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호주군 "우리가 옳았다"...아프간 미군 "우린 왜 싸웠나"[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8.2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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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아프간 사태와 6ㆍ25 전쟁

2013년 7월 정전 60주년 관련 기획 취재를 위해 찾은 호주. 그곳에서 만난 노병(老兵)을 잊을 수 없다.

2013년 7월 호주 참전용사 레이먼드 디드(왼쪽)와 리처드 헤더링턴이 퀸즐랜드주 참전비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중앙 포토

2013년 7월 호주 참전용사 레이먼드 디드(왼쪽)와 리처드 헤더링턴이 퀸즐랜드주 참전비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중앙 포토

퀸즐랜드 골드코스트 시 한복판의 공원 캐스케이드 가든에는 6ㆍ25전쟁 참전비가 세워져 있다. 그 앞에서 참전 용사 레이먼드 디드(당시 85)를 만났다. 치열했던 가평 전투(1951년 4월 23~24일)에서 직접 싸웠다는 그의 생일은 공교롭게도 전투일 바로 직후인 4월 25일. 숨진 전우들이 생각나 가평 전투 이후로는 자신의 생일을 한 번도 축하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멀리 한국에서 기자가 참전 용사를 취재하기 위해 호주에 왔다는 소식에 그는 거동이 편치 않은데도 한걸음에 달려왔다. 예복을 갖춰 입고 무명용사비에 헌화한 뒤 그가 기자에게 처음 건넨 말은 “고맙다”였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누리며 자유롭게 자란 당신이 이렇게 나와 함께 여기에 서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희생은 가치 있었다. 우리가 옳았다. 그 고통스럽던 한국의 맹추위를 버텨내고 살아남길 정말 잘했다.”

가평 전투 당시 참전한 군인들. 중앙 포토

가평 전투 당시 참전한 군인들. 중앙 포토

그에게 타국에서 피 흘리며 싸워 얻은 대가는 바로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 그 자체였고, 기자가 그 증거였던 셈이다. 내 나라를 지켜준 이가 오히려 “지켜줄 수 있게 해줘 고맙다”고 하다니, 그 숭고한 자부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8년 뒤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는 정반대의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20년 간 이어진 전쟁에 참여한 미군 참전 용사들은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모습을 보며 “나의 전우는 무엇을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었는가”라며 절규한다. 미군이 철수한 뒤 아프간에 남은 것은 자유 민주주의가 아닌 억압과 인권 탄압이기 때문이다.

실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철군 밀어붙이기는 그가 1월 취임한 뒤 공들여 복원해온 동맹 중시주의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한국 역시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이기에 아프간을 ‘손절’하는 바이든을 보며 복잡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이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트위터 영상 갈무리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이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트위터 영상 갈무리

이런 불안감을 의식하듯 바이든은 직접 “한국과 나토 등은 (아프간과)근본적 차이가 있다”며 “누군가 한국을 침략한다면 미국이 대응한다”(19일 언론 인터뷰)고 밝혔다.

하지만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부르카를 쓰지 않은 여성을 사살하고, 아프간 국기를 사용하겠다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것을 보면서도 완전한 발빼기에만 집중하는 미국의 모습은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다시 확인시킬 뿐이다. 사실 이는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변한적 없는 진리다.

국내에서는 정치적ㆍ이념적 성향에 따라 이런 진리가 우리에게 지니는 함의를 서로 상반되게 해석하기 바쁘다. 한ㆍ미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연합 방위 태세를 철저히 하며 주한 미군 철수를 막아야 한다는 쪽이 있는가 하면, 이를 계기로 ‘자주국방’ 실현을 위해 더 드라이브를 걸고 전시작전통제권도 빨리 환수해야 한다는 쪽도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아프간인 640명이 미 공군 C-17 수송기에 발 디딜틈 없이 앉아 있다. 공식 최대 탑승 인원은 134명 이지만 아프간인들이 후방 적재문으로 몸을 밀어넣어 탑승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아프간인 640명이 미 공군 C-17 수송기에 발 디딜틈 없이 앉아 있다. 공식 최대 탑승 인원은 134명 이지만 아프간인들이 후방 적재문으로 몸을 밀어넣어 탑승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지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탈레반 치하에 남아있는 아프간 국민이다. 대한민국은 더더욱 그래야 한다.

자고 나란 고향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미군 수송기 안에 발 디딜 틈 없이 앉아있는 아프간 국민의 모습에서 6ㆍ25 전쟁 당시 ‘흥남철수’가 연상되고, 미국 등 서방 국가에 협조한 아프간인들에 대한 탈레반의 보복은 인민재판, 부역자 색출을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한국은 아프간 재건에 직접 참여, 적지 않은 예산과 인적 자원을 투입하지 않았는가.

이와 관련, 국회에서 아프간 난민 및 국내 체류 아프간인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는 결의안(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여야 모두 참여한 가운데 마련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한국이 아프간 현지에서 재건 임무를 수행할 당시 한국 기관에서 일하거나 협력한 아프간 국적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벌써부터 이들이 탈레반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게 들려온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정문 앞에서 106개 한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아프가니스탄 난민 보호책 마련과 평화 정착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정문 앞에서 106개 한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아프가니스탄 난민 보호책 마련과 평화 정착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연민(sympathy)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함께’를 뜻하는 ‘sym’과 ‘감정, 느낌’을 뜻하는 ‘pathos’라고 한다. 아프간 국민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연민, 그게 연대의 시작이다. 대한민국이 60년 뒤 “당신들을 지켜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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