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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언론, 그리고 소셜미디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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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국제팀장

강혜란 국제팀장

걸프전이 CNN을, 아프가니스탄전이 알자지라 방송을 띄웠다면 20년에 걸친 아프간전의 대미는 소셜미디어가 장식했다. 뉴스 카메라가 포착 못 한 날것의 장면들이 실시간 올라왔다. 카불공항을 뜨는 수송기 바퀴에 매달렸다 떨어지는 아프간인들은 ‘참상’이라는 말로 부족했다. 아이만이라도 살리려 철조망 너머 군인들에게 포대기째 던지는 부모들은 어땠나. 미군 철수 직전 17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와 이에 대한 미국의 보복 또한 소셜미디어로 여과 없이 중계됐다.

이게 가능했던 건 미군 주둔 20년 동안 아프간이 괄목할 만한 ‘미디어 성장’을 해서다. 선진국 기준엔 턱없이 못 미치지만, 아프간 인구 약 3900만 명 중 69%가 휴대전화를 쓰고 22%는 인터넷도 사용 중이다. 열 명 중 한 명 이상(440만명)이 소셜미디어도 활용한다. TV에 접근 가능한 가구는 60%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아프간의 CNN이라 할, 24시간 뉴스채널 톨로뉴스가 나왔다. 카불 함락 직후, 히잡을 쓴 여성 앵커가 탈레반 측 관료와 대면 인터뷰를 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뉴스였다.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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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미디어 파워를 탈레반이 모를 리 없다. 스마트폰을 쥐고 귀환한 ‘탈레반 2.0’은 카불 점령 이튿날 대규모 기자회견을 자처했을 정도로 미디어 친화적이다. 미군 철수 직후엔 트위터로 “완전한 독립을 얻었다”고 자축했다. 이전 정부를 친미괴뢰정권으로, 자신들을 자주독립정부로 포장하는 프레임이다. 이 정도 ‘중독’이면 집권 1기 때처럼 인터넷·TV를 전면 금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톨로뉴스 소유주 또한 탈레반 측이 계속 운영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반면 기자들은 달아나고 있다. 탈레반이 진격해온 수개월 새 수백 명의 기자가 은신하거나 망명했다.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최근 몇 주 동안 약 100개 언론 매체가 운영을 중단했다고 한다. 앞서 탈레반을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한 여성 앵커 역시 “수백만 명의 사람들처럼 나도 탈레반이 두려웠다”며 출국한 게 알려졌다. 탈레반은 첫 회견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했지만 믿는 사람은 없다. 국내외 언론인들을 습격·살해했다는 보도도 계속 나온다.

“오늘날의 탈레반은 규모와 속도로 선전하는 방법을 안다. 반면 아프간 시민들도 잔인해지는 통치를 폭로하려 한다”고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은 지적한다. TV 앞에 온건한 얼굴,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쓰는 쇼맨십에 혹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자신들의 ‘저항의 목소리’를 담지 않았다고 방송사에 테러했던 탈레반은 집권 이후 어떤 모습일까. 진짜 얼굴은 언론과 소셜미디어 통제 여부가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