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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곰탕 라떼를 부르지 마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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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팀장

“출장 전엔 밤새워 애들이 먹을 곰탕을 끓이고 소분해 냉동했죠.” “남편이 설거지라도 잘 도와주니 고마워요.” 성공한 워킹맘 감동 스토리들이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면 당신은 30~40대 여성이 아닐 확률이 높다. 워킹맘들은 이 글을 읽을 시간도 내기 어려울 테고, 출산은 마음만 굴뚝인 여성은 숨이 막힐 테니까.

존경하는 선배 여럿이 최근 퇴사를 했거나 결심했다. 공통점은 죄다 여성이고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후 시점이라는 것. 팬데믹 장기화로 친정 찬스도 더는 무리라고 했다. 이들이 열광한 한 온라인 매체 최근 기사의 제목인즉슨, ‘아이 낳지 마세요.’

어차피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 않느냐고, 곰탕 좀 끓이는 게 그리 억울하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0.7을 기록한 출산율이 머지않아 0으로 수렴할 듯한 위기감에 조심스럽게 이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애는 언제쯤?’이라는 질문이 쏟아질 한가위 명절이 코앞이라 더 그렇다.

여성 1인 가구는 20년 전보다 2.6배 증가

여성 1인 가구는 20년 전보다 2.6배 증가

한국의 끈끈한 가족애는 소중한 가치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만큼 특별한 경험은 없다는 사회적 합의에도 이의 없다. 그러나 21세기 하고도 21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상은 진화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현모양처, 즉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상은 오늘날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완벽히 해내는 ‘곰탕 끓이는 워킹맘’ 프로파간다로 변주 중이다.

한국인은 워낙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고 서로의 인정을 받는 데 열심이고, 이런 DNA는 분명 국가 발전을 위해선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모두가 완벽한 엄마일 수가 있을까. 가족의 개념도 진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족에 헌신하는 아빠와 일에 매진하는 엄마, 이런 그림도 이젠 받아들일 때가 됐다. 맞벌이 남편이 집안일을 ‘돕는다’는 표현은 아예 금지하는 게 어떨지. 고군분투 워킹맘을 폄하할 생각도, 자격도 내겐 없다. 외려 존경한다. 단 그걸 옵션 아닌 필수로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는 숨막힌다.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라는 최연지 작가의 명저엔 고(故) 박경리 선생의 시 ‘히말라야의 노새’가 나온다. 한 실존 남성 작가가 히말라야에 가서 일만 하다 쓰러져 죽는 노새를 보고 어머니를 떠올리며 슬퍼했다는 걸 비판하는 내용이다. 최 작가는 “어머니에게 힘겨운 짐을 지우지 말든지 (중략) 가만두고 보다가 왜 히말라야씩이나 가서 노새 보고 우는가”라고 일갈했다. 현 3040 세대는 노새가 될까 두렵다. 2030 MZ세대는 노새가 될 생각이 없다.

덧. 그럼 행복한 여자는 (최 작가에 따르면) 글 말고 뭘 쓸까? 돈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