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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국가와민족이 저격한다

"집값은 관료탓" 이재명 지사님, 대신 감옥갈 관료 찾습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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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민족 전직 공무원

"(부동산 문제 주범은) 관피아(관료+마피아) 때문이다. "

지난 25일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과의 토크콘서트에서 이재명 경기지사님이 하신 발언입니다. 지난 5일에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부동산으로 돈을 못 벌게 하라. 중산층용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부동산 감독원을 설치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관료들이) 안 하지 않았나”라며 “지시가 빨리 이행됐더라면 (부동산이) 이렇게까지 안 됐을 것”이라 평가했던 바로 그 내용 말입니다. 지사님이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인을 관료 탓으로 돌린 것이 벌써 여러 번입니다. 지난 5월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강조한 ‘부동산으로 돈 벌 수 없게 하겠다' ‘평생 주택 공급방안 강구’ ‘부동산 감독기구 설치’라는 말에 모든 답이 들어있음에도 해당 관료들이 신속하고 성실하게 이 미션을 수행했는지 의문”이라며 “집권 여당의 개혁 의제들이 관료의 저항과 사보타주에 번번이 좌절되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고, “관료들의 각성과 분발이 필요한 때”라고 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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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사님. 저는 부동산 정책 실패를 관료들의 저항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지사님의 지적을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관료의 저항 사례로 부동산 감독원과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과 관련한 지시의 불이행이라고 거론한 것을 보고는 허탈하기까지 했습니다.

관료 탓만 하는 여당 정치인들

이른바 ‘부동산 감독원’부터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한 ‘부동산시장 감독기구’가 지난해 설립되지 않은 것은 근본적으로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부동산감독원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이나 부동산거래 분석원의 설치를 규정한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 중 상임위원회 토론이 진행된 법률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지사님이 비판한 관료조직은 대통령 지시가 있은 지 한 달 뒤인 지난해 9월 2일 관계 장관회의에서 “부동산 시장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불법 행위를 포착 적발해 신속히 단속 처벌하는 상시 정부 조직을 만든다”라고 ‘부동산시장 감독기구’설치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관료들이 저항하여 대통령의 지시가 이행되지 않았다는 지사님의 주장이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중산층용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은 게 부동산 정책실패로 이어졌고 이것이 관료의 지시 불이행 때문이라는 주장은 더더욱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지난 8월 6일 ‘부동산 시장법 제정’ 국회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했다. 임현동 기자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지난 8월 6일 ‘부동산 시장법 제정’ 국회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했다. 임현동 기자

올해만 하더라도 청와대와 정부는 문재인 정부 들어 2020년까지 공공임대주택 43.7만호를 공급하는 등 양적으로 역대 최고 수준인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했다고 자찬하지 않았었나요. 한편에서는 충분한 공공임대주택이 공급되었다고 평가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여당 유력 대선주자가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충분하지 못했다’라고 부정하고 그 이유를 관료 탓으로 돌리는 발언은 도무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부동산으로 돈 벌 수 없게 하겠다’라는 지시를 관료가 불이행했다는 지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사님께서는 선출된 정치인이 지시하면 그것을 수행할 역할은 관료들에게 있다고 원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부동산으로 돈 벌 수 없게 하겠다’는 발언은 단순한 희망적 선언에 불과하지, 구체적인 정책 지시라고 볼 수조차 없습니다. 지사님의 지적은 그저 정책 실패의 책임을 관료에게 전가하고 정치인들은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행태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정치인은 투표로 선출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출된 정치인은 본인의 판단을 국민의 의사라고 말합니다. 관료들은 대체로 여기에 동의합니다. 선출된 정치인이 공약을 발전시켜 내놓은 정책을 국민의 의사라 믿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합니다. 관료가 나라의 주인이라 믿는 공무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탈원전 사태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의 의사를 관철하는 것이 국민의 뜻에 부합한다고 되뇌면서 절차에 어긋난 업무까지 추진했던 공무원들의 모습을요.

감옥살이는 공무원 몫 

객관적이어야 할 탈원전 경제성 평가까지 상부에서 정한 결과에 짜 맞췄던 결과는 담당 공무원들의 감옥살이였습니다. 2030세대 공무원들은 그 모습을 보며 법과 절차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을 다시 되뇌면서도 한편으로 정치권력의 무도함과 무책임함을 절감했습니다. 공무원에게 부당한 업무를 지시한 정치권력은 아직 아무 책임을 지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지사님. 정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공무원이 아니라 정치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동산가격 급등의 책임을 관료에게 돌리려는 듯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은 정책 방향성을 잘못 설정한 정치인에게 있습니다. 그것을 관료의 잘못이라 떠넘기고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관료의 저항 때문에 부동산 개혁에 실패했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주장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이재명 지사님은 법과 원칙과 관계없이 지사님이 하는 말을 무조건적으로 집행하고 그 책임까지 본인이 지는 공무원만을 ‘저항하지 않는 공무원’으로 보는지 알고 싶습니다. 어쩌면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개인적 일탈로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말해줄 공무원을 찾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지사님은 법의 처벌을 받지 않도록 말이죠. 만약 그런 공무원을 찾는 것이라면 세금이 아니라 지사님 개인 돈으로 고용했으면 합니다. 공무원은 지사님 1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존재이니 말입니다.

공무원은 국민 위한 존재 

부동산 감독원의 설치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는 관료가 있었다면 (저항이 있었는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공무원은 본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지나친 시장개입'이라는 공무원으로선 마땅히 검토할만한 반대 의견을 전달했을 뿐일 겁니다.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반대의견을 낸 공무원이 있었다면 그 공무원은 해당 정책의 현실성을 고민하고, 부동산 가격과 공공임대주택 공급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분석을 그저 전달했을 뿐일 것입니다.

자신이 담당한 업무영역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책대안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것은 공무원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입니다. 그 업무수행을 ‘저항’이라는 말로 폄훼하는 것은 진정 잘못된 인식이라 생각합니다.

구맹주산(狗猛酒酸·개가 사나울수록 술이 시큼해진다)이라는 사자성어를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고위직이 인기영합적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사납게 펼치면 뜻 있는 관료들은 생각을 접고 떠나버릴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