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쓰면 학교 갈 수 있다더니…탈레반 "눈 빼고 다 가려!"

중앙일보

입력 2021.09.06 13:00

업데이트 2021.09.06 13:42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재장악 이후 여성의 복장에 관한 첫 공식 규정을 발표했다. 앞서 탈레반이 과거 강압 통치와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것과 달리 여학생들은 눈 주위를 제외하고는 얼굴을 다 가리는 니캅을 착용하게 됐다고 5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이 전했다.

실생활 속 이슬람 여성 전통의상.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실생활 속 이슬람 여성 전통의상.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에 따르면 전날 탈레반 교육당국은 아프간 내 여학생들의 복장과 학교 내 행동 지침 등이 담긴 공식 문서를 발표했다. 우선 적용 대상은 지난 2001년 탈레반이 정권에서 축출된 이후 급증한 사립대 학생들이다.

이들은 6일 등교부터 옷 위에 두르는 긴 망토 모양의 천인 아바야와 함께 눈을 제외한 얼굴 전부를 가리는 니캅을 착용해야 한다.

수업도 성별에 따라 나뉘어 진행된다. 남성과 여성은 다른 교실을 사용해야 하며, 상황의 여의치 않을 경우 커튼을 쳐 공간을 구분해야 한다. 수업도 동성 교원에게만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탈레반 교육당국은 “대학은 여성 교원 고용이 불가능하다면 행동 기록이 좋은 남성 노인 교사를 고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슬람 여성 전통의상.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슬람 여성 전통의상.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또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5분 일찍 수업을 마쳐 학교를 빠져나가야 한다. 하교 시간이 겹칠 경우엔 남학생들이 모두 건물을 떠날 때까지 지정된 대기실에서 머물러야 한다. 이용하는 출입구도 남녀가 구분된다.

이번 조치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AFP 통신과 인터뷰에서 “여학생들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한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여성 강사 부족 등으로 실제 계획 실현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3일(현지시간)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시위하는 여성들. [로이터=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시위하는 여성들.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지난달 17일 수하일 샤힌 대변인은 탈레반의 수도 카불 점령 후 첫 기자회견에서 “여성들이 부르카(전신을 가리고 눈 부위까지 망사로 덮는 형태) 대신 얼굴과 머리카락만 가리는 히잡을 착용하는 것도 허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교육당국의 발표는 앞선 샤힌 대변인의 공언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탈레반 축출 후 지난 20년간 아프간에선 여성의 교육 관련 지표가 빠르게 개선됐다. 1999년 여성의 중고등학교 등록 건수는 0건이었지만, 2003년에는 240만 명의 여성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도 급격히 상승했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돌아온 탈레반 치하에서 교육 받을 권리, 일할 권리를 잃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탈레반 정치국 대변인 수하일 샤힌. [로이터=뉴스1]

탈레반 정치국 대변인 수하일 샤힌. [로이터=뉴스1]

탈레반은 과거 통치기(1996~2001년) 당시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앞세워 여성의 교육권을 박탈하고, 남성 보호자가 있을 때만 부르카를 착용한 상태에서 지정된 장소로 외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복장 규정에 대해 인도계 미국 소설가인 사미나 알리는 ‘무슬림 여성의 히잡에 대해 코란에는 실제로 뭐라고 쓰여 있는가?’라는 지식공유 플랫폼인 테드 강연에서 “히잡의 본래 뜻은 ‘장막’, ‘구분’이라는 의미일 뿐 여성의 의복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었다”며 “이슬람교의 근본은 여성 억압이나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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