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혐오 멈추자는데 또 혐오 댓글…이게 현실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05 18:00

"혐오 표현 쓰는 사람들 여기 다 모였다."

지난달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의 혐오 기획 기사에 달린 누리꾼의 탄식성 댓글이다. 혐오하지 말자는 기사에 어김없이 혐오 댓글이 쏟아졌다. "조선족을 혐오하는 게 뭐가 문제냐" "전라도가 전라도 한다는 게 혐오냐"는 식이었다. 사실상 그들의 혐오 표현이 혐오 기사를 완성한 셈이다. 기획 기사가 한창 나가는 중에도 우리 사회에선 '쥴리' 벽화, 양궁 선수 안산 등을 둘러싼 온갖 혐오 정서가 폭발했다.

<'혐오 팬데믹' 한국을 삼키다> 6회(끝)
취재 기자가 본 '코시국' 혐오 사회

'코시국'은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덕에 특별취재팀도 혐오 현상을 기사로 다루게 됐다. 국내 혐오 상황을 진단하기 위해 지난 5월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1000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게 물어봤다. 1년간 혐오 표현을 경험한 적 있다는 비율은 68.2%에 달했다. 2년 새 4%포인트 높아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연관해 혐오 표현을 한 번 이상 써봤다는 응답자도 35.8%에 달했다. 생각해보면 내 지인 3명 중 1명은 혐오에 동참한 것이다.

더 위험한 신호는 혐오 표현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전례 없던 '믿음'이다. 혐오 표현을 썼다는 응답자의 66%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서' 사용했다고 답했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와 비교하면 16%포인트나 늘었다. 코로나 유행과 연관된 중국인, 특정 종교 집단 혐오가 대개 이런 식이었다.

믿음과 '팩트'는 달랐다. 혐오표현이 근거로 삼는 명제들을 분석했더니 상당수는 거짓이었다. 하지만 왜 거짓인지 아무리 설명해도 혐오하는 이들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 나타나는 혐오는 감정적 판단"(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라고 해야 할까. 온라인 기사에서 여혐 댓글을 종종 접한다는 이모(20)씨는 "기사 내용은 핑계일 뿐이고, 그저 여성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물론 분노의 감정은 이해할 수 있다.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감염병 팬데믹(대유행)이 찾아왔고, 작지만 소중한 일상이 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가 다른 이에 대한 혐오로 옮아가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섬너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소속된 내집단과 소속되지 않은 외집단으로 타자를 구분한다. 외부 위협이 늘어날수록 내집단의 결속을 강화하고 외집단을 배척한다. 일종의 '생존본능'이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며 자신을 추켜세우는 비겁한 자기 위로인 셈이다.

자기 위로를 위한 혐오는 부메랑과 같다. 혐오 총량이 점점 커지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내집단에 대한 손가락질이 시작될 수 있다. 기독교 신자인 전모(28)씨는 코로나 때문에 혐오를 처음 당해봤다고 했다. 전씨는 "나도 다른 누군가를 향해 혐오표현을 쓴 일이 있다. 하지만 내가 속한 종교 집단이 반대로 혐오 대상이 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지난 3월 미국 워싱턴DC 차이나타운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한 여성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를 멈춰라’는 문구가 쓰인 팻말을 들고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3월 미국 워싱턴DC 차이나타운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한 여성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를 멈춰라’는 문구가 쓰인 팻말을 들고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인권위가 지난 4월 국민 1000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게 물었더니 90.8%가 "누구도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와 가족도 언젠가 차별하거나 차별당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혐오가 돌고 돌아 결국 우리를 상처입힐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우울증, 불면증, 무력감…. 취재하면서 만난 혐오표현 경험자들도 대부분 크고 작은 정신적 피해를 겪었다고 했다.

모두가 알지만 심각해지는 혐오, 출구가 있을까. 답을 찾긴 쉽지 않다.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최소한의 법적 규제와 체계적인 혐오 예방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보다 더 빠른 해법은 우리 스스로가 바뀌는 것이다. '오늘 혹시 혐오했을까' 나한테 먼저 되물어보는 건 어떨까. 혐오 기획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 중 하나를 보며 희망을 가지고 싶다.

"이젠 무의미한 소모적 생각을 그만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백희연 사회기획팀 기자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를 집어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더믹은 우울(블루)과 분노(레드)를 동시에 가져왔다. 특히 두드러진 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노와 공격이다. 서구에선 아시아인 등에 대한 증오범죄와 혐오발언(헤이트 스피치)이 이어진다. 국내서도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혐오 정서가 난무한다. 여혐ㆍ남혐 논란, 중국동포(조선족)와 성소수자 비난 등이 대표적이다.

'성별, 장애, 출신지역, 인종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편견을 조장하고 멸시ㆍ모욕ㆍ위협을 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 혐오표현의 정의(2019년 인권위 보고서 참조)다. 이러한 혐오표현은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아왔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계기로 분출하는 모양새다. 혐오는 때론 내 이웃을 향하고, 종종 나 자신을 겨누기도 한다. 팬더믹 1년 반,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우리 안의 혐오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살펴봤다. 혐오표현이 근거로 삼는 명제들이 맞는지도 '팩트체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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