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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징벌법' 독소조항 더 늘린 與, 보다못한 장관이 말렸다 [확대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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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번에도 범여권의 단독 처리였다. 국회 법사위는 25일 새벽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의 불참속에 언론 보도에 최대 5배의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개정안을 수정 의결했다. 국제기구까지 “언론을 압박하는 도구가 될 가능성을 열게 된다”(국경없는기자회)며 반대하고 있는 ‘언론재갈법’이 본회의로 가기 위한 관문을 또 넘었다.

 박주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가 25일 새벽 서울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언론중재법)개정안을 통과 시키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박주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가 25일 새벽 서울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언론중재법)개정안을 통과 시키고 있다. 김경록 기자

새벽 2시 20분부터 1시간 40분 가량 진행된 법사위의 심사 과정은 여권의 언론중재법 밀어붙이기가 그동안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진행돼 왔는지를 보여주는 축소판과 같았다.

언론에 대한 강경파 의원의 불만이 그대로 법 조문이 되기도 했다. 민주당내 언론TF위원장으로 '언론재갈법 처리의 행동대장'으로 불리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첫 발언자로 나서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있다. ‘명백한’을 빼고 그냥 ‘고의 또는 중과실’로만 표현해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언론사에 5배의 손해 배상을 부과할 수 있는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서 '명백한'을 빼면 대상 범위가 확대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김 의원의 이런 주장은 그대로 법사위 수정안에 반영됐다.

예외규정 축소 시도한 與…외려 정부가 말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최연숙 사무총장이 25일 오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 앞에서 이날 새벽 여당 단독으로 법사위에서 언론중재법 강행처리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최연숙 사무총장이 25일 오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 앞에서 이날 새벽 여당 단독으로 법사위에서 언론중재법 강행처리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여당의 '폭주'는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공익적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적용하지 않도록 한 ‘예외 범위’ 규정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예외 범위’ 규정은 그간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언론 자유 침해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소개됐다. 공익을 위한 언론보도 중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공익침해행위 관련 보도(1호)▲청탁방지법 관련 보도(2호) ▲이에 준하는 공적 관심사 관련 보도(3호)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여당 의원들은 이 최소한도의 안전장치조차 걷어내자는 주장을 줄기차게 폈다.  “(예외 범위로)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공익침해행위(관련 보도)라고 돼 있는데, 이게 470여 가지 정도 된다. (1호를) 삭제하는 게 타당하다”(김용민), “언론보도는 다 공적 관심사항에 해당된다”(김남국)는 주장이었다.

한 술 더 떠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은 ‘예외 범위’ 전체를 삭제하자고 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산하기관으로부터 접대를 받았다는 가짜 보도가 나왔다. 그러면 국회의원이 접대받는 것은 안 될 일이고, 그걸 (허위) 보도하는 건 공공복리를 위한 것이라 징벌 대상에서 빠지겠다는 걸 받아주자는 이야기인가”라며 “(예외 범위 규정이) 애초에 형용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여당 의원들의 급발진이 얼마나 심했으면, 황희 문체부 장관이 참다 못해 이들을 진화하러 나섰을까.  황 장관은 “조문의 취지 자체는 언론사가 위축되지 않고 기사를 충분히 쓸 수 있는 환경을 줄 것이냐 말 것이냐는 부분이다”라며 “조금 더 범위를 좁혀서라도 살리는 것이 맞지 않나”라고 말했다. 박주민 법사위원장 직무대리가 잠시 정회를 한 뒤에야 예외조항은 겨우 삭제를 면하고 살아남았다.

일부 ‘문제 보도’를 전체인양…“결국 언론 재갈 물리기”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에 관해 질의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공익적 보도에 대한 '예외 범위' 규정 축소를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뉴스1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에 관해 질의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공익적 보도에 대한 '예외 범위' 규정 축소를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뉴스1

이날 논의는 또 '주먹구구식'이기도 했다. 김용민 의원은 과도한 취재 경쟁이 벌어졌던 2012년 8월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과 2014년 불거진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을 언급하며 “이런 거 징벌적 손해배상 해야 하지 않냐”고 말했다. 동의를 구하는 듯한 김 의원에게 같은 '강경파'로 분류되는 김남국 의원까지 “간첩조작사건은 사실 검찰이 조작한 것이지 않나. 사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언론에 넣는 게 아니라 정부나 검찰에 (넣는 게 맞다)”고 다른 얘기를 했다.

김용민 의원 경우처럼 그동안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명분을 쌓기 위해 일부 극단적인 보도 사례를 일반화시키는 경향을 보여왔다. 민주당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사례는 17년 전 발생한 ‘쓰레기 만두 파동’이다. 2004년 6월 경찰 브리핑을 언론이 검증 없이 받아쓰면서 1주일 만에 업체 사장이 한강에 투신한 사건인데, 당시 열린우리당은 이를 계기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했다가 스스로 중단했다.

성동규(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중앙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쓰레기 만두 파동 같은 옛날 사례를 들고 와서 주장하는데, 그런 건 현행 법률로도 다 처벌이 가능하다”며 “언론중재법은 결국 자신들을 비판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재집권 이후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 논의과정에서 여당 의원들이 보여준 '주관적인 낙인찍기', '주먹구구식 사례 인용', '침소봉대와 왜곡' 등의 행태는 징벌적 손해 배상 도입 등 언론 개혁의 명분을 쌓기 위해 민주당이 그동안 언론들에게 뒤집어 씌워왔던 이미지들이다.

이번 '언론재갈법' 법안에 '허위·조작' ,'명백한 고의와 중과실',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 조작','왜곡' 등이 등장한 것도 아마 같은 연장선상 일 것이다. 언론을 바라보는 정권의 적대감이 여과없이 표출된 이런 표현들은 그 자체로도 언론에 대한 낙인찍기 효과가 있다.

하지만 25일 새벽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나온 발언들만 잘 살펴 보면 '조작과 왜곡','침소봉대','명백하고 고의적인 낙인찍기'로 일관한 건 오히려 여당 의원들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언론학자들 사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짊어질 정도의 가해자는 언론이 아니라 여당"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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