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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살아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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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저격수의 총탄에 쓰러진 미 해병대 대위가 e-메일로 남긴 이라크의 참모습

로버트 세커는 역사에 관심이 많다. 10월 8일 이라크에서 죽기 전 33세였던 이 해병대원은 남북전쟁의 주요 전투를 줄줄이 뀄다. 아버지의 가족이 희생당한 홀로코스트도 연구했다. 최근 집으로 보낸 e-메일에서는 베트남전과 멕시코 내전에 관한 책을 읽는 중이라고 말했다. 고대 로마에 관한 책을 가장 좋아했다. 용감하게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는 로마 백인대장(百人隊長)들의 이야기에 매료됐다.

“여섯 살 때부터 군인이 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모친 엘크 모리스는 지난주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전투에서 자신을 검증받고자 했다.” 세커는 열일곱 살 때 해병대에 자원했다. 9·11사태 이후 아프간 국경선에서 복무했고 나중에 이라크 전선으로 전속을 지원했다. 결국 저항세력의 최근 본거지인 안바르 지방에 배치됐다.

그곳에서 가장 힘든 일을 맡았다. 이라크군 신병들을 훈련시켜 민병대와 싸우도록 준비시키는 임무였다. 세커는 그 일을 귀찮게 여겼고, 실의에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e-메일과 편지에서 이라크군이 임무를 인계받을 준비가 이뤄질지 회의하고, 부시 정부의 전쟁 수행 방식을 비난했다.

“미국이 없으면 이라크군은 실패하고 저항세력에 산 채로 먹힌다”고 지난 4월 아버지에게 보낸 e-메일에서 말했다. 5개월 뒤의 짧은 휴가기간에는 한 친구를 만나 훈병들 중에는 목타다 알사드르에게 충성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만일 그 과격파 성직자가 명령만 내리면 아무 거리낌없이 미군 교관들을 배신하리라고 말했다.

세커 대위가 남긴 다른 메시지들을 보면 이라크 훈병들을 사랑하고 용기를 높이 사는 대목도 있다. 그는 반전주의자가 아니었다. 부모의 말에 따르면 철저한 공화당원이었다. e-메일들에서도 성공의 전망이 희박해졌다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쨌든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을 늘 옹호했다.

“우리를 신디 시헌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부친 피에르 세커는 멤피스 자택에서 이뤄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이라크에서 아들을 여읜 뒤 반전운동의 기수로 변한 캘리포니아 여성을 가리킨 말이었다). “내 생각에 우리가 평화주의를 추구했으면 히틀러가 승리했다. 지금쯤 모두들 독일어나 일본어로 말할지 모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군 병사들이 보고 배울 기준을 세우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그들의 훈련이 순조롭다고 선언했다.

그런 마당에 세커 대위가 전선에서 보내온 메시지를 보면 그림이 그리 단순치 않다. 그의 e-메일은 분량상 편집을 하고 의미를 분명히 하려고 오자를 고치기는 했지만 사용된 단어와 감정은 전적으로 본인의 작품이다.

발신: 로버트 세커
일시: 2005년 12월 6일 화요일, 오전 5시31분
수신: 피에르 세커
제목: 안녕하세요
우선 제가 보낸 메일을 모두 저장(인쇄하고 저장)하는 일 잊지 마세요. 이번에 배치받은 임무에 관해 포괄적 일기를 써서 책을 두 권 낼 생각이에요. 하나는 돌아가서 쓰고, 또 하나는 물론 지금 쓰는 것이죠. 아버지가 저장하는 모든 메일이 제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 팀은 각 분야 전문가 출신의 해병대원들로 구성됐어요. 병참·보병·정보·통신·포병(저와 한 병장), 그리고 물론 해군 위생병(우리 위생병)이 있죠. 우리는 이라크 기지에 막사를 정하고, 거주하고, 먹고…, 이라크인들과 싸우죠. 그들은 이라크 7사단 2여단 1대대 같아요. 11217부대라고 하죠. 우리는 알안바르 지방 유프라테스강 유역이고 수니파 삼각지대의 일부인 히트에 주둔해요.
아시겠지만 로마 백인대장들이 아침 점호시간에 부하들을 점검할 때 병사들은 가슴의 흉갑을 주먹으로 두들기면서 “인테그리타스”라고 말했죠. 갑옷의 상태가 완벽하며 전투준비가 완료됐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죠. 제 마음과 장비도 늘 정신 집중하고 준비가 돼 있으니 안심하세요.
인테그리타스, 로버트.

세커의 12개월 이라크 근무는 1월 24일 쿠웨이트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정식으로 시작됐다. 2월 18일 이라크 병사 약 500명과 함께 주둔한 안바르 지방의 히트에서 뉴욕에 있는 친한 친구 피터에게 메일을 보냈다.

피터,
자네가 보내준 위문품을 받고 너무 고마워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 전부 쓸모있고 꼭 필요한 물건만 골라서 보냈더군! 인테그리타스 딱지가 끝내줬어. 방탄복과 대공포에 달아놓아야겠어.
우리 기지는 유프라테스강에서 1㎞쯤 떨어졌어. 동쪽은 야자나무 숲이고 서쪽은 사막이지. 히트는 무법천지인데 전투 대부분이 북쪽(남쪽은 저항세력이 장악하고 있어)에서 벌어져. 캠프 히트는 흙벽으로 둘러싸인 나무 오두막들로 이뤄졌어. 기지 밖의 해자 둘레에는 3중 철선을 쳐놓았지.
이라크인들을 처음 봤을 때 마음에 든다는 인상을 받았어. 마음이 따뜻하고 인심이 좋으며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은 처음 봤어. 동시에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어.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여러 해 동안 독재자(후세인)와 점령군(우리)밖에 모르는 신세잖아. 고속으로 시내를 질주(급조폭발물장치를 피하는 데는 스피드가 최선의 방어책이야)하면서 사람들 얼굴 표정을 본다네. 병들고 지친 모습들이지. 처음에는 후세인 세대, 이제는 저항세력과 점령군. 모두들 약속만 남발하고 아무도 지키지 않아.
모든 게 잘되기를 바란다. 여기는 춥다. 뉴욕도 엄청 춥겠지. 몸조심하고, 또 연락할게.
친구 로버트가

3월 3일 오전 세커와 부대원들은 시내를 지나가던 중 길거리 쓰레기로 위장한 급조폭발물장치를 발견했다. 지역을 봉쇄하고 폭발물 처리팀을 불렀다. 가족에게 보낸 e-메일에 그 뒷이야기가 담겼다.

전혀 아무런 경고도 없이(우리가 현장에 도착한 지 10분도 안 돼) 급조폭발물이 터졌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어 소음이 들렸죠. 차 밖으로 나왔던 사람들은 모두 땅에 엎드렸어요. 그때쯤 차량 뒤쪽에서 사격이 시작됐어요. 이라크인들은 어디서 총알이 날아오는지 파악한 다음 즉각 응사했죠. 그러나 총격이 시작된 지점을 알아냈을 무렵엔 이미 총격이 멈췄죠.
미군이 무기를 발사하면 반드시 발포 이유를 조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총을 못 쏘지는 않지만 최소한 무차별 사격을 막는 효과는 있죠. 우리는 목표물을 확실하게 식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이라크인들과 함께 근무하는 데 대찬성이죠. 이 친구들은 자기 마음대로 갈기거든요. 우린 그것을 “이라크 죽음의 꽃”이라 부르죠. 총알이 한 방 날아오면 전 부대원이 사방에 대고 쏴대요. 같이 있는 미군 부대가 그만 쏘라고 말할 때까지요. 전 그래도 상관없어요.

4월 23일 친구 피터에게 다시 메일을 보낼 때 그의 기분은 조금 나빠졌다.

이라크에서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나는지는 몰라도 여기는 그런 일 없다. 좋은 점이라면 여기선 바그다드처럼 종파분쟁이 없다는 거지. 달리 말하면, 저항세력이 민간인을 상대로 싸우지는 않아. 민간인이 얼씬대지 않도록 미리 알려주는 경고신호도 있다고.
석 달간 복무 경험으로 말하자면(순전히 히트 지역에서 본 모습을 토대로) 이 전쟁은 쓸데없는 짓이야. 이라크 병사들도 우리가 떠나면 자기들도 그만둔다고 말할 정도야. 미군이 자기네를 보살펴 준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신뢰하지만 자기네 정부나 국방부는 신뢰하지 않아. 특히 자기네 장교들은 신뢰하지 않지. 웃기는 것은 가끔은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고. 어쨌든 이곳 날씨는 점점 더워진다. 늘 바람이 심하고 파리가 귀찮아 죽겠어.

세커는 하디타와 함다니아의 학살사건 보도에 격렬하게 반응했다. 6월 22일 아버지에게 다음 메일을 보냈다.

해병대원들이 살인혐의를 받는 두 건의 보도를 물론 보셨겠죠.
그 친구들이 불쌍해요. 우리나라가 이런 궁지에 빠지다니 부시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그 해병대 젊은이들을 살인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생각을 고쳐야 해요. 전쟁에서는 아주 평범한 청년들도 법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법입니다. 생존의 상황이죠. 전쟁의 추한 작은 비밀들, “위대한 세대”가 독일과 일본인 병사와 민간인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려면 잔혹해져야 합니다. 셔먼 장군처럼 바다를 향해 행군하면서 조지아를 폐허로 만들어야죠.

같은 날, 세커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버지,
먼저 보낸 e-메일을 읽고 제가 그 해병대원들의 행동을 용인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유죄로 판결되면 책임지고 벌을 받아야죠. 제 말은 이것이야말로 전쟁의 현실이라는 점이에요. 전쟁은 평범한 젊은이를 그렇게 만들어놔요. 그것이 전쟁의 비극이죠. 사람들은 해병대를 욕하고 그 젊은이들을 나쁜 놈으로 만드는 데만 열을 올리죠. 그들이 불쌍해요. 인생이 망가졌잖아요. 한번도 그런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판단 내린 자신들의 행위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어요.

여름이 끝나 가면서 그의 좌절감은 더욱 깊어진다. 7월 23일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모두들 안녕,
내일이면 6개월이 된다네. 이제 6개월만 있으면 된다! 만사 이상 없고 주기적으로 돌아가. 저항세력이 병력을 규합해 정비하는 주기에 따라 다른 때보다 바쁜 주도 있고.
6개월 동안 배운 최대의 교훈은 이라크 문화로는 서구식 군대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지. 아랍식 군대란… 우리 병사들 입장에선 끔찍해. 부하를 때리는 장교들, 부하들 물품을 훔치는 장교와 고참들, 자기는 계급을 이용해 대놓고 식량과 생필품을 챙기면서 부하들은 없이 지내게 하는….
이곳에는 무단외출을 하는 이라크 병사가 많아. 어제 라마디에서 식품 보급차가 왔는데 물량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더군. 신병들이 왔지만 훈련이 수준 이하이고, 월급이나 받으려고 온 작자들이라는 티가 한눈에 보여.
이 정도야. 다들 잘 지내기를 바란다. 이곳 날씨는 좀 쌀쌀해졌어. 오늘 아침엔 43도밖에 안 됐거든. 몸조심하고, 나중에 이야기하자.
로버트

그래도 이라크군의 새 장교들이 도착하고, 세커는 그들이 근무하는 모습을 본 다음 기분이 좋아졌다. 7월 25일 아버지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라크인들의 좋은 점을 말하자면, 신임 대대장과 참모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잘하네요. 이라크군에도 전문가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에요. 오늘 한 이라크군 병사가 검문소에서 어떤 여인의 장신구를 훔쳤어요. 그 사실이 알려지자 곧 용의자가 밝혀졌고, 참모는 즉각 수사를 했죠. 바로 그날 그 병사를 캠프 히트의 교도소에 수감했고(지금 그곳에 갇혀 있어요), 일주일 후 알알사드로 데려가 해고할 예정입니다.
과정이 너무 길군요. 어쩌면 지금으로부터 20년 뒤 제가 이라크의 개혁을 도왔다며 뿌듯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기분이 아닙니다. 그저 살아서 돌아가고 싶을 뿐이죠. 이라크 전쟁 그 자체는 정당했지만 그 수행방식이, 부시·럼즈펠드·체니는 하나도 자랑스러울 게 없어요.
그래도 여전히 이곳에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여기 있었다고 말할 수 있죠. 20년 뒤에는 그 사실만이 소중할 겁니다. 제 임무를 다했고(비록 그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았겠지만)….
내일로 100번째 호송을 책임지게 됩니다. 이 일이 재미있어요. 전쟁에서 배운 교훈 하나는 우리가 쓸데없는 일로 걱정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참 많다는 점이죠. 그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로버트 올림

여름이 끝난 뒤 세커는 이라크군 병사들을 데리고 가가호호 저항세력을 색출하는 임무를 맡았다. 9월 30일 아버지에게 보낸 메일에서 그 일을 묘사했다.

이라크군과 함께 차단-수색작업을 했어요. 도시의 한 블록을 차단한 다음 소규모 병력으로 나눠 가가호호 수색하죠. 처음에는 노크를 했지만 나중엔 문이나 대문을 발로 차야 했어요. 어떤 집에선 자물쇠를 총으로 부쉈죠. 데리고 간 이라크 병사들이 일을 잘했어요. 이라크인 마탄과 통역병 조가 있었는데 둘 다 훌륭한 병사죠. 23시와 05시 사이에 수색을 했으니까 자는 사람들을 거칠게 깨운 셈이죠. 이성을 잃는 사람도 있고 차분한 사람도 있으나 위협이 되는 사람은 없었어요. 저격수의 총알이 날아온 적도 있지만 지속되지는 않았고요. 일부 이라크인의 가옥 내부구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놀랐답니다. 제 생각과는 전혀 달랐어요.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특히 대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고 사격준비를 한 채 돌격해 현관문을 두드리자 어떤 노인이 나올 때… 여기 와서 한 일 중 가장 재미없는 일이었어요. 미국인이 남의 집에 들어가 주인을 신문하는 일은 이상하게 느껴져요. 게다가 그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가둬둘 권한까지 있다니. 이런 게 계엄령이겠죠.

그의 마지막 e-메일은 일주일 후 도착했다.

발신: 로버트 세커
일시: 2006년 10월 6일 금요일, 오후 3시56분
수신: 피에르 세커
제목: 안녕하세요
아버지,
어떻게 지내세요? 11월 1일까지는 시내, 펌 기지 1에서 근무할 거예요. 그래서 e-메일을 자주 열어보지 못하겠네요. 며칠에 한 번씩 캠프로 돌아가 샤워와 세탁을 할 생각인데 그때 메일을 점검하죠. 시내 전역에서 소탕작전이 계속돼요. 낮에는 종일 자고 밤이 되면 작전을 나가죠(수색과 기습). 캠프에서 지내기보다는 훨씬 재미있어요. 새어머니 루시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곧 다시 연락할게요.
로버트 올림

세커 대위는 이틀 뒤 히트에서 순찰을 나갔다가 저격수의 총을 맞고 죽었다. “이곳에는 온갖 난관이 있다”고 해병대 대변인 브라이언 세일라스 중령은 뉴스위크에 말했다. “세커 대위와 그 휘하의 해병대원들은 뜨거운 열정으로 그 난관들을 극복하고 헌신적으로 자신을 희생시켜 복무했다. 유가족을 생각하며 기도를 올린다.”

With LEE HUDSON TESLIK and
SARAH CHILDRESS in New York

DAN EPHRONCHRISTIAN CARYL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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