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양유업 매각 안갯속…홍원식의 변심인가, 한앤컴의 조급함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불가리스 사태’로 촉발된 남양유업 매각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개 속으로 접어들고 있다. 현 대주주이자 남양유업 매각 방침을 공개 선언했던 홍원식(71) 회장이 지분을 매각하기로 했던 계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홍 회장 측은 1일 법률대리인인 LKB파트너스를 통해 주식 매매 계약을 맺은 한앤컴퍼니(한앤코)측에 해제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홍 회장 측과 사모펀드인 한앤코는 지난 5월 홍 회장과 그 일가의 남양유업 보유 지분 53.08%를 3107억원에 매각하기로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지난달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를 77.8%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연구 결과는 동물의 '세포단계' 실험 결과를 과장해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이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이날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남양유업 매각과 회장 사임 의사를 밝혔다. 장진영 기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지난달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를 77.8%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연구 결과는 동물의 '세포단계' 실험 결과를 과장해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이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이날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남양유업 매각과 회장 사임 의사를 밝혔다. 장진영 기자

홍회장, "사모펀드가 새 주인처럼 행세" 

홍 회장 측은 이날 계약 해제의 이유로 부당한 사전 경영간섭과 비밀유지의무 위반, 신뢰 훼손 책임 등을 꼽았다. 그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계약해지 통보와 관련해) 당사자 간 합의가 끝난 이슈임에도 매수인(한앤코) 측이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것들은 인정할 수 없다면서 돌연 태도를 바꿨다”며 “주주총회를 연기한 것도 매수인이 적법한 절차도 지키지 않은 채 황급히 거래를 종결하려 하였기에 저로선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선친 때부터 57년을 소중히 일궈온 남양유업을 이렇게 쉬이 말을 바꾸는 부도덕한 사모펀드에 넘길 수 없다”고도 했다.

한앤코 "홍 회장이 말 바꾸다 계약 해제" 

한앤코는 즉각 반발했다. 한앤코는 이날 홍 회장이 한앤코와의 거래 무산 및 해제를 발표한 데 대해 "계약이 계속 유효하다"며 즉시 반박했다. 한앤코는 또 이날 홍 회장 측이 주장한 사전 합의된 사항에 대한 입장 번복, 비밀유지의무 위반, 불평등한 계약, 남양유업 주인 행세 및 부당한 경영 간섭 주장 등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앤코 측은 "당사가 말을 쉽게 바꿔서 부도덕하므로 임직원, 주주, 대리점, 낙농주, 소비자를 위해서 남양유업을 못 팔겠다"는 홍 회장의 비난에 대해서도 "과연 누가 말을 바꿔왔는지, 지금까지 그 모든 분의 한결같은 목소리가 무엇이었는지 숙고해 보시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매각가 둘러싼 논란도 계속돼  

사실 이번 거래는 처음부터 삐거덕거렸다. 홍 회장 측은 일단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홍 회장 본인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남양유업을 넘기는 계약을 체결해 놓고 지인들에게 후회스러워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왔다고 한다. 또 업계 관계자들은 “홍 회장의 두 아들 조차 한앤코에 지분 매각 사실을 계약 체결 이후 알았을 정도”라고 전했다. 사실 업계 일각에서 남양유업 지분 약 53%를 3107억원에 매각하는 걸 두고 헐값에 넘긴다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남양유업 매각 관련 일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남양유업 매각 관련 일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하지만 남양유업 매각가를 두고 헐값이라고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양측은 계약 체결 당시 주가(주당 43만9000원)의 약 1.87배(주당 82만원)를 매각가로 산정했다. 국내 투자은행(IB) 업계에서도 보통 주가의 약 45% 선을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되레 ”한앤코가 남양유업을 비싸게 샀다“는 시선도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홍 회장을 비롯한 남양유업 측이 남양이 주가로만 평가받을 수 없는 ‘알짜기업’이라고 보고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본사인 서울 강남의 1964빌딩을 비롯한 세종공장 등 보유 부동산 가치가 4000억원이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남양유업이 한창 잘 나가던 2013년에는 주가가 116만5000원(13년 4월 30일 종가)에 이른 적도 있다.

매각 둘러싼 소송전 장기화할 듯  

남양유업 매각을 둘러싼 양측의 시각차가 큰 만큼 대규모 소송전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높다. 당장 한앤코는 이미 지난달 23일 홍 회장 측에 주식매매 계약의 이행을 촉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홍 회장 측 역시 "계약을 해제할 수밖에 없게 만든 매수인에게 법적 책임을 엄중히 물어 다시는 이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이 없게끔 하겠다"며 소송전을 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법원은 일단 한앤코 측 요청을 받아들여 홍 회장 측이 보유한 남양유업 주식의 처분을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린 상태다. 남양유업과 한앤코가 이처럼 대규모 소송전을 예고하면서 남양유업 매각작업은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홍 회장은 본인이 내걸었던 ‘사퇴 약속’을 어기고 회장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아들까지 다시 경영에 복귀시켰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남양유업 본사. 지상 15층, 지하 4층으로 연면적은 1만5295.03㎡(4635평)에 이른다. 이병준 기자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남양유업 본사. 지상 15층, 지하 4층으로 연면적은 1만5295.03㎡(4635평)에 이른다. 이병준 기자

멍들어가는 남양유업…상반기 적자 350억원 

그사이 남양유업은 멍들어 가고 있다. 남양유업은 올 상반기 4705억원 매출에, 35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사업모델이 다소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경쟁사인 매일유업은 같은 기간 7563억원 매출에, 429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이에따라 홍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으로는 이번 위기 극복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불가리스 사태’ 직후 구성된 남양유업 비상대책위원회도 당시 홍 회장 등에게 소유와 경영 분리를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