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미래 계획할 수 있다" 접종완료 81% 싱가포르식 '위드 코로나'

중앙일보

입력 2021.09.07 16:00

업데이트 2021.09.07 16:10

싱가포르에 17년째 거주 중인 이영상(50·컨설팅 회사 대표)씨는 지난 금요일 오후 10시 30분까지 지인과 식당에서 식사하며 회포를 풀었다. 다음 날 그가 찾은 카페는 오후 10시까지 2~5명 무리들로 북적였다.

요즘 그는 거의 매일 저녁 모임이 있다. 싱가포르 당국이 지난달 19일부터 식사 가능 인원을 백신 접종자의 경우 기존 2명에서 5명까지 늘리는 등 방역을 완화하면서다. 이른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준비 단계다. 싱가포르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율은 81%(싱가포르 보건부 5일 집계 기준). 이씨 역시 지난 4월 화이자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지난 3일 싱가포르 클라크 퀘이의 거리 모습. 늦은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지난달 19일 방역 완화 이후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식당과 카페는 만석이라고 한다.[교민 이영상 제공]

지난 3일 싱가포르 클라크 퀘이의 거리 모습. 늦은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지난달 19일 방역 완화 이후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식당과 카페는 만석이라고 한다.[교민 이영상 제공]

싱가포르 한인회 부회장이기도 한 이씨는 지난 4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방역 완화 이후 식당과 카페에선 빈자리를 찾기 힘들고, 주말엔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싱가포르는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식당·술집 등에서 술 판매만 오후 10시 30분 이후 금지할 뿐, 별도의 영업시간 제한은 두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최초로 지난 6월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싱가포르는 지난달 6일 이를 실행에 옮기는 4단계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에 따라 싱가포르는 지난달 19일부터 방역 지침을 서서히 완화하는 '준비 단계'에 돌입했고, 앞으로 두 개의 '전환 단계'를 거쳐 '뉴 노멀(New normal)'에 이르게 된다.

싱가포르 교민 이영상씨가 지인과 함께 지난 3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이날 이 식당은 자리가 다 차서 빈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교민 이영상 제공]

싱가포르 교민 이영상씨가 지인과 함께 지난 3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이날 이 식당은 자리가 다 차서 빈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교민 이영상 제공]

'뉴 노멀' 단계에선 코로나19를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전환, 확진자 수 집계를 중단하고 독감처럼 위·중증 환자만 관리하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일상을 회복할 방침이다. 로이터통신은 "여러 나라들이 코로나19와 함께 살기 위한 준비를 하려고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싱가포르는 그것(위드 코로나)의 의미를 가장 먼저 보여줄 수 있다"고 평했다.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거나, 검토하는 나라는 지금까지 싱가포르를 포함해 10여 개국이다. 최근 태국·덴마크·아일랜드·호주 등도 잇따라 이같은 방침 전환을 예고했다. 오랜 거리 두기로 인한 피로감과 경제 위기,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통한 위·중증과 사망자 감소 기대 등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싱가포르 교수가 인터뷰서 밝힌 '위드 코로나'의 개념은 

싱가포르국립대의 데일 피셔 전염병학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풍토병(엔데믹)이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상태를 위드 코로나라고 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그는 "많은 규제들이 해제되고, 급작스럽게 방역 규제를 다시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확진자와 중증 환자의 급증 없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시점’을 위드 코로나로 본다"고 답했다.

‘위드 코로나’ 선언했거나 검토하는 주요 국가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위드 코로나’ 선언했거나 검토하는 주요 국가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는 이어 “그런 시점에선 무증상이나 경미한 증상의 환자들은 있어도, 중증 환자는 백신 미접종자와 면역 체계가 약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드물게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셔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글로벌 발병 대응 네트워크 의장으로,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 우한을 지난해 2월 방문 조사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지난달 19일부터 공공시설에서 의무 체온 측정도 중단했고, 직장에서 직원의 50%까지는 사무실 출근을 할 수 있게 했다. 공연, 스포츠 경기 관람 인원은 백신 접종 자에 한해 기존 5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렸다.

방역 완화 이후인 이달 3~5일 하루 평균 감염자가 200명을 넘었지만, 방역 조치를 강화하지 않고 있다. 하루 감염자가 100명만 넘어도 봉쇄하던 과거와 달리, 코로나19와 공존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싱가포르인들과 교민들은 대체로 일상 복귀 방침을 반기고 있다"며 “무엇보다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 점을 가장 좋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시내 전경. [교민 이영상 제공]

싱가포르 시내 전경. [교민 이영상 제공]

접종 완료 81% 싱가포르, 화이자·모더나 중 선택 가능   

‘위드 코로나로 전환할 때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는 물음에 피셔 교수는 "매우 높은 백신 접종률"을 꼽았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백신 접종의 기회가 있어야 하고, 백신 접종률이 매우 높아야 전환이 가능하다"며 "접종률이 높은 싱가포르조차 규제를 매우 신중하게 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싱가포르 거리 모습. [교민 이영상 제공]

지난 4일 싱가포르 거리 모습. [교민 이영상 제공]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변이 바이러스 확산 등을 고려할 때 성인의 80%가 아닌, 전 인구의 80%가 백신을 맞아야 방침 전환을 추진할 수 있다고 본다"며 "치명률과 사망자 수도 더 감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선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중 선택해 예약 없이 접종받을 수 있다. 지난해 4월부터 당국이 부지런히 백신을 넉넉히 확보한 결과다. 이달 말부턴 60세 이상에 부스터 샷(3차 접종)도 놓는다고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전했다.

싱가포르선 치명률 독감보다 낮아, "서두르지 않는다" 

국제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의 4일 집계 기준 싱가포르의 코로나19 치명률은 0.08%로, 한국의 치명률(0.89%)은 물론이고, 독감 치명률(0.1%)보다도 낮다.

백신 접종 증명 앱에 반응하는 블루투스. 싱가포르에선 카페, 식당 등에 입장하기 전 앱을 통해 백신 접종을 인증해야 한다. [교민 이영상 제공]

백신 접종 증명 앱에 반응하는 블루투스. 싱가포르에선 카페, 식당 등에 입장하기 전 앱을 통해 백신 접종을 인증해야 한다. [교민 이영상 제공]

싱가포르는 위드 코로나 로드맵의 한 단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경우 그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며 서두르지 않고 있다. 옹 예 쿵 싱가포르 보건부 장관은 "모든 제약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이 아닌, 단계별 접근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싱가포르는 현재 마스크 의무 착용은 유지하고, 스마트폰 앱이나 토큰(목걸이 형태의 출입증)을 활용해 식당 등 출입 시 백신 접종을 증명하도록 하고 있다.

김우주 교수는 "3~5단계의 로드맵 시나리오를 3~4개가량 정교하게 만들어 변수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며 조급하지 않게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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