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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자주 불 난 조선 궁궐…굴뚝에 불가사리 많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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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48)

코끼리

코끼리의 한자어인 상(象)이 길상의 상(祥)과 발음이 같아 길상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사람이 코끼리를 타고 있는 것을 기상(騎象)이라고 하는데 기상 또한 발음이 길상(吉祥)과 비슷해 길상의 상징으로 여긴다. 코끼리 문양은 궁궐 건축에서는 흔히 보이지 않지만 창덕궁 희정당 마당의 굴뚝 북쪽 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불가사리

불가사리는 불을 먹는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굴뚝의 문양에는 불을 제압하고 잡귀를 물리치는 불가사리가 늘 등장한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경복궁의 경회루를 한국전쟁의 폭격 속에서 구한 것도 다리 엄지기둥에 세운 불가사리의 공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굴뚝문양에 그렇게 많은 불가사리가 있었는데도 궁궐에는 왜 그리도 많은 화재가 난 것일까, 소망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은 아이러니이다.


예로부터 학은 양(陽)을 뜻하고 그 정기는 화정(火情)을 나타낸다고 한다. 고려청자 운학문 매병에는 구름 속을 나는 학의 자태가 화려하고 궁궐 곳곳에 불로초를 입에 문 학이 날고 있다. 궁궐의 문주나 기와, 굴뚝 여기저기에 나타나는 학은 십장생의 하나인 영물이다. 학은 1600년 동안 백색의 자태를 지니는데 2년 후에 빠진 깃털이 변하여 흑점(黑點)이 되고 3년에 머리가 붉어지고 7년 만에 구름의 무리를 거느린다고 했다. 학의 깃털은 흙탕물에 더렵혀지지 않고 학은 일품조(一品鳥)라 했다. 그 품격이 봉황 다음이라 하고 한 쌍의 선학(仙鶴)이 구름 속에 춤추며 나는 모습은 고아일품(高雅一品)으로 불렀다.

새(오리, 원앙)
자경전 십장생 굴뚝 형상문양의 오른편에 있는 원앙은 행복한 결혼의 상징이다. 전통문양에 그려지는 새는 대부분 두 마리가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부부의 금슬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손번성을 소망해 어린 새끼를 함께 그려 넣는다. 그중 물새인 오리와 원앙은 물가 풍경으로 연꽃이나 갈대와 함께 그려진다.

길상문자문(吉祥文字)

궁궐의 담장이나 굴뚝, 건물 지붕의 합각부분에는 형태문양과 기하문양을 부수적으로 넣고 문자로 길상의 의미를 기원하는 장식을 한다. 복을 기원하는 한자를 한가운데 넣고 그 둘레나 바탕 면을 초화나 기하문으로 채우는 경우이다. 궁궐 꽃담에 나타나는 길상 문자에는 주로 성인도리, 수복강녕(壽福康寧), 낙강(樂康), 만년장춘(萬年長春), 희(囍), 세(歲), 다복(多福), 다수(多壽), 다남(多男) 등 주로 오래 복을 누리며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고 자손 번영을 상징하는 의미의 한자가 등장한다. 길상문은 담장에도 설치하지만 전각의 지붕 합각 양쪽에는 집주인이 복을 누리고 오래살기를 기원하는 길상문을 수놓는다. 그런데 특히 길상문자의 경우 전돌을 이용한 꽃담의 면구성상 획의 변형과 생략이 심하고 근래에 훼손된 부분의 보수가 행해지는 시점에서의 오류로 인한 변형이 매우 심각한 현실이다.

강녕(康寧)

희정당 합각 동쪽 강(康). [사진 이향우]

희정당 합각 동쪽 강(康). [사진 이향우]

강녕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의 하나로 강녕이 오복의 중심이다. 건강한 삶을 누리고자하는 소망으로 경복궁 강녕전의 동서 양쪽 합각마루에 강, 녕 두 길상문자가 보인다. 창덕궁 희정당은 1917년 창덕궁 내전일대를 불태운 화재로 1920년 강녕전을 뜯어 옮겨 지으면서, 그 구조는 근대식으로 변형되고 이름도 희정당으로 바뀌었으나 강녕전이 지니고 있던 합각마루는 그대로 지붕에 올라가 동서 양편으로 그 원래의 이름 ‘강녕’을 보여주고 있다.

자경전 꽃담의 낙강만세 만년장춘(樂康萬歲 萬年長春)
얼마 전 신문기사에 자경전 서쪽 담장의 꽃담 훼손이 심각한데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었다. 이 경우는 문화재의 보존을 위해 시기적으로 중간 중간 보수를 할 때 그 과정에서 오류가 나타나기도 하고 원형이 아주 파괴되어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원형으로 복원해야한다고 주장을 하지만 벽 담장의 보수는 해체의 과정을 거쳐야하는데, 이때 현 상태보다 그 위험성이 크면 더 시간을 두고 결정을 해야 한다. 자경전 서쪽 바깥 담장의 길상문은 일제강점기 어느 때 쯤에 담장의 수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기록이나 근거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중간의 길상문 두자가 없어지고 그 부분은 꽃담 구조가 아닌 일반 벽돌쌓기로 처리되어 문구의 연결이 모호해졌다.

현재 자경전 서쪽 담장에 보이는 길상문 만년장춘의 만년은 실제의 시간적인 햇수를 헤아리기 보다는 만년을 두고 길게 이어지는 봄을 늙지 않는 청춘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1900년 대 초 궁궐을 찍은 유리 건판의 자료사진에 의하면 萬, 歲 두 글자와 그 가운데 있던 형상문양(불수감)과 기하 문양이 없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촬영한 유리건판 궁궐사진에 확인되는 훼손 부분은 歲, 기하문, 불수감, 萬과 빙열문 옆의 넓은 벽면이다. 이를 근거로 자경전 담장의 전체 길상문을 읽어보면 낙 ․ 강 ․ 만 ․ 세 ․ 만 ․ 년 ․ 장 ․ 춘萬 年 長 春)이다. 이를 해석하면 ‘즐겁고 건강하게 만세를 사시고 만년토록 봄날(청춘)을 누리소서’ 라고 축원하였다. 즉 자경전 영역의 길상문자는 십장생 굴뚝 동편 담장의 성인연면(聖人連綿)에서 자경전 서편 안담의 ‘천수만수’를 거쳐 다시 바깥 담장의 ‘낙강만세만년장춘’으로 이어지는 문구로 읽어야 한다.

 성인연면(聖人連綿): 오래 연이어서 끊이지 않음. 전통을 잇게 하다.
 천수만수(千壽萬壽)
 낙강만세만년장춘(樂 康 萬 歲 萬 年 長 春)

수(壽), 세(歲)

낙선재 굴뚝 수(壽). [사진 이향우]

낙선재 굴뚝 수(壽). [사진 이향우]

덕수궁 함녕전 굴뚝, 낙선재 굴뚝에서 볼 수 있듯이 주로 굴뚝이나 건물 합각마루의 길상문에 목숨 수자가 자주 등장한다. 경복궁 강녕전의 굴뚝의 만수무강(萬壽無疆), 천세만세(千世萬歲)는 이 집에 사는 사람의 무병장수를 빌고 있다. 자경전 서편 안담의 천수만수(天壽萬壽), 낙선재 뒤편 굴뚝에는 만수만세(萬壽萬歲)이다.

희(囍)
경사와 기쁨을 의미하는 희(喜)자는 문양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특히 쌍희(囍)는 기쁜 일이 겹쳐 일어나기를 바라는 집주인의 소망을 담고 있다.

희정당 굴뚝

희정당 굴뚝 동쪽 도덕 道德/ 기린 [사진 이향우]

희정당 굴뚝 동쪽 도덕 道德/ 기린 [사진 이향우]

창덕궁 희정당은 왕이 거처하거나 국정을 살피던 공간이다. 희정당 중정에 놓인 굴뚝의 4면에는 전통 꽃담방식의 길상문과 꽃담 장식이 새겨져 있다. 희정당이 왕의 거처임을 알리면서 동시에 왕의 도덕적 자세를 일깨우는 문자 장식과 형상 문양이 함께 그려졌다.

동: 도덕(道德) ․ 기린(성군의 치세를 알리다)
서: 수복(壽福) ․ 학, 반도
남: 영락(永樂) ․ 사슴
북: 강녕(康寧) ․ 코끼리

이상으로 6회에 걸친 궁궐의 꽃담에 숨겨진 전통 문양의 연재를 마치면서, 이제 여러분에게 궁궐의 곳곳에 숨어 있는 우리 전통 문양을 찾아 혼자 즐기는 궁궐나들이를 떠나보기를 청한다. 그리고 그곳에 살았던 궁궐 사람들과 만나기를 희망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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