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이향우 조각가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 교사로 명예퇴직 후 조각가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우리 역사와 전통문화를 배우고 알리는 궁궐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궁궐에서의 오랜 활동을 바탕으로 조각가의 심미안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궁궐의 아름다움을 직접 그리고 글을 썼다. 우리 궁궐의 정다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응원
27

기자에게 보내는 응원은 하루 1번 가능합니다.

(0시 기준)

구독
25
최근 하이라이트

출처

[더오래]정조가 해질녁 눈 내리는 광경을 시로 읊던 능허정

2022.01.30 13:00

물이

출처

[더오래]눈에 띌듯 말듯…창덕궁 후원 정자, 건축 아닌 자연

2021.11.21 13:00

조선의 한옥은 겉모습은 소박하지만 그 숨겨진 의미와 상징에 있어서는 큰 우주를 포용하는 자연관을 보여준다.

출처

[더오래]눈에 띌듯 말듯…창덕궁 후원 정자, 건축 아닌 자연

2021.11.21 13:00

총 61개

  • [더오래]정조가 해질녁 눈 내리는 광경을 시로 읊던 능허정

    [더오래]정조가 해질녁 눈 내리는 광경을 시로 읊던 능허정

    정조는 1795년(정조19)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위해 화성 행궁으로 떠나기 전 후원 일대에서 가마꾼들에게 자궁(慈宮)의 가마를 메는 연습을 시키고 수고한 관원들에게 이곳 농산정에서 음식을 대접했다. 정조는 어머니를 모시고 후원 고갯길을 오가며 보다 편안히 가마를 모시기 위한 예행연습을 했던 것이다. 정조의 상림십경(上林十景) 중 열 번째가 능허모설(凌虛暮雪)로 겨울날 해 질 무렵 능허정에서 눈 내리는 광경을 구경하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2022.01.30 13:00

  • [더오래]왕과 신하들이 술잔 띄우고 시 읊던 옥류천 계곡

    [더오래]왕과 신하들이 술잔 띄우고 시 읊던 옥류천 계곡

    만약 누군가 창덕궁 후원 옥류천 계곡을 보고 싶거든 옥류천으로 가는 숲길을 걸으며 자연이 그려놓은 그림과 소리, 공기까지도 몸으로 느끼면서 숲과 교감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창덕궁 후원에 지은 대부분의 정자들은 커다란 못을 파고 물을 담아 주변에 정자를 세우고 자연과 교감을 했다면 이곳은 계곡을 그대로 살려 그 주위에 정자를 세우고 일대를 소요한 듯이 보인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인데 자연은 스스로 내버려 두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스스로 유지해 간다는 관점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인공물을 가장 최소화한 것이 후원의 정자이다.

    2022.01.16 13:00

  • [더오래]정조 “임금은 나 하나, 이에 대한 도전 절대 용서 못해”

    [더오래]정조 “임금은 나 하나, 이에 대한 도전 절대 용서 못해”

    숙종의 ‘애련정기(愛蓮亭記)’에는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연꽃을 사랑하여 새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이라고 지었다고 적고 있다. 부디 애련정을 불로문을 통과한 연지 가장자리에서 바라만 보고 감탄하지 말고 조금 더 걸어서 정자의 마루와 수평이 되는 지점까지 다가간 후 정자 기둥 낙양각 안으로 들어오는 풍경을 붙들기를 권한다. 정조 자신을 달에 비유해 달빛이 만개의 개울을 고루고루 비추듯 만백성을 보살피겠다는 애민사상과 ‘하늘의 달이 하나이듯 임금도 오로지 정조 자신 하나뿐이니, 이에 대한 도전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강력한 왕권을 주장한 개혁 군주로서의 정치관을 읽을 수 있다.

    2022.01.02 13:00

  • [더오래]시험 못 본 관리 꼬집고 종아리 때리며 망신준 정조

    [더오래]시험 못 본 관리 꼬집고 종아리 때리며 망신준 정조

    정자의 한 면은 땅에 걸치고 한 면의 초석을 물에 넣는 것은 사람들이 아예 연지에 섬을 두고 그 위에 정자를 짓지 않는 이상 정자에 앉아 가장 가까이 접근해 물가 풍경을 즐기기 위한 방식이기도 했다.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 종종 신하들을 초대해 이 영화당과 부용지 일대에서 신하들과 함께 시를 짓고, 책을 읽고, 낚시를 하며 풍류를 즐겼다. 시험은 규장각 관리가 주관하는 두 과목의 시험(경전 읽기, 문장 짓기)과 정조가 주관하는 한 가지 시험(문장 짓기)을 보았다.

    2021.12.19 13:00

  • [더오래]출세 꿈꾸던 선비·이몽룡이 과거시험 치른 창덕궁 '춘당대'

    [더오래]출세 꿈꾸던 선비·이몽룡이 과거시험 치른 창덕궁 '춘당대'

    창덕궁 후원의 첫 번째 영역 부용지에 당도하면 시원하게 확 트이는 연못 남쪽의 부용정, 북쪽 언덕에 이층집 주합루가 있고, 연못 오른편으로 영화당이 있다. 그리고 부용정 연지 남쪽 모퉁이 장대석에 물에서 튀어 오르는 잉어 조각을 찾아보길 바란다. 부용지 장대석의 잉어는 어느 날 용문 협곡을 거슬러 올라(등용문) 용이 되어 임금의 부름을 받고 국가의 인재가 되어 입신출세의 길을 걷는데, 이 등용문의 장소가 바로 과거장으로 쓰인 영화당 앞마당 춘당대이고 급제한 사람은 관리에 임명되고 그 후 더욱 정진하여 왕을 측근에서 보필하는 규장각 관료가 된다는 연결이다.

    2021.12.05 13:00

  • [더오래]눈에 띌듯 말듯…창덕궁 후원 정자, 건축 아닌 자연

    [더오래]눈에 띌듯 말듯…창덕궁 후원 정자, 건축 아닌 자연

    이러한 사상적 배경은 왕실 정원을 조성하는데도 그대로 적용되어 왕이 거닐던 궁궐의 후원을 보면 아직도 원림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즐겨 찾는 장소에 건립된 정자나 물길은 자연에 그대로 스며들어 마치 원래부터 자연의 일부였던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제 조선 사람들이 궁궐의 후원에 정자를 지으면서 어떤 자연관을 건축에 도입하려 했는지도 살펴보도록 하자. 사람들은 창덕궁 후원의 정자를 보면서 그것을 건축으로 보지 않고 그냥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2021.11.21 13:00

  • [더오래]연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왕실 가족의 쉼터 향원정

    [더오래]연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왕실 가족의 쉼터 향원정

    여름이면 연못에 가득 핀 연꽃이 참 곱고, 다리 아픈 관람객은 연못가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정자를 찬찬히 감상할 수 있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건청궁에 살면서 거닐 던 왕실 정원이니 당연히 섬으로 건너는 취향교(醉香橋)는 건청궁 쪽에서 진입하도록 놓였다. 그러나 원래의 취향교는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는데 향원정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새로 설치할 당시에는 건청궁도 일제강점기에 모두 헐려 나가 흔적도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복궁 남쪽에서 진입하는 관람객의 입장에서 보기 편한 방향으로 다리를 설치하고 오랫동안 그렇게 두었다.

    2021.11.07 13:00

  • [더오래]시해범 후손“할아버지 한 일 사죄”…그래도 아쉬운 건

    [더오래]시해범 후손“할아버지 한 일 사죄”…그래도 아쉬운 건

    저서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경복궁』편을 집필할 당시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한국인으로서는 너무나 치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아프고 감당하기 힘든 주제라, 그저 건청궁을 소개하면서 을미사변에 관해 간단한 언급을 한 정도였다. 많은 일본인은 일본 정부가 조선침략기 동안 저지른 만행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그들의 우월성에 기반한 편향되고 조작된 역사를 기억한다. ‘명성황후추모사업회’ 이영숙 회장도 명성황후 시해는 범인의 자손이 개인 자격으로 사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라며 일본 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니 만큼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1.10.24 13:00

  • [더오래]日시민들 박수, 훈장도…영웅 대접 받은 왕비 시해범

    [더오래]日시민들 박수, 훈장도…영웅 대접 받은 왕비 시해범

    명성황후 시해 현장에 대원군을 데려다 놓은 것은 일제가 사건의 모든 책임을 명성황후의 정적인 대원군에게 덮어씌우려는 목적에서였다. 웨베르보고서에는 사건이 벌어진 뒤 각국의 공사관들이 일본 공사관에 찾아가 사건의 진위와 일제의 관련 여부를 추궁하자 미우라는 "불합리한 풍설을 퍼뜨리는 악의에 찬 조선인의 말보다 일본인의 말이 더 신임할만하다" 며 일본과 무관한 일이라고 발뺌을 했다. 알렌 등 외국공사들은 다이, 사바틴, 현홍택, 의녀, 궁녀 등 현장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직접 들은 상황 설명으로 일본군, 경찰, 일본 공사관원 등 일본인들이 황후 시해를 자행하였고 미우라가 이들의 사주자임을 간파하였다.

    2021.10.10 13:00

  • [더오래]도망치다 구둣발로 짓밟히고…숨붙은 채 불태워진 왕비

    [더오래]도망치다 구둣발로 짓밟히고…숨붙은 채 불태워진 왕비

    왕세자 이척의 증언은 일본인 흉한들이 왕비를 내동댕이치고 구둣발로 가슴을 세 번이나 내리 짓밟고 칼로 찔렀다고 했고, 영국 영사관 힐리어가 북경의 오코너에게 보낸 보고서에는 왕비는 뜰 아래로 뛰어나갔지만 붙잡혀 넘어뜨려 졌고, 살해범은 수차례 왕비의 가슴을 짓밟은 뒤에 칼로 거듭 왕비를 찔렀다고 했다. ‘에조보고서’란 명성황후 시해 사건 현장에 있던 일본인의 이시즈카 에조(石塚英藏)의 보고서로 을미사변 직후 바로 작성되어 법제국 스에마쓰(末松) 장관에게 전달된 시해사건 기록이다. 그리고 이 보고서에는 사건 직후 10월9∼10일 제물포항에 정박해 있던 일본 군함과 선박 2척이 연이어 황급히 일본으로 떠났다는 자체 첩보에 따라 이 배가 시해범들을 실어 날랐을 것이며, 따라서 이것이야말로 일본 정부가 시해 사건에 개입한 증거라고 나름으로 결론을 내린 대목도 있다.

    2021.09.26 13:00

  • [더오래]일본인들 “황후 어딨나”…러시아인 목격자 그날의 증언

    [더오래]일본인들 “황후 어딨나”…러시아인 목격자 그날의 증언

    그는 조선 여자(궁녀)들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밖으로 끌어낸 뒤에 창문 밖으로 높이 약 6피트(약 180cm) 되는 곳에서 아래로 내동댕이치고 있던 일본인들에게 큰 소리로 명령하면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내가 황후전 마당에 서 있는 동안, 일본인들은 10~12명의 궁녀를 창문 밖으로 내던져 마당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즉, 나는 황후의 얼굴도 본 적이 없거니와 유럽인으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조선국 황후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황후의 거처를 알아볼 권리조차 없다고 하면서 온갖 구실을 붙여 용서를 빌었으나, 일본인들은 나를 황후전으로 끌고 갔다.

    2021.09.12 13:00

  • [더오래]러시아 건축가는 어쩌다 명성황후 시해의 목격자가 됐을까

    [더오래]러시아 건축가는 어쩌다 명성황후 시해의 목격자가 됐을까

    그해 가을에 동학농민군이 다시 봉기(2차 농민 전쟁)를 한 것은 경복궁 점령 후 조선 정부를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명성황후의 민씨 일족이 장악하고 있던 조선 정부가 일본의 요구를 내정간섭이라 하여 거절하자, 일본군은 7월 23일 경복궁에 난입해 무력으로 민씨 일가를 타도하고 흥선 대원군을 섭정으로 다시 추대하는 한편, 개화파 인사로 신내각을 구성하게 하였다. 사바틴은 을미사변 당시 경복궁 관문각에 상주하던 사바틴은 1895년 건청궁에서 벌어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목격하고 러시아 영사관을 통해 사건을 국제사회에 알린 인물이다.

    2021.08.29 13:00

  • [더오래]고종이 친정 펴려고 사비로 지은 건청궁의 비극

    [더오래]고종이 친정 펴려고 사비로 지은 건청궁의 비극

    건청궁은 1873년(고종 10년)에 경복궁 북쪽 끝자락에 지은 집으로 건청궁이라는 이름으로 볼 때 궁궐 안에 또 하나의 궁이 있는 셈이다. 건청궁은 연대 상으로는 경복궁의 전각 중에서 가장 나중에 건립되었으며 일제에 의해 가장 먼저 사라진 전각이다. 장안당 뒤편으로 한국 최초의 양관(洋館)이 있었는데 사바틴에 의해

    2021.08.15 13:00

  • [더오래]자주 불 난 조선 궁궐…굴뚝에 불가사리 많은 이유

    [더오래]자주 불 난 조선 궁궐…굴뚝에 불가사리 많은 이유

    ■ 길상문자문(吉祥文字) 「 궁궐의 담장이나 굴뚝, 건물 지붕의 합각부분에는 형태문양과 기하문양을 부수적으로 넣고 문자로 길상의 의미를 기원하는 장식을 한다. 창덕궁 희정당은 1917년 창덕궁 내전일대를 불태운 화재로 1920년 강녕전을 뜯어 옮겨 지으면서, 그 구조는 근대식으로 변형되고 이름도 희정당으로 바뀌었

    2021.08.01 13:00

  • [더오래]옛 여인의 장신구에 그려진 박쥐가 의미하는 것

    [더오래]옛 여인의 장신구에 그려진 박쥐가 의미하는 것

    옛날부터 용은 황제나 왕에 비유되어 왕권을 상징하며 각기 다른 성격과 능력을 지닌 모습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장신구에 박쥐 문양으로 장식하거나 기물에 박쥐를 그려 넣고 베갯모에 박쥐를 수놓는 이유는 박쥐의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에 의미를 부여하여 다산(多産)과 복을 기원했기 때문이다. [더오래]궁궐 꽃담에 그

    2021.07.18 13:00

  • [더오래]궁궐 꽃담에 그려진 영지버섯, 진시황의 그 불로초?

    [더오래]궁궐 꽃담에 그려진 영지버섯, 진시황의 그 불로초?

    궁궐의 꽃담뿐 아니라 돌계단이나 문기둥에서도 당초문양을 볼 수 있으며 옷의 문양이나 장신구의 문양으로도 많이 다자인 되어 왔다. 궁궐 꽃담의 불로초는 영지버섯으로 그려지는데 그 모양이 여의를 닮았고 마치 상서로운 구름이 한데 모이는 것 같다고 여의운(如意雲)이라고도 불렀다. [더오래]중동이 원산지…자경전

    2021.07.04 13:00

  • [더오래]중동이 원산지…자경전 담장에 석류를 새긴 뜻은

    [더오래]중동이 원산지…자경전 담장에 석류를 새긴 뜻은

    자경전의 서쪽 바깥 담장에서 꽃담 장식을 볼 수 있는데, 그 문양이 대단히 아름답고 운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경전에 딸린 꽃담으로 알고 있는 담장의 문양은 원래는 자미당의 주인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자경전 서쪽 바깥 담장의 문양을 북쪽에서부터 살펴보면 매화, 복숭아, 모란, 석류, 국화, 영산홍, 대나

    2021.06.20 13:00

  • [더오래]궁궐 꽃담장 문양에 새긴 옛사람들의 소망

    [더오래]궁궐 꽃담장 문양에 새긴 옛사람들의 소망

    아미산에는 꽃담 치장을 한 아름다운 굴뚝이 있는데 육모 기둥의 벽체에는 각 면마다 여러 가지 꽃과 식물 문양으로 벽면 장식을 하였다. 기하문양의 종류로는 귀갑문(龜甲·석쇠문), 뇌문(雷), 고리문(連環), 만자문(卍), 바자문, 빙렬문(氷裂)이 있고, 그 용도는 꽃담 구획의 윤곽선을 두르거나 강조할 때도 쓰이지만 기

    2021.06.06 13:00

  • [더오래]담장에 꽃 그림 그린 고려 때 이슬람 귀화인 장순룡

    [더오래]담장에 꽃 그림 그린 고려 때 이슬람 귀화인 장순룡

    뿐만 아니라 사고석과 벽돌 테두리에 삼화토로 화장 줄을 치는데 이때에도 역시 돌이나 벽돌의 면 크기에 따라 화장 줄의 간격을 조정한다. 경복궁의 꽃담은 화장 줄의 삼화토 흰색과 벽돌의 붉은 색이 아주 화려한 색 조화를 이룬다. 재미있는 것은 붉은 색 벽돌이 주재료인 듯 생각될 수도 있으나 눈여겨보면 붉은 벽돌과

    2021.05.23 13:00

  • [더오래]조선왕조의 몰락 예고한 효명세자의 죽음

    [더오래]조선왕조의 몰락 예고한 효명세자의 죽음

    왕세자가 국왕을 대신해 국정을 보는 대리청정은 보통 왕이 병들어 정사를 살필 수 없거나, 노년에 격무를 감당할 수 없는 경우 또는 국난을 당해 세자에게 위임통치를 시킬 때에 행해졌다. 이렇게 왕세자 광해군이 국왕을 대신해 분조를 이끌고 정국을 수습하는 일은 평화기의 다른 왕세자들이 경험하지 못했다. 다시 친정

    2021.05.09 13:00

  • [더 오래]하루 3부제 수업, 야간 보충…조선 왕세자는 공부벌레

    [더 오래]하루 3부제 수업, 야간 보충…조선 왕세자는 공부벌레

    왕세자의 하루는 왕과 왕비 등 왕실 어른들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미래 국왕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전부였다. 왕세자의 성균관 입학례는 좋은 날을 잡아 성균관에 가서 공자에게 절하고 교수관인 박사에게 제자의 예를 행하고 궁궐로 돌아왔다. 왕세자는 성균관

    2021.04.25 13:00

  • [더오래]피바람 부른 조선 최초 왕권 승계…장자 상속은 8명뿐

    [더오래]피바람 부른 조선 최초 왕권 승계…장자 상속은 8명뿐

    조선 초기 동궁에 관한 기록으로는 태종 18년(1418) 6월 세자익위사를 따로 설치해 세자 관속을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로 분설한 사실 등으로 보면 이미 동궁이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왕세자는 정비, 즉 왕후의 몸에서 태어난 왕의 적장자로서 어린 나이에 원자로 정해지고 10여 세 전후에 세자로 책봉되었

    2021.04.11 13:00

  • [더오래]일본에 팔려갔던 자선당, ‘불 먹은 돌’로 돌아온 사연

    [더오래]일본에 팔려갔던 자선당, ‘불 먹은 돌’로 돌아온 사연

    아궁이에 불을 넣어서 방바닥을 데우는 한옥의 전통적인 난방 방법인 온돌이 ‘전통 온돌’이라면, 요즘 우리나라의 아파트나 주택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온수 파이프에 의한 온돌을 ‘개량 온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에서 라이트의 고돈 하우스를 지키자는 보존운동이 일어났고 마침내 여기

    2021.03.28 13:00

  • [더오래]문종 세자빈 2명 생별, 1명 사별…자선당의 비극

    [더오래]문종 세자빈 2명 생별, 1명 사별…자선당의 비극

    세종은 세자 문종이 자선당에 살면서 여러 불행한 일을 겪고 더구나 세자빈이 단종을 낳고 하루 만에 죽자 그 다음 날 세자의 거처를 자선당으로 그대로 둘 것인지, 다른 곳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 신료들과 의논했다. 그러나 이후 세자 문종이 처소로 사용하던 자선당에서의 불행이 계속되자 세종은 신하들과 의논하여 문

    2021.03.14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