폭우와 토네이도를 몰고 왔다. 60명 넘게 숨진 이번 홍수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태풍 발생이 잦아졌을뿐더러, 더워진 공기가 습기를 더 머금게 돼 폭우도 심해졌다”고 전했다.

복구 현장을 찾은 바이든은 “올여름만 1억 명 넘는 미국인이 극한 기후에 타격을 입었다”며 “기후변화가 미국인의 삶과 경제에 실존적인 위협”이라고 경계했다. 미 연방재난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6~8월 미국에서 발생한 홍수·폭염·산불로 400여 명이 숨졌다. 기반시설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은 물론 미국 같은 초강대국도 기후재난의 예외가 아니라는 얘기다.

1일 뉴욕 퀸스 일대가 허리케인 아이다가 몰고 온 폭우로 물에 잠겼다. [EPA=연합뉴스]

1일 뉴욕 퀸스 일대가 허리케인 아이다가 몰고 온 폭우로 물에 잠겼다. [EPA=연합뉴스]

코드 레드 경고는 한 달 전에도 나왔다. 안토이후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9일 각국에 온실가스 배출 중단을 호소하며 “인류를 위한 코드 레드”를 언급했다. 같은 날 공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는 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경우라도 2040년까지 ‘지구온난화의 마지노선’(산업화 이전 대비 1.5도)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3년 전 나온 보고서보다 예상 시점을 10년이나 당겼다.

반면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이런 경고에 둔감하다. 대선 주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시민단체들은 탄소 감축과 직결된 ‘탈(脫)석탄’ 문제를 예비후보 19명에게 물었다. 후보 중 구체적 시기를 대답한 이는 5명(김두관·심상정·이정미·박용진·장기표)에 그쳤다. 다른 후보들은 공감한다면서도 실행 시기에 침묵하거나(이재명·윤석열 등 5명), 아예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이낙연·홍준표 등 9명).

바이든이 코드 레드를 말한 그 날, 프란치스코 교황(가톨릭)과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성공회), 바르톨로메오스 1세 총대주교(정교회) 등 기독교계 수장들이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신앙과 정치적 견해와 관계없이 지구와 빈자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여달라. 지금이 결정적인 순간이다.” 기후재난은 텀블러 쓰기, 쓰레기 분리수거 같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막을 수 없다. 결국 정치와 경제로 풀어야 할 문제다. 국정 책임자를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정부·기업·시민사회를 아우르는 기후 공약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