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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에서 시작해 中 대표 디자이너 된 하얼빈 남성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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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중국 구이저우(貴州)성 첸둥난(黔東南) 먀오족둥(侗)족자치주에 있는 한 바틱 염색 공방 안. 두 팔을 걷어붙인 한 남성이 모델에게 의상을 입혀보고 있다. 그의 이름은 청하오(成昊),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다.

패션 디자이너 청하오(사진 오른쪽)가 구이저우성 첸둥난 먀오족둥족자치주에 있는 바틱 염색 작업실에서 모델에게 새로운 의상을 입혀보고 있다. [사진 신화통신]

패션 디자이너 청하오(사진 오른쪽)가 구이저우성 첸둥난 먀오족둥족자치주에 있는 바틱 염색 작업실에서 모델에게 새로운 의상을 입혀보고 있다. [사진 신화통신]

올해 42세를 맞이한 그는 패션 업계에서 꽤 오랜 세월을 지냈다. 국제 디자인 대회에서 금상을 받는 등 업계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가 나고 자란 하얼빈은 겨울 평균 기온이 영하 20도로 패션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그는 어떻게 화려함의 극치라 여겨지는 패션 업계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일까?

'재단사' 출신 어머니…아름다운 의상에 둘러싸여 지낸 유년기

하얼빈에서 태어난 청하오는 어릴 때부터 재단사 출신 어머니로부터 의상 재단에 대해 배웠다. 가정환경 덕분에 일찍이 패션에 눈을 뜬 청하오는 17세가 되자 실력자를 수소문해 패션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꾸준히 업계에서 기반을 다진 그는 26세 때 중국의 유명 디자이너 중 한 명인 궈페이(郭培)의 작업실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됐다. 궈페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공식 유니폼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한때 '중국 최고의 디자이너'라 불렸던 스승 아래서 실력을 갈고 닦은 청하오는 2009년 궈페이 작업실에서 나와 베이징에 패션 스튜디오를 차렸다. 비록 첫 스튜디오는 지하실이었지만 그는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딛었다는 기쁨에 불평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명문 대학 출신이 아닌 디자이너가 자신의 브랜드를 내세운 스튜디오를 중국의 수도에 차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데 그가 일군 '기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의 중국풍(風) 시리즈는 차츰 입소문을 얻더니 중국 국제 패션위크, 상하이 패션위크, 뉴욕 패션위크 등 세계적인 무대에서 선보인 후 더욱 인기를 끌게 됐다.

천년와타(千年窩妥) 현장 모습. [사진 cnmuseum]

천년와타(千年窩妥) 현장 모습. [사진 cnmuseum]

2016년 11월, 청하오는 베이징에서 '천년와타(千年窩妥)'라는 무형문화유산특별전시회를 관람한 후 밀랍(바틱·batik) 염색을 이용해 의상을 디자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바틱 염색이란 염색하고 싶지 않은 부분에 왁스를 발라 무늬를 내는 천연 염색 방법이다. 특히 25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먀오(苗)족의 바틱 염색 기술은 2006년 중국 국가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그는 곧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전시회를 관람한 이듬해인 2017년, 청하오는 먀오족 전통 바틱 염색의 맥을 이어가는 구이저우성 단자이(丹寨)현을 직접 찾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닝항(寧航) 바틱 염색 작업실의 창업자인 닝만리(寧曼麗)를 만났다. 유명 디자이너지만 초심자의 마음으로 고수에게 직접 염색 기법을 전수받기 위해서다.

작업실에서 제품을 정리하고 있는 청하오의 모습. [사진 신화통신]

작업실에서 제품을 정리하고 있는 청하오의 모습. [사진 신화통신]

그는 본격적으로 바틱 기법을 전수받으며 전통적인 염색 기법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무늬에 매료됐다. 이는 곧 그의 디자인 철학에 영향을 줬다. 청하오는 바틱 기법에 자신만의 디자인을 보강해 의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2020년 초에는 한동안 단자이현에 있는 닝만리의 작업실에서 머무르며 먀오족 전통 바틱 염색을 활용한 디자인에 전념했다. 그 결과 같은 해 2월, F/W 런던 패션위크에 새로운 디자인을 들고 참가할 수 있었다.

런던 패션위크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의 밤' 테마로 진행된 패션쇼에서 그동안 열정을 쏟아부었던 바틱 염색 디자인 시리즈를 선보였다. 중국 무형문화유산 디자인이 국제 패션위크에서 단독 시리즈로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020 F/W 런던 패션위크 '중국의 밤' 패션쇼에서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아이치이(愛奇藝)]

020 F/W 런던 패션위크 '중국의 밤' 패션쇼에서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아이치이(愛奇藝)]

신화통신에 따르면 청하오가 바틱 염색 기법을 활용해 디자인한 의상은 런던 패션위크, 베이징 국제 패션위크 외에도 중국과 해외 10여 개의 패션쇼에 등장했다.

그는 바틱 염색을 응용하기 전에는 그저 자신을 '자국 문화를 디자인에 담아낸 (다른 중국 디자이너와 다를 바 없는) 작은 재단사'라고 소개했으나 염색 기법을 배운 후에는 패션 업계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청하오가 디자인한 의상들. 상단 오른쪽 사진 중, 모델 의상을 손 보고 있는 사람이 청하오. [사진 소후닷컴/kknews]

청하오가 디자인한 의상들. 상단 오른쪽 사진 중, 모델 의상을 손 보고 있는 사람이 청하오. [사진 소후닷컴/kknews]

패션위크 무대에 올리는 의상은 모두 청하오 본인이 직접 바느질한다. 그가 자신을 스스로 '재단사'라 일컫는 이유기도 하다. 2018년 중국 국제 패션위크에서는 드레스 컨셉의 치파오를 무대에 올렸다. 치파오에 바틱 기법을 접목해 한층 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무늬를 자아냈다.

2019년에는 노년층 모델을 기용해 바틱 기법으로 디자인한 치파오를 선보이기도 했다. 젊은이들에겐 생소한 '전통 염색 기법'과 '노인 모델'이라는 파격적인 행보에 틱톡 등에서 28억 4000만 뷰 기록, 280만 '좋아요'를 받는 등 크게 주목받기도 했다.

[사진 소후닷컴]

[사진 소후닷컴]

청하오가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남다르다. 그는 중국 패션 매체 J STYLE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디자인한 옷의 '홍보' 외에는 모든 디자인 요소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답했다. 심지어 완성된 의상을 외부에 선보이지 않고 스튜디오에 그대로 방치하기도 한다.

청하오가 각종 패션위크에 참여해 중국 현지 매체들과 인터뷰할 때마다 종종 언급하는 말이 있다. 바로, 그가 전하고 싶은 것은 '본인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유구한 전통문화가 계승되고 있음을 전하는 것이 그가 세계 무대에 오르는 이유다.

이미 부와 명예를 얻었음에도 본인이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청하오. 이것이 바로 추운 북방 도시 출신 디자이너가 중국의 대표적인 디자이너 중 하나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을까.

차이나랩 이주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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