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또 안돕는 '우주의 기운'…열병식 자제했는데 "베이징 가지마"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뉴스 ONESHOT’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북한이 정권수립 기념일 73주년인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노농적위대·사회안전군의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남한의 경찰에 해당하는 사회안전군이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정권수립 기념일 73주년인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노농적위대·사회안전군의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남한의 경찰에 해당하는 사회안전군이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北 변칙 열병식과 IOC의 분노  

연초 외교가에서 화제가 됐던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우주의 기운’ 발언이 있다.
“‘토르’라는 영화를 보면 9개의 세계가 일렬로 정렬할 때 우주의 기운이 강력하게 집중되는데, 이것을 컨버전스(Convergence)라고 한다. 이와 같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집중된 ‘대전환의 시간’이 우리 앞에 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1월 4일 영상시무식)

갑자기 튀어나온 ‘우주의 기운’에 어리둥절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간절함을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최근 며칠 한반도 주변 정세를 보면 이 우주의 기운이 묘하다. 이 장관이 바라는 것과는 반대의 의미로 말이다.

방역, 안전…의도적 수위 조절

북한은 정권 수립 73주년 기념일을 맞아 9일 0시 열병식을 진행했다. 통상적인 열병식처럼 신형무기를 선보이는 무력 과시가 아니었다. 연회와 불꽃놀이 등으로 분위기를 한껏 띄웠고, 트랙터와 오토바이를 동원한 기계화종대와 주황색 방역복을 입은 비상방역종대 등이 행진했다. 정규군은 빠졌고, 노농적위군(예비군, 민방위)과 사회안전군(경찰)이 주력이었다.

북한이 정권수립 기념일 73주년을 맞아 자정에 남쪽의 예비군 격인 노농적위군과 경찰 격인 사회안전무력의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열병식에서는 농기계인 트랙터도 122㎜ 방사포와 불새 대전차미사일 등을 싣고 행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정권수립 기념일 73주년을 맞아 자정에 남쪽의 예비군 격인 노농적위군과 경찰 격인 사회안전무력의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열병식에서는 농기계인 트랙터도 122㎜ 방사포와 불새 대전차미사일 등을 싣고 행진했다. 연합뉴스

8월 한ㆍ미 연합훈련을 전후로 거친 위협과 경고를 거듭해온 북한이 5주년이나 10주년 단위로 꺾어지는 정주년도 아닌데 9ㆍ9절을 기념해 열병식을 연 것은 일종의 대미ㆍ대남 시위 성격으로 해석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럼에도 열병식의 주제는 외부에 대한 대항이 아니라 내부를 향한 결속이다. 뱉어놓은 말이 있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도발적 행태로 판 자체를 깨거나 흔들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선택한 게 이같은 변칙적 열병식으로 보인다.

도쿄 올림픽 ‘노쇼’가 부른 징계

하지만 이처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열병식이 거의 마무리됐을 9일 오전 1시 40분(한국 시간)쯤 스위스 로잔에서 들려온 소식.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공화국 창건 73돌 경축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이 수도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됐다"라고 보도했다.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주석단에 선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공화국 창건 73돌 경축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이 수도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됐다"라고 보도했다.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주석단에 선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뉴스1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북한 올림픽위원회(NOC)의 자격을 2022년까지 정지한다는 징계 발표였다. 북한은 2022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정 지원을 비롯해 모든 혜택을 받을 자격도 박탈한다는 공식 발표에서는 북한의 도쿄 올림픽 ‘노 쇼’에 대한 IOC의 분노마저 묻어났다.

사실 IOC의 결정이 아니어도 과연 김 위원장이나 그의 특사 격인 대표단이 베이징 올림픽에 모습을 드러낼지를 두고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나와봤자 얻을 것이 별로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2018년 평창 겨울 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과 비슷한 시점인 평창 올림픽 약 5개월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 보면 2017년 9월 3일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2개월 뒤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시험발사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공화국 창건 73돌 경축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이 수도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됐다"라고 보도했다.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공화국 창건 73돌 경축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이 수도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됐다"라고 보도했다. 뉴스1

평창에서의 화해 분위기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 때야말로 우주의 기운이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돕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김 위원장이 베이징 올림픽을 분위기 반전의 기회로 삼아보려 해도 물리적으로 어렵게 됐다.

멀어진 ‘평창 어게인’의 꿈

‘평창 어게인’을 바라던 문재인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정부는 도쿄 올림픽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의 계기로 삼아보려 했으나, 역시 무산됐다.

2018년 평창 겨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남북단일팀이 한반도기와 함께 입장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고 있다. 중앙 포토

2018년 평창 겨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남북단일팀이 한반도기와 함께 입장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고 있다. 중앙 포토

도쿄 올림픽은 북한이 거부하고, 베이징 올림픽은 북한이 거부당하는 상황이다. 평창에서 너무 큰 기회를 만들어낸 게 오히려 올림픽마다 집착하며 기대감을 갖다 실패하는 패착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된 분위기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북한의 우선순위도 점점 밀려나는 분위기다. 그렇지 않아도 행정부 초기부터 북한 문제를 미ㆍ중 갈등의 하부구조 상 문제처럼 다루며 시급성을 두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는데, 아프간 사태가 터지며 바이든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사에서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9일 백악관에서 백신 관련 발표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9일 백악관에서 백신 관련 발표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한ㆍ미 북핵 수석대표들이 최근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불과 몇 주 사이로 대면 회담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이럴 때일 수록 동맹의 긴밀함을 보여줘 괜한 오해를 불식하자는 것이다. 14일에는 도쿄에서 한ㆍ미ㆍ일 수석대표들이 머리를 맞댈 예정이다.

이런 노력이 점점 묘해지는 우주의 기운을 바꿀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