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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사주’와 언론 징벌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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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대선 국면 희소식이 드문 더불어민주당은 요즘 흥분의 도가니다. 뚝 떨어진 ‘고발 사주 의혹’이 잘하면 진영의 ‘주적’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뭉개줄 거란 기대가 퍼지고 있다. 정황 증거가 보도된 상태에서 송영길 대표는 이미 사실로 단정했다. 지난 6일 페이스북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오른팔인 손준성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이 김웅 총선 후보와 결탁했다”고 썼다.

만약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 징벌이 실현된 세상이라면 어땠을까. 손 검사가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나 해당 기자를 상대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가정해 보자. 일단 손 검사는 청구할 자격이 있다. 민주당이 마지못해 도입한, ‘청구자격 제한’에 걸리는 대검 검사급 검사(통상 검사장급)에 해당되지 않는다. 급히 끼워 넣은 청구대상 제한에 걸릴 가능성도 희박하다. 공익신고자보호법과 부정청탁방지법에 열거된 법령 위반 행위 관련 보도는 징벌의 대상이 아니게 됐지만  ‘총선 직전 고발 사주’는 이 목록에 없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은 선거법 등이 문제가 된다.

‘언론재갈법’ 도입 책임자 송영길 민주당 대표(왼쪽)는 지난 6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고발 사주 의혹’의 “몸통”이라 불렀다. 임현동 기자

‘언론재갈법’ 도입 책임자 송영길 민주당 대표(왼쪽)는 지난 6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고발 사주 의혹’의 “몸통”이라 불렀다. 임현동 기자

손 검사가 자신과 김 의원의 텔레그램 대화가 “고발 사주를 위한 게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판사가 ‘허위·조작 보도’라는 심증을 갖게 하는데 성공했다면 ‘언론재갈법’의 정의 규정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보도하는 것”이라는 동어반복이 ‘허위·조작 보도’의 정의여서 잣대가 고무줄이 될 여지가 크다. 그렇게 된다면 고의 또는 중과실은 입증할 필요도 없다. 보도가 시리즈물이라 ‘반복적 보도’라는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에 딱 걸린다. 원고 승소한다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은 손 검사가 받는 배상액은 징벌의 최대치(손해액의 5배)에 가까울 것이다. (징벌적 손배제가 없는 상태에서도 최근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한 언론사를 상대로 7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신생 인터넷 매체가 수억원짜리 배상 판결을 받는다면, 또 다른 의혹 정황을 입수했을 때 다시 나설 수 있을까. 기자 개인이 타깃이라면…. 소송이 승패를 예측하기 어렵게 흐른다면 뉴스버스가 배상을 피할 방법은 외길이다. 제보자가 얼마나 신뢰도 높은 사람인지 완전히 노출하고 제보의 앞뒤 맥락을 모두 제출해 ‘고발 사주’라고 믿을만한 정황이 충분했다고 판사를 설득하는 길이다. 재판은 공개된다. 그렇게 배상을 면한 언론사나 기자를 다시 예민한 정보를 들고 찾는 이가 있을까.

민주당이 언론 징벌로 꿈꾸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다. 사실을 밝히려는 시도에 앞서 자기 검열의 늪에 빠져야 하는 세상, 정황조차 없이 떠드는 유튜버 중 하나를 교조 삼아 자위할 수밖에 없는 세상. 그 세상의 도래까지 20일도 남지 않았다. 그 전에 하나 묻고 싶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위인가. 그 사이 어느 구간이 ‘조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