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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구 냄새""비싼 식초냐"...와인같지 않아 더 뜬 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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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인스타그램에서 내추럴와인 관련 게시물은 20만건에 달한다. 사진 빅라이츠

인스타그램에서 내추럴와인 관련 게시물은 20만건에 달한다. 사진 빅라이츠

'지금까지 내가 마신 와인은 자연적이지 않다는 소리인가?'
직장인 임모(38)씨는 최근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찾았다가 메뉴판을 보고 의아했다. 와인을 레드·화이트 또는 국가별이 아니라, 컨벤셔널(conventional)과 내추럴(natural)로 구분해 놓은 것이다. 그가 주로 마시던 와인은 모두 컨벤셔널 항목에 들어있었다.

[이럴 때, 와인낫?]

몇 년 전만해도 일부 ‘힙스터’(대중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를 좇는 비주류)의 전유물인 듯 했던 내추럴 와인이 어느새 주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내추럴 와인을 취급하는 와인샵과 와인바가 골목 상권을 중심으로 생기더니 이제는 대형마트에서도 내추럴 와인을 팔고 있다. 단기간 유행을 넘어 와인 산업의 패러다임까지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전통 농법·생산 방식 고집하는 ‘이단아’  

내추럴 와인은 1990년대 프랑스에서 와인의 대량생산과 산업화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등장했다. 사진 플리커

내추럴 와인은 1990년대 프랑스에서 와인의 대량생산과 산업화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등장했다. 사진 플리커

하지만 무엇이 내추럴 와인이냐를 놓고는 애호가들도 여전히 혼선을 겪는다. 모호한 정의 때문에 친환경 와인·유기농 와인·비건 와인 등과 혼용되지만, 엄밀히 말해 각각 다른 의미다.

내추럴 와인은 1990년대 프랑스에서 업계의 ‘이단아’처럼 등장했다. 와인 생산자인 동시에 과학자였던 쥘 쇼베는 “식물에 악영향을 미치며 토양의 건강을 해치는 현대 농업기술에서 탈피해 자연을 살리는 과거의 농법으로 땅을 지켜야 한다”며 와인의 대량생산과 산업화를 거스르는 전통적인 양조 방식을 제안했다.

친환경 와인의 종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친환경 와인의 종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프랑스 와인 전문가이자『내추럴 와인』의 저자 이자벨 르쥬롱에 따르면, 내추럴 와인은 ‘최소한 유기농법을 사용하는 포도밭에서, 병입 과정에서 소량의 아황산염을 넣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첨가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생산한 와인’이다. 일부는 아황산염을 아예 넣지 않기도 한다. 아황산염은 와인 운송 과정에서 보존력을 높이기 위한 방부제 역할을 하는 물질로, 전혀 사용하지 않을 경우 대량 생산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비싼 식초’ vs. ‘세상에 한 병뿐인 맛’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동네 슈퍼 '슈퍼스티치'에서도 내추럴 와인을 판매한다. 배정원 기자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동네 슈퍼 '슈퍼스티치'에서도 내추럴 와인을 판매한다. 배정원 기자

어디까지가 ‘내추럴’한 것인가에 대한 기준은 생산자마다 다르다. 내추럴 와인 제조업자 중에서도 “양조에서는 비개입주의를 지키되 포도를 재배할 때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유연한 입장이 있는가 하면, 포도밭에서부터 병입까지 철저하게 인공 첨가물을 쓰지 않는 ‘엄격한 자연주의’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소비자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꼬릿한 냄새와 시큼한 맛, 기존 와인과 다른 생소한 느낌에 “비싼 식초 아니냐” 혹은 “하수구 냄새가 난다”며 손사래를 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애호가들은 화학성분의 도움 없이 포도 자체의 효모균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병마다 다른 독특한 맛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같은 제품일지라도 보관 상태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는 “세상에 한 병밖에 없는 술”이라는 얘기다.

권위에 도전하는 MZ세대 닮은 술  

내추럴 와인은 즉각적이고 희화적인 라벨 디자인으로 제조사의 감성을 나타낸다. 사진 플리커

내추럴 와인은 즉각적이고 희화적인 라벨 디자인으로 제조사의 감성을 나타낸다. 사진 플리커

내추럴 와인은 기존 권위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가치관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와인은 '학습이 필요한 술'이다. 품종, 라벨 읽는 법, 제조사 특징, 역사뿐 아니라 아펠라시옹(AOC·원산지 통제 명칭)과 같은 복잡한 체계를 알아야 제대로 마신다는 인식이 강해서다.

내추럴 와인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모조리 깨뜨린다. 로버트 파커 주니어와 같은 유명 평론가의 평점에 신경 쓰기 보다는 편하게 즐기는 술을 지향한다. 라벨 역시 생산자의 개성과 와인의 감성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된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젊은 세대는 시음을 위해 잔을 흔들고 코를 박고, 맛·향·바디감·질감 등을 따져 고상한 용어로 묘사하는 기존 문화를 고리타분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이름난 보르도 와인처럼 역사와 전통을 따지지 않아도 충분히 멋지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내추럴 와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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