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일본인들 “황후 어딨나”…러시아인 목격자 그날의 증언

중앙일보

입력 2021.09.12 13:00

업데이트 2021.09.13 08:52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51)

<증언> 중에서
1895년 신력(新曆) 10월 7일부터 8일에 걸친 밤. 궁궐에는 다이 장군과 내가 있었다. 아무런 이상이 없는 무사한 밤이었다. 새벽 4시에 나와 다이 장군이 잠자고 있는 거처에 조선 육군 중령 이가균이 뛰어 들어왔다. 이가균은 다이 장군의 특별 수석 통역원이었다. 그는 숨이 턱에 차서 흥분된 어조로 일본 군인들과 일본인들의 훈련을 받은 조선 훈련대 대원들이 지금 궁궐을 포위하였다고 했다. 우린 즉시 위병소로 달려갔다. 다이 장군은 이 중령에게 함께 정세를 살펴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이 중령은 “왕에게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새벽 5시 궁궐 공격이 시작되었다. 북동문 밖에서 누군가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연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막힘없이 유창하게 연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전에 연습까지 해두었음이 분명했다. 연설이 끝나자 조선인 군중들로부터 아우성과 울부짖는 목소리가 일어났다. 궁궐에는 모두 합해 1500백 명의 병사와 40 명의 장교가 있었다. 4시 30분부터 5시에 이르는 시간에는 250~300 명의 병사와 8명의 장교가 남아있었다. 일제 사격을 당한 시위대 병사들은 한 번도 응사하지 않은 채 총을 버리기 시작했고, 그들은 정복을 벗어 던지거나 탄환을 뽑아버리면서 도망쳤다. 도주자 무리는 떼를 지어 두 방향으로 밀려 나왔는데, 그중 한 무리는 다이 장군을 길 좌측으로부터 우리 유럽인들이 거처하는 집 방향으로 끌려갔다.

세레딘 사바틴.

세레딘 사바틴.

목격자
약 300 명에 달하는 또 하나의 무리, 즉 병사와 궁궐에서 종사하는 각종 하인과 ‘Red coat(붉은 양복을 입은 자인 듯)’ 등은 나를 황후와 하녀들이 거처하는 황후의 여궁(與宮)인 옥대루(옥호루.玉壺樓) 마당으로 60~70보쯤 끌고 갔다. 마당에는 또 훈련대 소대와 오동나무 문장이 들어있는 일본 옷이나 양복을 입은 20~25명가량의 일본인이 있었다. 일본 보초병들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으며 일본의 장교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훈련대 소대 가까이에 풍채가 좋고 옷을 잘 차려입은 한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조선 여자(궁녀)들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밖으로 끌어낸 뒤에 창문 밖으로 높이 약 6피트(약 180cm) 되는 곳에서 아래로 내동댕이치고 있던 일본인들에게 큰 소리로 명령하면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내가 황후전 마당에 서 있는 동안, 일본인들은 10~12명의 궁녀를 창문 밖으로 내던져 마당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말해 두고 싶은 것은 그 어느 한 사람의 궁녀도 신음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 않고 완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그들은 머리채를 틀어 쥐인 채 끌려갈 때도 그러했고, 마당에 내동댕이쳐지면서도 결코 소리를 지르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 15분 동안 나는 위에 서술한 모든 것을 목격하였다. 바로 황후전 창문 밖으로 일본인들이 10~12명의 조선 궁녀를 내던지고 있는 것을. 황후전 마당에서 내가 부득이 15분간 머물렀던 마지막 순간에 일본인 5명이 흥분해 시뻘게진 얼굴로 사납게 외치면서 황후전 마루로 나타났다.

그중 한 사람은 일본어로 연설하였는데 대단히 정력적이었다. 그 후 일본인 5명 모두가 황후전 안으로 뛰어들어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함성을 지르면서 어떤 궁녀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달려 나왔다. 격분해 나에게 달려든 일본인들은 나의 옷깃을 잡아끌었고, 또 어떤 자는 나의 양복 소매와 앞깃을 붙잡고 황후의 처소를 가르쳐줄 것을 위협적인 어조로 강요했다. 바로 그때 나의 옷깃을 잡아당기던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이 꽤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로 나에게 말했다.

“황후는 어디에 있는가? 황후의 거처를 알려 달라!”

나는 전력을 다해 변명했고 설득했다. 즉, 나는 황후의 얼굴도 본 적이 없거니와 유럽인으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조선국 황후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황후의 거처를 알아볼 권리조차 없다고 하면서 온갖 구실을 붙여 용서를 빌었으나, 일본인들은 나를 황후전으로 끌고 갔다. 아마 그들은 내가 황후의 거처를 알려줄 것을 강요하려고 굳게 결심이라도 한 듯했다. 바로 이때 일본인 지휘자가 나타났다. 그가 나타났을 때 나를 끌고 가던 일본인들은 나를 놓아두고 정중한 자세로 지휘자에게 나와 나를 알아본 조선인을 가리키면서 잔인하고 성급한 몸짓으로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부하들의 말을 신중히 듣고 일본인 지휘자는 나의 곁으로 다가와 매우 엄격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는 황후를 찾아낼 수가 없다. 당신은 황후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가?”

나에게 황후가 어디 있는가를 묻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가를 나는 그에게 설명했다. 왜냐하면 나는 조선의 관습과 법에 따라 황후를 볼 수도 없었고, 또 황후의 거처를 알 수도 없다. 일본인은 나의 변명을 접수한 듯 부하에게 나를 다치게 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명령했다. 다만 나를 알아본 조선인이 일본 병사에게 무엇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조선인이 사건의 유일하고 위험한 목격자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바틴이 그린 명성황후 시해장소 약도(좌)와 증언서(우). [자료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사바틴이 그린 명성황후 시해장소 약도(좌)와 증언서(우). [자료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사바틴은 일본인 지휘자를 설득해 겨우 궁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궁궐의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일본 병사와 장교들을 보았다. 국왕이 유럽인들을 접견하던 전각 부근에는 일본 병사 100~150명과 그들을 지휘하는 장교 8~10명으로 구성된 보초 부대가 지키고 있었다. 일본 군인의 숫자로 보아, 또 그곳에 많은 조선인 고관을 보아 그 자리에 국왕이 계시리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내가 궁궐을 빠져나왔을 때는 아침 6시였다. 궁궐에서 빠져나온 나는 그 길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하였다. 아침 6시 30분경 공사관에 도착한 즉시 내가 목격한 모든 것을 K. 웨베르 공사에게 보고했다.

사바틴은 10월 8일 저녁에 유럽인 한 사람과 조선인 두 사람으로부터 누군가 그를 암살하려는 기도가 있다는 통지를 받았다. 일본인과 조선인 범죄자들이 사바틴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겁냈기 때문이다. 을미사변의 목격자 사바틴이 그린 경복궁 내 명성황후 시해 장소 약도와 사바틴의 증언서를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제공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인이 궁궐을 습격해 황후를 시해하고 조선 궁녀와 고관들을 살해한 데 대해 일본 공사관은 유럽인들 중에 목격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전에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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