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만 4000억인데…욱하다 "3100억" 부른 남양의 뒷수습

중앙일보

입력 2021.08.23 06:00

업데이트 2021.08.23 19:31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 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지난 4월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를 77.8%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연구 결과는 동물의 '세포단계' 실험 결과를 과장해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장진영 기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 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지난 4월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를 77.8%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연구 결과는 동물의 '세포단계' 실험 결과를 과장해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장진영 기자

지난 5월 '불가리스' 사태 직후 공개 선언했던 남양유업의 매각 방침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특히 홍원식(71) 회장이 경영권 이전을 위한 임시주총을 9월로 연기하고 새 법률 자문까지 선임하면서 매각 방침을 철회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온다. 하지만 22일 남양유업과 업계의 취재를 종합하면 남양유업 매각 방침에는 변화가 없지만 당초 설정한 매각가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남양유업의 최종 매각 일정도 당초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때 주가 116만원 넘던 알짜 기업
상반기 매출 4705억, 영업적자 350억

‘파는 건가, 마는 건가’ 

홍원식(71) 남양유업 회장은 지난 5월 불가리스 사태 직후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회사를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홍 회장은 본인과 일가가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 53.08%를 3107억여원에 한앤컴퍼니 측에 매각하기로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홍 회장은 지난 7월 30일 경영권 이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를 열기로 했다가 뚜렷한 이유 없이 6주 뒤인 9월 14일로 연기했다. 홍 회장은 또 지난 5월 불가리스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당시 회장직 사퇴를 선언했었지만, 지난 17일 공시된 남양유업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여전히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한앤컴퍼니는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임시주주총회를 연기했다”며 “법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대응 방안에 대한 검토가 불가피하다”고 반발했다. 그런데 홍 회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19일 LKB파트너스를 새 법률자문으로 선임하며 모종의 법적 대응 절차에 돌입했다. 한앤컴퍼니 측은 이를 두고 “매도인이 (회사를 매각하겠다는 것인지 안하겠다는 것인지) 의도를 모르겠다”며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남양유업의 본사인 1964빌딩. 서울 강남구에 한복판인 도산공원 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연면적 1만5295㎡(약 4627평)으로 지상 15층, 지하4층 규모다. 이병준 기자

남양유업의 본사인 1964빌딩. 서울 강남구에 한복판인 도산공원 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연면적 1만5295㎡(약 4627평)으로 지상 15층, 지하4층 규모다. 이병준 기자

사태를 바라보는 관련자들의 마음 속은 복잡하다. 서울 논현동 도산공원 사거리의 남양유업의 본사 앞에는 ‘노동자를 무시한 자본가의 일방적인 주식매각, 완벽한 고용안정으로 보상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남양유업 노조 측이 내건 것이다. 남양유업 내부에선 홍 회장의 오락가락 행보를 두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란 반응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한 관계자는 “3100억원에 남양유업을 매각한다면 헐값에 팔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며 “홍 회장 입장에서는 남양유업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회장이 고 홍두영 창업주의 장남으로서 1977년 남양유업 입사 이후 회사를 키워왔으니 애정도 남다르다는 것이다.

남양유업 부동산 가치만 4000억…IB업계 "주가 1.8배에 계약했는데…"

남양유업의 현재 주가를 놓고 보면 지분 약 53%를 3107억여원에 매각하는 걸 두고 헐값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한앤컴퍼니측이 인수하는 가격은 주식매매계약 체결일 당시 종가 기준(주당 43만9000원)의 1.8배(주당 82만원)에 해당한다. 더구나 남양유업은 최근 케케묵은 갑질 논란에 ‘불가리스 사태’ 까지 겹쳐 실적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올 상반기 남양유업은 4705억원 매출에, 35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 IB업계 관계자는 "지분 53.07%를 3107억원에 매각한다는 건 회사 가치를 약 6000억원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유 부동산 가치가 4000억원이 넘는다고 해도 인수가보다 훨씬 낮다"며 "한앤 쪽에서 당시 주가(주당 43만9000원)의 1.8배인 주당 82만원에 인수계약을 체결해 되레 고(高)평가 논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는 또 남양유업이 실적 수준을 넘는 알짜 기업이라는 평가도 공존한다. 우선 올 상반기 기준 남양유업은 현금 및 현금성자산만 847억원에 달한다. 본사인 1964빌딩을 비롯한 세종공장 등 보유 부동산 가치만 4000억원이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남양유업이 한참 잘나가던 2013년에는 주가가 116만5000원(13년 4월 30일 종가)에 이른 적도 있다.

남양유업 내부에서도 ‘홍 회장이 매각을 지나치게 서둘렀다’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홍 회장이 '욱' 하는 마음에 매각을 너무 서두른 것 같다”며 “매각 사실 자체를 홍 회장의 두 아들도 몰랐다고 할 정도”라고 전했다. 또 노조 등에서 홍 회장 일가에 대해 경영 악화의 책임을 묻고 있지만, 홍 회장이 남양유업을 이만큼 키워냈다는 점에 대해선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 사옥 앞에 걸려있는 현수막. 남양유업 매각으로 인해 이 회사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지 않을지 노심초사 하는 분위기다. 현수막은 남양유업 노조가 내걸었다. 이병준 기자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 사옥 앞에 걸려있는 현수막. 남양유업 매각으로 인해 이 회사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지 않을지 노심초사 하는 분위기다. 현수막은 남양유업 노조가 내걸었다. 이병준 기자

매각 판 자체가 깨지진 않을 듯 

홍 회장이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매각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일단 남양유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다. 실제 매각 결정이 알려지기 전인 지난 5월 7일 남양유업 직원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대주주(홍원식 회장)에게 소유와 경영 분리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사실상 "경영에서 물러나 달라"는 요구였다. 여기엔 ‘홍 회장 체제’로는 더는 어렵다는 판단이 녹아있다. 홍 회장도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매각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앤컴퍼니와 홍 회장 측이 각각 생각하는 남양유업의 현재 가치다. 홍 회장 측이 최근 새로운 법률 자문을 선임한 것도 기업 가치를 제대로 따져보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앤컴퍼니 측은 “매도자 측에서 매각 절차를 종료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보고 있다”며 “(당초 기대대로) 정상적인 절차가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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