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또 대지진 덮친 아이티…구호금이 제대로 쓰이려면

중앙일보

입력 2021.09.06 08:00

업데이트 2021.09.06 14:25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48)  

2010년 1월 12일,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일어난 진도 7.2규모의 지진으로 2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4월에 컴패션 직원들과 함께 아이티로 들어가 지나가면서 본 대통령궁. 사람들 표정에서 당시의 긴박감과 비참함은 어느 정도 가셨지만, 대통령 궁은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무너진 채였다. [사진 허호]

2010년 1월 12일,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일어난 진도 7.2규모의 지진으로 2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4월에 컴패션 직원들과 함께 아이티로 들어가 지나가면서 본 대통령궁. 사람들 표정에서 당시의 긴박감과 비참함은 어느 정도 가셨지만, 대통령 궁은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무너진 채였다. [사진 허호]

진도 7.2규모의 지진이 아이티를 덮쳤습니다. 저는 2010년에 있었던 아이티 대지진 관련 오래된 기사를 어쩌다 우연히 다시 읽게 된 줄 알았습니다. 얄궂게도 리히터 규모의 숫자마저 같았으니까요. 2021년 8월 14일이라는 날짜와 남서부 지역이라는 당시와 다른 장소임을 알게 되자, 아이티에 거대한 재해가 또 닥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독한 농담 같았습니다.

2010년 대지진은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있었습니다.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어서 그만큼 피해도 어마어마했지요. 한국 컴패션은 바로 들어가 그 현장을 보고 싶어했지만 국제 컴패션에서 어린이 구조와 치안의 위험성 때문에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3개월이 지나서야 직원들과 함께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진이 난 현장은 치울 수 없는 여력이 없어서인지 거리는 무너진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그 안에서의 복구 노력까지 제가 알 수 없었기에, 보이는 모습 자체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치울 도구나 장비, 이런 것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 개월이 지났지만 무너진 채 복구할 아무런 여력이 없어 보이는 아이티 대통령 궁 앞을 지나고 있자니, 띄엄띄엄 앉거나 누워 자거나 하는 하릴없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지독하리 만치 표정이 없었습니다.

폭싹 내려 앉은 잔해더미 위에 복권을 파는 사람이 가판대를 열었다. 하필 저 위험한 곳에 가게를 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간판과 차양까지 있는 가판대를 보고 있자니, 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어도 삶은 지속된다라든지, 가짜 희망이라도 사고 팔아야 이 무너진 곳에서 버티며 살아갈 수 있겠다는 그런 메시지처럼 읽혀졌다.

폭싹 내려 앉은 잔해더미 위에 복권을 파는 사람이 가판대를 열었다. 하필 저 위험한 곳에 가게를 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간판과 차양까지 있는 가판대를 보고 있자니, 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어도 삶은 지속된다라든지, 가짜 희망이라도 사고 팔아야 이 무너진 곳에서 버티며 살아갈 수 있겠다는 그런 메시지처럼 읽혀졌다.

2010년 대지진을 계기로 2010년에 한 번, 2012년에 또 한 번 방문한 아이티는 원주민이 몰살했을 정도의 비극적인 식민지 시대와 이어진 수탈의 역사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수 세기 대외 원조에 의지하고 있었지요. 제가 본 전체적인 인상 역시 스스로 뭔가 나라를 바로 세워보겠다는 의지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무너진 건물을 일으켜 세우는 복구의 활기가 거리에서 전혀 읽히지 않았습니다. 한 나라의 상징인 대통령궁이 지진으로 무너져 있고, 몇 개월 후 재방문했을 때 무너진 그대로 있다는 자체가 무너진 희망 같은 상징으로 읽히는 곳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종종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원조 받은 구호물자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쩐지 그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는 듯한 모습에서 오히려 오래된 낙담 같은 게 전해져 왔습니다.

2010년, 방문한 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물자를 배급하고 서류에 기록을 남기는 모습. 어린이와 가족들의 구조와 구호 물자의 배급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2010년, 방문한 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물자를 배급하고 서류에 기록을 남기는 모습. 어린이와 가족들의 구조와 구호 물자의 배급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아이티 지진은 전 세계가 주목한 재해였습니다. 각처에서 구호물자가 아이티로 전달이 되었고, 구호물자의 전달은 전쟁과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고 들었습니다. 조직폭력단까지 끼어든 약탈 사건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가장 구호물자가 필요한 약자가 오히려 소외되는 모습을 기사로 접했습니다. 우리 역시 삼엄한 보호 속에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고 안전하게 컴패션 어린이센터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정말 인상적인 것은 그곳에서 구호품을 나누어 주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린이 한명, 한명을 양육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돕고 있다 보니까 컴패션은 어린이 이름과 상황에 관한 자료가 잘 정리돼 있었고, 이미 어느 집이 어느 정도 피해가 있는지 파악을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 가정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서류작업이 되어 있어 적재적소에 필요한 구호품을 주고 있더라고요.

후원자의 한 명으로서, 나의 선의가 어떻게 사용되고 전달되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지사지요. 아이들이 물자를 배급 받는 것만 봐도 좋을 텐데, 이것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을 보니,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몰랐습니다. 이 시스템은 이와 같은 혼란과 혼동의 시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필요한 구호물자들이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후원자의 한 사람에게 굉장히 안심되는 장면이다.

필요한 구호물자들이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후원자의 한 사람에게 굉장히 안심되는 장면이다.

한국으로 들어와 몇 개월 후, 컴패션으로부터 아이티 대지진 관련 모금을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지진의 심각성과 피해의 엄청난 규모가 기사와 뉴스로 워낙 잘 알려져 있어 재해 기금을 충분히 더 모일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바이지만, 당시 어마어마한 구호금이 전 세계에서 아이티로 보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부의 지원금에 대해 어떻게 쓰여졌는지 왈가왈부하는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을 들었습니다.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흐름이 보이지 않는 법인가 봅니다.

빈민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쫓아다니며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 안타까운 모습에, 주머니를 열게 됩니다. 그 마음 자체는 선하고 나무랄 것은 없지요. 하지만 도움이 안 되는 동정으로 머물 때가 있습니다. 일회성이 아니라 희망을 갖게 하고 비전과 꿈을 갖게 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도 도움을 주는 후원자에게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대지진이 아이티를 다시 덮쳤습니다. 저는 예전에 만났던, 몇 번이고 일어섰던 아이티컴패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조차도 거듭되는 재앙에 혼란스럽고 지치고 낙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안에 있는 작고 어린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다시 일어설 것이고, 우리는 또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체계적이고 지혜로운 방법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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