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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인천, 카불공항 안되란 법 있나"…정의용 "황당" 버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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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현안질의 시간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정권 장악과 한국을 비교해 안보 상황을 우려하는 야당 의원들과 이에 "황당하다"고 답하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설전으로 얼룩졌다. [연합뉴스]

2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현안질의 시간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정권 장악과 한국을 비교해 안보 상황을 우려하는 야당 의원들과 이에 "황당하다"고 답하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설전으로 얼룩졌다. [연합뉴스]

“미국과 탈레반이 평화협정을 맺은 지 1년 6개월 만에 (아프가니스탄이) 함락됐다. 카불 공항의 참상을 보면서 국민들의 마음이 착잡하다. 인천 공항이 카불 공항처럼 되지 말란 법 있냐는 얘기를 한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탈레반이 평화협정을 깨고 무력으로 아프간 정부를 장악한 상황을 남북이 대치 중인 한반도의 상황과 비교하며 우려를 전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언급하며 “실질적인 비핵화가 담보되지 않은 평화협정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이 평화협정을 맺고 주한미군 철수 등이 이뤄질 경우 안보 위기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발언이었다.

"황당하다" 발언으로 시작된 설전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3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북한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평화협정은 아프간 사태처럼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황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경록 기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3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북한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평화협정은 아프간 사태처럼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황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경록 기자

이에 대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황당한 우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 장관은 “대한민국 정부가 아프간 정부처럼 허약하지 않다”며 “확고한 안보관을 갖고 자체 방위력을 엄청 준비하고 있으며, 아프간 사태 이후 한·미 동맹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설명했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국민의 걱정이 황당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황당하다”고 답했고, 재차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고 지적하는 발언에도 “근거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발언 시간 초과로 마이크가 꺼진 상태에서도 정 장관의 발언은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현재의 한반도 안보와 아프간을 어떻게 비교하냐”며 “그 말씀이 국민의 우려를 오히려 더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외교통일위원장인 직무대리를 맡은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차례 제지한 뒤에도 정 장관은 발언을 이어갔고, 이재정 의원이 이 와중에 안건 처리로 넘어가면서 겨우 상황은 종료되는 듯했다.

"걱정도 국민의 목소리" vs "근거 없는 불안"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은 정의용 장관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정 장관은 지 의원에게 오른손 검지를 들어보이며 "심하게 말한 것 같지 않다"고 답했다. [국회방송 캡쳐]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은 정의용 장관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정 장관은 지 의원에게 오른손 검지를 들어보이며 "심하게 말한 것 같지 않다"고 답했다. [국회방송 캡쳐]

하지만 이후 “황당하다”는 발언의 후폭풍은 점차 커져만 갔다. 뒤이어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아프간 사태를 보며 우려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크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또 다시 설전이 벌어진 것. 다음은 지 의원과 정 장관의 발언 일부.

▶지성호 의원: 걱정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황당하다고 한 건 심했다.
▶정의용 장관: 심하게 말한 것 같지 않다.
▶지 의원: 장관님이 가볍게 평가하는 것 아니냐.
▶정 장관: 가볍게 보는 게 아니다. (아프간 사태를) 우리와 연관해서 불안하다고 엮는 건 근거 없다.
▶지 의원: 저희 동네에서는 (주민들이) 불안해한다.
▶정 장관: 불안해하면 의원님이 설명해줘야 한다. 왜 불안해하냐고 책임 있게 말해줘라.
▶지 의원: 대통령이 국민에게 그 말을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정 장관: 그렇게 보는 사람이 누가 있냐.
▶지 의원: 불안해하는 것 또한 국민의 목소리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이 문제 있어 보인다.
▶정 장관: 뭐가 문제가 있냐. 자신 있게 말하는데.

외통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우려의 본질은 미국과 탈레반이 맺은 평화협정이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추구하는 과정 역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2018년 판문점 선언에는 평화협정 체결을 목표로 제시하면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의 인과 관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다.

북한의 비핵화 없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는 그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수차례에 걸쳐 제기됐다. 하지만 정 장관은 ”여기저기서 주한미군 철수 이야기가 나오면서 국민을 대신해 우려를 이야기하는 의원에게 황당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태도가 지나치다”는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 지적에도 “글쎄요”라며 “너무나 터무니없는 비교”라고 답했다.

정 장관은 문재인 정부가 비핵화 없는 평화협정을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는 "평화협정이란 건 한반도에서의 실질적인 비핵화, 완전한 비핵화 조치에 관한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를 답변하는 과정에서 언론의 우려와 국민의 불안에 "황당하다"고 답하고, 이를 지적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오히려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부적절한 태도란 지적이다.

계속된 공세에 "불끈했다" 유감 표명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야당 의원들의 문제 의식을 정리해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재차 질의했다. 정 장관은 이에 대해 "불끈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연합뉴스]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야당 의원들의 문제 의식을 정리해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재차 질의했다. 정 장관은 이에 대해 "불끈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연합뉴스]

외교부 차관 출신의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이같은 문제의식을 재차 정리해 정 장관에게 설명했다. 조 의원은 ▲아프간 사태는 한국 정부에 미국의 방위공약을 신뢰할 수 있냐는 함의를 안겼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실제 주한미군을 철수를 검토했으며 ▲정부가 연합훈련을 장애물로 여기는 것은 싸울 의지가 없었던 아프간 정부군의 모습처럼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제서야 정 장관은 “제가 성격이 못돼서 야당 의원님 몇 분이 질의하시는데 불끈했다”고 유감을 표했다. 이어 “사실 최근에 아프간 사태 발발 후 일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데 대해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생각을 해서 말씀드렸다”며 “일부의 잘못된 우려와 불안을 우리가 증폭시킬 필요가 없고, 한반도 상황과 아프간 상황이 전적으로 다르단 걸 의원님들도 국민에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동맹이 아무리 도와줘도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없는 나라는 결국 무너진다"며 최근 스텔스기 관련 국방 예산을 삭감하고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한 데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연합뉴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동맹이 아무리 도와줘도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없는 나라는 결국 무너진다"며 최근 스텔스기 관련 국방 예산을 삭감하고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한 데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연합뉴스]

이날 정 장관과의 설전을 시작했던 정진석 의원은 전체회의 직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언론의 우려와 국민의 불안을 바탕으로 질의했는데 황당한 이야기라는 장관의 답변 태도가 더 황당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또 “아프간 사태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없는 나라는 동맹이 아무리 도와줘도 결국 무너진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경험했다”며 “정 장관은 대한민국과 아프간은 다르다고 했지만 김정은, 김여정 남매의 눈치를 보느라 스텔스기 관련 국방 예산을 삭감하고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하는 등 문재인 정부는 나약하기 짝이 없었던 아프간 정부와 많이 닮아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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