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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어려운 ‘실업자 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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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지난 15일 통계청은 전에 없던 숫자 하나를 발표한다. 올해 8월 실업률 2.6%. 100명 가운데 실업자는 단 2.6명꼴이란 조사 결과였다. 1999년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이래 8월 실업률이 이렇게 낮았던 적은 없었다.

숫자로만 본다면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주장한 완전 고용에 가깝다. 일하고 싶은 사람 모두가 일하는,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꿈 같은 세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고용 경기는 바닥없이 추락 중이다. 새로 들어갈 직장이 없고, 하던 일도 접어야 할 사람이 한가득이다. 체감 경기 따로, 통계 따로다.

이유가 있다. 통계청이 규정한 ‘실업자 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서다. 통계청은 실업자를 ‘지금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일이 주어지면 일을 할 수 있고, 지난 4주간 구직 활동을 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만만찮은 관문이 여기에 숨어있다.

고용 경기가 추락하는 가운데 서울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한 민원인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고용 경기가 추락하는 가운데 서울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한 민원인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일주일 1시간만 일해도 실업자가 아닌 취업자다. 병이나 사고·연수·파업 등으로 직장을 잠시 쉬고 있어도(일시 휴직자) 통계상으로는 취업자다. 직장을 다니지 않지만 가사·육아·재학·수강·연로·심신장애 같은 이유가 하나 이상 있다면 역시 실업자가 아니다. 실업·취업 통계에 아예 잡히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학교나 학원(재학)에 다니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진학 준비, 취업 준비 중이어도 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다. 일할 생각이 있다 해도 마땅한 구인 공고가 뜨지 않아 쉬고 있으면 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로 나뉜다.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을 따르고 있다지만 구멍이 많아도 너무 많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통계청이 고용 동향을 발표하면 언론은 실업률을 가장 앞세워 보도했다. 실업률이 얼마가 오르고 내렸는지, 실업자 수가 몇백만을 기록했는지가 기사 앞머리를 장식했다. 그러나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실업자 수가 점점 늘면서 실업 통계는 제 기능을 잃었다.

이후 취업자 수가 얼마나 늘고 줄었는지가 대표 고용 통계 자리를 차지했지만, 이마저 죽은 통계가 될 위기다. 정부가 나랏돈을 퍼부어 만든 노인·청년 일자리 때문이다. 최저임금에 3~6개월 단기 근로가 대부분인 일자리 수십만 개가 고용 경기가 회복된 양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취업자 수는 코로나 발생 이전 고점의 99.6%로, 방역 위기 이전 수준에 한 발짝 더 근접했다”는 15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페이스북 글이 고용 재난의 현실에서 아무런 울림도 공감도 얻지 못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