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을장마 속 병충해 습격…추석·김장철 앞두고 타는 농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지난 3일 오후 고랭지 배추의 주산지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의 한 배추밭. 수확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바이러스성 질병인 ‘배추무름병’이 퍼진 모습. 1.3㎞ 떨어진 곳에 있는 무밭은 병충해 피해로 수확량의 30%를 폐기했다. 박진호 기자

지난 3일 오후 고랭지 배추의 주산지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의 한 배추밭. 수확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바이러스성 질병인 ‘배추무름병’이 퍼진 모습. 1.3㎞ 떨어진 곳에 있는 무밭은 병충해 피해로 수확량의 30%를 폐기했다. 박진호 기자

지난 3일 오후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의 한 배추밭. 고랭지 배추의 주산지인 밭 곳곳에서 자라난 배추가 노랗게 변해 있었다. 수확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바이러스성 질병인 ‘배추 무름병’이 퍼진 탓이었다.

이 밭에서 100m 떨어진 또 다른 배추밭은 속이 텅 빈 배추가 많았다. 속이 짓물러 녹아내린 이른바 ‘꿀통 현상’이 나타나자 농민들은 발을 굴렀다. 한기연(47) 횡계2리 이장은 “무더위에 소나기가 계속 쏟아지다 보니 배추에 뜨거운 물을 퍼부은 것처럼 속이 비게 됐다”며 “비를 맞고 주저앉은 배추가 썩어가면서 상당수 농가가 수확을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풍성해야 할 추석 대목과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와 무, 고추 등 각종 농작물에서 병충해 피해가 속출하면서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배추밭에서 1.3㎞ 떨어진 무밭 또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날 한 농민이 무를 출하하기 위해 수확에 나섰는데 무 윗부분이 검게 변하는 등 심각한 병충해 피해를 봤다. 이날  서울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에 보내려던 이 무밭에선 3분의 1가량의 무가 폐기됐다.

잦은 비로 흑성병에 걸려 짓무른 배. [중앙포토]

잦은 비로 흑성병에 걸려 짓무른 배. [중앙포토]

수확 작업에 나선 성운이(52)씨는 “오늘 작업한 곳은 그나마 30% 정도만 폐기했는데 심한 곳은 아예 손을 못 대고 있다”며 “한 사람당 13만원의 인건비를 주고 수확을 해봐야 남는 게 없으니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평창 대관령에서 접수된 꿀통과 무름병 피해는 12개 농가에 18만㎡에 달한다.

최근 이어진 가을장마에 충북지역은 고추 병충해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괴산군 청안면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윤덕희(66)씨는 최근 3300㎡(1000평) 고추밭의 수확을 포기했다. 열매에 갈색 반점이 생겨 썩어들어가는 ‘탄저병’과 애벌레가 구멍을 내고 파고 들어가는 담배나방 피해가 속출해서다.

윤씨는 “지난해에도 탄저병 때문에 농사를 망쳐 수확을 제대로 못 했는데 올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인건비도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2배 가까이 올라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들쑥날쑥한 날씨에 수확 작업까지 지체되고 있다. 또 물량이 일시에 쏟아지는 홍수출하 탓에 산지가격이 떨어져 농민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농민은 “고랭지 배추와 무의 손익순기점은 배추 10㎏(3포기) 한 망과 무 20㎏(9~10개) 한 박스 기준 1만5000원 선”이라며 “파종부터 비료, 농약 등을 감안하면 이 정도 가격에는 팔려야 손해를 면하는데 도회지와는 달리 산지가격은 추석을 앞두고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을장마와 병충해에 의한 피해는 과수농가도 겪는 문제다. 전북 전주 지역의 배 재배 농가들은 수확기를 앞두고 비 오는 날이 많아 흑성병이 퍼지고 과실 크기도 작아지자 고민에 빠졌다. 29년간 배를 재배해 온 김락출(65)씨는 “올해는 배 작황이 좋지 않다”며 “4월 상순 개화 후 결실을 볼 때 냉해 피해가 있었던 데다 봄철부터 비가 잦아 흑성병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흑성병(검은점무늬병)은 사과와 배 등에 검은색 얼룩무늬가 생기는 병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하는 배 품목 농업마이스터 6명 중 1명인 김씨는 올해는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비정형과 등 비품 비율이 지난해보다 10% 이상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올해는 꽃이 일찍 펴 수확기가 당겨진 데다 추석이 다가오면 물량이 쏟아져 배 값이 다소 하락할 것으로 예상돼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병충해에 가격 하락까지 각종 악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렵게 구한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도주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강원 양구군은 코로나19로 기존에 오던 필리핀과 태국의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입국이 무산되자 지난 5월부터 3차례에 걸쳐 우즈베키스탄에서 계절근로자 193명을 배치받았다.

하지만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4개월 만에 입국 근로자의 40%인 77명이 이탈했다. 인근 홍천군도 92명이 입국했는데 이 중 22%에 이르는 20명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조인묵 양구군수는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이탈이 잇따르고 있어 출입국관리소와 업무공조를 통해 이탈지로 추정되는 제조업체 등지를 상대로 수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