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이향우 조각가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 교사로 명예퇴직 후 조각가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우리 역사와 전통문화를 배우고 알리는 궁궐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궁궐에서의 오랜 활동을 바탕으로 조각가의 심미안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궁궐의 아름다움을 직접 그리고 글을 썼다. 우리 궁궐의 정다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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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2 00:00 ~ 2021.09.22 18:34 기준

총 51개

  • [더오래]일본인들 “황후 어딨나”…러시아인 목격자 그날의 증언

    그는 조선 여자(궁녀)들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밖으로 끌어낸 뒤에 창문 밖으로 높이 약 6피트(약 180cm) 되는 곳에서 아래로 내동댕이치고 있던 일본인들에게 큰 소리로 명령하면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내가 황후전 마당에 서 있는 동안, 일본인들은 10~12명의 궁녀를 창문 밖으로 내던져 마당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즉, 나는 황후의 얼굴도 본 적이 없거니와 유럽인으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조선국 황후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황후의 거처를 알아볼 권리조차 없다고 하면서 온갖 구실을 붙여 용서를 빌었으나, 일본인들은 나를 황후전으로 끌고 갔다.

    2021.09.12 13:00

  • [더오래]러시아 건축가는 어쩌다 명성황후 시해의 목격자가 됐을까

    그해 가을에 동학농민군이 다시 봉기(2차 농민 전쟁)를 한 것은 경복궁 점령 후 조선 정부를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명성황후의 민씨 일족이 장악하고 있던 조선 정부가 일본의 요구를 내정간섭이라 하여 거절하자, 일본군은 7월 23일 경복궁에 난입해 무력으로 민씨 일가를 타도하고 흥선 대원군을 섭정으로 다시 추대하는 한편, 개화파 인사로 신내각을 구성하게 하였다. 사바틴은 을미사변 당시 경복궁 관문각에 상주하던 사바틴은 1895년 건청궁에서 벌어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목격하고 러시아 영사관을 통해 사건을 국제사회에 알린 인물이다.

    2021.08.29 13:00

  • [더오래]고종이 친정 펴려고 사비로 지은 건청궁의 비극

    건청궁은 1873년(고종 10년)에 경복궁 북쪽 끝자락에 지은 집으로 건청궁이라는 이름으로 볼 때 궁궐 안에 또 하나의 궁이 있는 셈이다. 건청궁은 연대 상으로는 경복궁의 전각 중에서 가장 나중에 건립되었으며 일제에 의해 가장 먼저 사라진 전각이다. 장안당 뒤편으로 한국 최초의 양관(洋館)이 있었는데 사바틴에 의해

    2021.08.15 13:00

  • [더오래]자주 불 난 조선 궁궐…굴뚝에 불가사리 많은 이유

    ■ 길상문자문(吉祥文字) 「 궁궐의 담장이나 굴뚝, 건물 지붕의 합각부분에는 형태문양과 기하문양을 부수적으로 넣고 문자로 길상의 의미를 기원하는 장식을 한다. 창덕궁 희정당은 1917년 창덕궁 내전일대를 불태운 화재로 1920년 강녕전을 뜯어 옮겨 지으면서, 그 구조는 근대식으로 변형되고 이름도 희정당으로 바뀌었

    2021.08.01 13:00

  • [더오래]옛 여인의 장신구에 그려진 박쥐가 의미하는 것

    옛날부터 용은 황제나 왕에 비유되어 왕권을 상징하며 각기 다른 성격과 능력을 지닌 모습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장신구에 박쥐 문양으로 장식하거나 기물에 박쥐를 그려 넣고 베갯모에 박쥐를 수놓는 이유는 박쥐의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에 의미를 부여하여 다산(多産)과 복을 기원했기 때문이다. [더오래]궁궐 꽃담에 그

    2021.07.18 13:00

  • [더오래]궁궐 꽃담에 그려진 영지버섯, 진시황의 그 불로초?

    궁궐의 꽃담뿐 아니라 돌계단이나 문기둥에서도 당초문양을 볼 수 있으며 옷의 문양이나 장신구의 문양으로도 많이 다자인 되어 왔다. 궁궐 꽃담의 불로초는 영지버섯으로 그려지는데 그 모양이 여의를 닮았고 마치 상서로운 구름이 한데 모이는 것 같다고 여의운(如意雲)이라고도 불렀다. [더오래]중동이 원산지…자경전

    2021.07.04 13:00

  • [더오래]중동이 원산지…자경전 담장에 석류를 새긴 뜻은

    자경전의 서쪽 바깥 담장에서 꽃담 장식을 볼 수 있는데, 그 문양이 대단히 아름답고 운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경전에 딸린 꽃담으로 알고 있는 담장의 문양은 원래는 자미당의 주인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자경전 서쪽 바깥 담장의 문양을 북쪽에서부터 살펴보면 매화, 복숭아, 모란, 석류, 국화, 영산홍, 대나

    2021.06.20 13:00

  • [더오래]궁궐 꽃담장 문양에 새긴 옛사람들의 소망

    아미산에는 꽃담 치장을 한 아름다운 굴뚝이 있는데 육모 기둥의 벽체에는 각 면마다 여러 가지 꽃과 식물 문양으로 벽면 장식을 하였다. 기하문양의 종류로는 귀갑문(龜甲·석쇠문), 뇌문(雷), 고리문(連環), 만자문(卍), 바자문, 빙렬문(氷裂)이 있고, 그 용도는 꽃담 구획의 윤곽선을 두르거나 강조할 때도 쓰이지만 기

    2021.06.06 13:00

  • [더오래]담장에 꽃 그림 그린 고려 때 이슬람 귀화인 장순룡

    뿐만 아니라 사고석과 벽돌 테두리에 삼화토로 화장 줄을 치는데 이때에도 역시 돌이나 벽돌의 면 크기에 따라 화장 줄의 간격을 조정한다. 경복궁의 꽃담은 화장 줄의 삼화토 흰색과 벽돌의 붉은 색이 아주 화려한 색 조화를 이룬다. 재미있는 것은 붉은 색 벽돌이 주재료인 듯 생각될 수도 있으나 눈여겨보면 붉은 벽돌과

    2021.05.23 13:00

  • [더오래]조선왕조의 몰락 예고한 효명세자의 죽음

    왕세자가 국왕을 대신해 국정을 보는 대리청정은 보통 왕이 병들어 정사를 살필 수 없거나, 노년에 격무를 감당할 수 없는 경우 또는 국난을 당해 세자에게 위임통치를 시킬 때에 행해졌다. 이렇게 왕세자 광해군이 국왕을 대신해 분조를 이끌고 정국을 수습하는 일은 평화기의 다른 왕세자들이 경험하지 못했다. 다시 친정

    2021.05.09 13:00

  • [더 오래]하루 3부제 수업, 야간 보충…조선 왕세자는 공부벌레

    왕세자의 하루는 왕과 왕비 등 왕실 어른들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미래 국왕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전부였다. 왕세자의 성균관 입학례는 좋은 날을 잡아 성균관에 가서 공자에게 절하고 교수관인 박사에게 제자의 예를 행하고 궁궐로 돌아왔다. 왕세자는 성균관

    2021.04.25 13:00

  • [더오래]피바람 부른 조선 최초 왕권 승계…장자 상속은 8명뿐

    조선 초기 동궁에 관한 기록으로는 태종 18년(1418) 6월 세자익위사를 따로 설치해 세자 관속을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로 분설한 사실 등으로 보면 이미 동궁이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왕세자는 정비, 즉 왕후의 몸에서 태어난 왕의 적장자로서 어린 나이에 원자로 정해지고 10여 세 전후에 세자로 책봉되었

    2021.04.11 13:00

  • [더오래]일본에 팔려갔던 자선당, ‘불 먹은 돌’로 돌아온 사연

    아궁이에 불을 넣어서 방바닥을 데우는 한옥의 전통적인 난방 방법인 온돌이 ‘전통 온돌’이라면, 요즘 우리나라의 아파트나 주택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온수 파이프에 의한 온돌을 ‘개량 온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에서 라이트의 고돈 하우스를 지키자는 보존운동이 일어났고 마침내 여기

    2021.03.28 13:00

  • [더오래]문종 세자빈 2명 생별, 1명 사별…자선당의 비극

    세종은 세자 문종이 자선당에 살면서 여러 불행한 일을 겪고 더구나 세자빈이 단종을 낳고 하루 만에 죽자 그 다음 날 세자의 거처를 자선당으로 그대로 둘 것인지, 다른 곳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 신료들과 의논했다. 그러나 이후 세자 문종이 처소로 사용하던 자선당에서의 불행이 계속되자 세종은 신하들과 의논하여 문

    2021.03.14 13:00

  • [더오래]직접 수렴청정 결정한 조선의 악녀 문정왕후

    정조 24년(1800) 정조가 승하하고 11세의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대왕대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다가 순조 3년(1803) 12월 28일 수렴청정을 거둔다는 언교를 내리고 환정했다. 드디어 왕실의 최고 어른이 된 신정왕후는 철종 14년(1863) 12월 8일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어전에 발을 치고 신료들과 대면한 다음

    2021.02.28 13:00

  • [더오래]할머니 수렴청정 첫 테이프 끊은 성종대 정희왕후

    명종이 승하한 후 선조가 16세에 즉위했지만 왕 수업을 받지 못해 명종 비 인순왕후가 8개월간 수렴청정을 했고, 영조 비 정순왕후는 순조가 11세에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했다가 왕이 15세가 되는 해부터 친정하도록 하고 철렴하였다. 그런데 다시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순원왕후는 강화도에 있는 전계군의 아들 원범(

    2021.02.14 13:00

  • [더오래]단종이 수렴청정 받았다면 세조의 찬탈 가능했을까

    다음으로 대비의 중요한 정치적 역할은 수렴청정으로 새 국왕이 친정을 펼칠 수 있는 성년이 될 때까지 국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즉위 당시 단종이 어리기는 했지만 후대에 단종보다 어린 나이에 즉위해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으로 보호받은 왕들이 친정을 펼친 나이를 생각하면 단종도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으로 역량

    2021.01.31 13:00

  • [더오래]수렴청정한 양어머니, 그 보은으로 자경전 지은 고종

    자경(慈慶)이란 이름은 정조가 즉위하면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창경궁에 있던 자경전에서 비롯됐는데, 자애로운 어머니에게 경사가 임하기를 바라는 의미를 갖는다. 정조는 즉위한 직후 창경궁 영춘헌 일곽과 양화당 북쪽 언덕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자경전을 지었다. 그리고 고종 대에 경복궁이 중건되

    2021.01.17 13:00

  • [더오래]조선 시대 왕비의 기 살려주던 경복궁 양잠 이벤트

    성종 대에는 ‘친잠단(親蠶壇)’의 터를 창덕궁 후원에 살펴 정하게 하였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후원에 뽕나무를 심어 왕비가 친잠례를 거행하기 위한 채상단(採桑壇)을 설치한 것이다. 아마도 조선 시대의 왕비는 친잠례로 자신의 권위를 후궁이나 왕실 사람에게 명확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왕

    2021.01.03 13:00

  • [더오래]며느리 둘 내쫓고 자식 낳은 첩 세자빈 삼은 세종

    세자빈의 나이 또한 왕세자와 비슷한 15세 전후였고, 연상인 경우도 많았다. 왕실 혼례가 일반 백성의 혼인 적령기보다 조금 빠른 이유는 적령기 백성 자녀가 혼사를 정한 후에 금혼령이 내려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비 사망 이후 맞이하는 계비의 경우 왕의 나이에 상관없이 15세 전후의 신부를 간택

    2020.12.20 13:00

  • [더오래]왕과 하룻밤 보낸 승은 궁녀, 출세길 활짝

    왕비의 공식적인 업무는 후궁 중 빈에 해당하는 정1품부터 상궁, 나인 등 궁내의 모든 여성 품계인 내명부와 종친이나 관리들의 부인이 받는 외명부의 품계까지 관장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고위관료나 사대부 여인의 지위인 외명부(外命婦)는 남편의 지위에 따라 그 품계가 정해졌다. 특수층의 여인은 왕실의 내명부를 제외

    2020.12.06 13:00

  • [더오래]조선시대 왕과 왕비가 길일 받아 합궁하던 곳

    교태전은 임진왜란으로 불탄 후 고종 때 현재의 규모로 지어져 비로소 왕비를 위한 중궁전으로 사용되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 왕비가 시해당하고 난 뒤 교태전은 주인을 잃었고, 결정적인 수난은 1917년 창덕궁 화재로 내전 영역이 불타자 교태전을 헐어 그 부재로 대조전을 복원하는 데 썼다. 길일을 받아 왕이 왕

    2020.11.22 13:00

  • [더오래]경복궁 안 어정, 과연 임금의 식용수로 썼을까

    왕과 왕비의 침전 건물인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다. 그런데 무량각은 지붕마루에 두터운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고 내부에는 종도리를 두개 나란히 거는 수법으로 지붕 선을 구성한다. 창덕궁의 왕후 침전인 대조전, 현재 우리가 보는 대조전은 경복궁 교태전을 옮겨 지은 것이니 똑같이 생긴 게 아

    2020.11.07 13:00

  • [더오래]'왕의 남자'가 임금 앞에서 광대 공연 하던 곳

    세종은 강녕전에서 곡연(曲宴: 작은 규모의 잔치)을 베풀고, 소헌왕후의 탄신일이나 온천을 다녀온 후에도 왕비를 위해 강녕전에서 잔치를 했다. 또 새해가 되면 새해의 회례연(會禮宴)을 근정전에서 베풀고 임금이 사정전에서, 왕비가 강녕전에서 각각 잔치했다. 왕이 베푸는 잔치에는 왕세자 이하 모든 문무 관료들이 참

    2020.10.25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