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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마루 “김일성 건강하더라”/김일성­일 방문단 회동 이모저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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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평양행 직전 “또 만나자”에 짐 다시 풀어/회담장소 묘향산에 일 정계선 억측 구구
가네마루(김환신) 일본 전 부총리와 김일성과의 회담은 일본 대표단측이 『감격했다』고 회담소감을 피력,전체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음을 일본 언론들이 26일 전했다.
가네마루 등 일본측 대표들은 이번 김일성과의 회담을 「성공적」임을 애써 강조하고 있으나 정작 후지산호 선원석방 문제에는 뚜렷한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네마루 등의 자화자찬식 회담 분위기 전달과는 달리 가네마루­김일성 회담이 평양에서가 아닌 묘향산에서 이루어진 데 대해 「통신이 되지 않는 원격지」라는 이유로 회담의 중요성을 격하하는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일본 언론이 전하는 가네마루­김일성 회담 관련 뒷얘기들이다.
○…가네마루(김환신)­김일성 회담은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듯. 두 사람이 모두 『옛친구를 만난 듯하다』고 말해 이같은 분위기를 전달.
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김일성이 대표단 일행이 직행기로 평양을 방문한 데 대해 먼저 『기쁘게 생각한다. 첫 직행기의 출발은 조일 관계의 좋은 조짐』이라고 말을 걸면서 가네마루를 가리켜 『첫 대면이지만 옛 친구를 만난 것 같다』고 환영의 뜻을 표시.
가네마루도 북한측의 환영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한편 『일련의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김 주석과는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기분이 든다』고 자신의 기분을 밝혔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김일성으로부터 제2차 회담을 통보받은 것은 26일 오후 묘향산 초대소에서 제1차 회담을 끝내고 평양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직전이었다.
가네마루가 이날 오후 3시쯤 평양행 열차를 타려고 하는데 김용순 노동당국제부장이 찾아와 『김 주석은 가네마루씨와 두 사람만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가네마루는 즉시 승낙,묘향산 초대소 부근 숙소로 돌아가 다시 여장을 풀었다.
○…이날 1차회담을 위해 김일성은 오전 9시30분쯤 묘향산 초대소 현관에 나타나 가네마루와 다나베를 웃음으로 영접.
감색양복에 회색넥타이 차림의 김일성은 원기있는 표정으로 78세라는 고령답지 않게 활기찬 걸음으로 두 사람을 회의장에 안내.
가네마루가 장수의 비결을 묻자 김일성은 『인삼죽과 김치가 장수의 밑천이 아니겠는가』라고 대답,긴장된 회담장의 분위기가 풀어졌다.
가네마루는 회담이 끝난 후 한때 사망설까지 나돌았던 김일성의 건강상태에 대한 질문에 『그의 건강상태가 허약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만나보니 그렇지 않다. 건강하다』고 잘라 말했다.
○…북한을 방문중인 자민ㆍ사회 양당 대표단은 25일 밤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있은 매스게임을 관람하고 모두 「북한편」이 된 듯 감격하고 있다고 일본 신문들이 보도.
5만명을 수용하는 김일성경기장은 이날 북한 초ㆍ중ㆍ고등학교 학생들로 만원을 이룬 데다 회장석 맞은편에 「가네마루선생과 다나베선생이 인솔하는 일본사절단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사람 문자(카드섹션)」로 환영의 뜻을 표시.
○…북한측이 가네마루­김일성 회담장소를 묘향산초대소로 택한 데 대해 일본 정계에서도 억측이 구구.
김일성은 18일 중국 공산당 간부 대표단과 회견했을 때도 회담장소가 「평양이외」로만 보도됐으며 이때도 김일성이 묘향산초대소에 체재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일본의 한 소식통은 수도 평양이 아닌 휴양지 묘향산으로 일본대표단을 초대함으로써 일­북한간의 친밀도를 대내외적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고 관측.
그러나 일본 외무성은 「전혀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연락도 되지 않는 「원격지」라 당황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이들 대표단과의 연락도 신문사 취재단을 통한 간접정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한반도ㆍ일 관계 일지
▲55년 10월=일 차관회의에서 대북한정부간 교섭 전면중지 결정
▲63년 9월=일 사회당대표단 첫 방북
▲65년 6월=한일조약 체결ㆍ북 무효성명
▲72년 1월=일 초당파 방북단 평양방문
▲72년 3월=일,북한적 재일동포의 재입국 허가
▲77년 5월=북한대의원 친선대표단(현준극단장) 방일
▲83년 11월=제18후지산호(부사산환)로 북한병사 민홍구 일본밀항. 북한,후지산호 선원억류
▲84년 9월=전두환 대통령 방일. 히로히토 일왕,대한 식민지배 「유감」 표명
▲85년 1월=대북한제재 해제
▲87년 9월=도이 일본 사회당 위원장 방북
▲87년 10월=일본인 관광객 첫 방북
▲89년 1월=북한의 노동당대표단 첫 방일. 일,북한에 전제조건 없는 대화요청
▲90년 5월=노태우 대통령 방일. 아키히토 일왕 대한사과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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