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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장관’의 언론통제관이 빚은 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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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사회1팀장

정효식 사회1팀장

또 한장의 사진이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오후 5시쯤 인천공항 입국심사대 앞에서 아프가니스탄인 조력자 가족인 어린 자매에게 인형을 안겨준 뒤 환영 인사를 하는 모습이다. 박 장관은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입니다.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튿날인 27일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빗길에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 든 직원 앞에서 브리핑하는 ‘우산 차관’ 논란의 전편이다.

박 장관의 인형 전달식 직전에는 법무부 직원들과 외교부 영상·사진 공동취재단 10여명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장관님이 인형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하니 이동해 취재해달라”는 법무부 요청을 취재진이 “당장 아프간인들이 입국 게이트에 나오는 모습이 더 중요하니 지금 이동하기 어렵다”고 거부하면서다. 하지만 “공항 내부 취재를 우리가 허가해줬는데 이런 식이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법무부 엄포에 결국 일부 기자들은 이동해 박 장관의 인형 전달식을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지난달 26일 인천공항 인형 전달식.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지난달 26일 인천공항 인형 전달식. [연합뉴스]

법무부는 공항 등 출입국 관리를 전담하는 힘센 부처다. 법무부는 전날 오전까지만 해도 “아프간 조력자 입국은 외교부와 국방부가 전담하고, 입국 후 생활지원은 인재개발원이 소속된 행정안전부와 보건복지부 등 소관”이라며 물러서 있었다. 그런데 이날 오후 ‘법무부 장관 특별기여자 입국 환영 현장 브리핑’ 일정을 긴급 공지한 뒤 갑자기 주무부처로 격상했다. 법무부가 실제 아프간인들의 입국 후 정착 지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특별기여자에 대해 장기체류(F-2 비자) 자격을 부여하는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정 작업뿐이다.

이튿날 강성국 차관의 진천 인재개발원 우산 브리핑 모습. [연합뉴스]

이튿날 강성국 차관의 진천 인재개발원 우산 브리핑 모습. [연합뉴스]

아프간 조력자 및 가족 390명을 받아들인 건 분명 국가적 사건이다. 국제 인권 옹호와 파병국의 책임을 다한 외교안보 차원의 국익뿐 아니라 1950년 한국전쟁 난민국가의 변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아프간인들이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역사적 순간,국가적 사건이 코미디로 전락해버렸다. 정부 대표 환영 사절을 자처한 법무부 수장들의 ‘인형 장관’ ‘우산 차관’ 논란이 취재 통제, 인권 침해 논란을 빚었기 때문이다. 정작 아프간 현지 카불 자폭테러 직전 위험을 무릅쓰고 이들을 탈출시킨 ‘미라클 작전’의 주역인 외교관과 군인들은 홍보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도 못했다. 이들은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격리됐다.

이번 일은 준비가 부족했던 단순한 정부 홍보 실패 사례일까. 아니면 기자는 장관 행사나 열심히 취재하라거나 ‘금지된’ 권력 수사 보도 땐 취재원을 색출하고 내사해 처벌하겠다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을 만든 장관의 언론통제관이 빚은 참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