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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군 늦춰라’ 동맹에 “소금 뿌렸다”…바이든 이달 말 완료 고수

중앙일보

입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철수 시한을 늦추지 않았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에 약속한 미군 철수 시한인 8월 31일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2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위험에 처한 아프간인 대피를 위해 철군 시한을 늦춰야 한다는 유럽 동맹의 요청을 거절하고,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 자신이 속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반대도 묵살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년간 미국을 도와 탈레반 표적이 된 아프간인들을 모두 데려오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됐다. 카불 공항에서는 이미 미군 병력의 감축이 시작됐다. 미국인도 모두 데려오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바이든은 유럽 정상과의 단절된 관계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테러 위협…철군 빠를수록 좋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철군 시한인 8월 31일 전에 모든 병력이 가능한 한 빨리 아프간에서 철수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현재 8월 31일까지 일을 끝낼 수 있는 속도를 내고 있다"면서 철군은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주둔 기한을 연장하지 않고 철수하는 이유로 카불 공항에 있는 미군에 대한 테러 위협이 실재하며, 더는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들었다.

바이든은 "우리가 현장에 있는 매일은 ISIS-K가 공항을 목표물로 삼아 미군과 연합군, 무고한 시민을 모두 공격하려는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라고 말했다. ISIS-K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지부를 말한다.

미 소식통은 카불 공항에서 IS 대원의 자살폭탄 테러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임무 종료로 기존 철수 시한을 지키게 됐다고 설명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오늘 아침 G7 정상들과 회의에서 우리가 목표를 달성함에 따라 카불에서의 임무는 끝날 것이라고 전했다"고 말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 국방부와 국무부에 철군 시한을 연장하는 비상 대책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인의 공항 이동 등 대피 작전에 협조하고 있는 탈레반이 계속 협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풀이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미군의 철군 시한 연장을 요구했으나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거절당했다.[EPA=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미군의 철군 시한 연장을 요구했으나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거절당했다.[EPA=연합뉴스]

영·프·독·이 "철군 시한 연장해야"

이날 G7 정상회의에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정상들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철군 시한을 연장해야 한다고 제안해 동맹 간 이견이 드러났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자국민과, 지난 20년간 미군과 연합군을 도운 아프간인을 대피시키기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바이든이 이를 거절하자 각국에서 분노와 비판이 표출됐다.

영국의 한 의원은 가디언에 "바이든의 미국은 자신들만 나설 수 있다는 게 명백할 때 오히려 물러나기를 선택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날 백악관 국가안보팀으로부터 정보 브리핑을 받은 미 의회 민주·공화 양당은 월말까지 모든 미국인과 자격 있는 아프간인을 전원 대피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전했다.

제이슨 크로 하원의원(민주·콜로라도)은 “지금부터 8월 31일까지 달성할 수 없다"면서 "임무를 완수하려면 마감 시한이 연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달력에 임무가 끝나는 날짜를 정해 놓아서는 안 된다"면서 "사람이 모두 나가면 임무가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군, 철수 시작…"아프간에 대한 배신" 

미국이 완전 철수를 약속한 시한은 8월 31일이지만, 관련 무기와 장비를 거둬들이고 수천 명에 달하는 미군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그보다 며칠 앞서 병력과 장비를 빼기 시작해야 한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공식적인 철군 절차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으나 수백명에게 철수령이 전달됐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부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WP)에 대피 작전에서 비필수 임무를 맡은 병력 중 일부는 이미 현지를 떠났다고 전했다. 대피 작전에 투입된 미군은 5800명에서 현재 5000명 규모로 줄어들었다.

미군 규모가 줄어들수록 테러 위협은 더 커진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CNN에 "철수 시한이 사실상 며칠 안 남았기 때문에 아프간인은 차치하고 미국인도 다 데려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윌리엄 코헨 전 국방장관은 "8월 말까지 미국인을 전원 구출하겠다는 계획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백악관에 따르면 미국이 대피시킨 미국인과 제3국 국적자, 아프간인 조력자는 7만여 명이다. 또 지난 24시간 동안 2만 명을 수송했다. 하지만 미 당국은 구조를 기다리는 미국인 수와 자격 있는 아프간인의 인원수를 밝히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날 빌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탈레반 최고 지도자와 만난 사실을 공개한 데 주목했다. 일각에서는 기한 연장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것 아니냐고 관측한다.

하지만 탈레반과 '악연'이 있는 CIA의 책임자를 내세워 탈레반 협조를 받아내려는 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9·11 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 제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게 CIA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주 방영된 ABC방송 인터뷰와 다음 날 대국민 연설에서 모든 미국인을 구출할 때까지 철군 시한을 연장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하지만 탈레반이 "레드라인을 언급하며 경고하자 다시 연장 불가를 결정해 탈레반에 굴복한 것처럼 비칠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8월 31일 철군 시한은 바이든이 (지난 4월) 정한 것"이라며 철수 결정은 온전히 미국이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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